나이수 카리?

2022. 8. 26. 12:39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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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량된 카레 가루


  카레는 어느 나라에서 왔을까? 인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일본이라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지금 국내에서 흔한 카레는 일본에서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 일본의 카레는 인도에서 왔을까? 아니다. 영국이다. 카레의 주재료를 강황이라고 흔히들 알고 있지만, 인도의 카레는 수 십 가지의 향신료가 배합되어 만들어진다. 이것을 지금의 카레 가루 형태로 만든 식료품 회사가 영국의 C&B(Crosse & Blackwell)다. 지금도 카레 가루를 만들고 있긴 한 모양인데, 영국 내수용으로는 더 이상 생산하고 있지 않다. 현재는 직접 생산하지 않고 다른 식품회사에 하청을 주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한때 영국에서도 카레가 붐이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의 개량된 카레가 영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면, 영국 현지인들도 의아해하는 모양이다. 이렇게 개량된 카레 가루는 일본으로 전해져, 서양 요리로 조리법이 소개된다.

 

개구리 우렁이 홍당무


  19세기 일본에서도 감자와 양파, 당근은 흔치 않았기 때문에 이 야채가 처음부터 카레에 사용되지는 않았다. 양파 대신 그냥 파와 강낭콩, 완두콩이 들어갔다. 레몬 대신에 유자를 넣기도 했다. 특이하게 들어가는 고기로 개구리를 사용한 조리법도 있다. 1938년 우리나라에 소개된 조리법 중에는 전라(田螺)를 사용한 조리법도 있었다. 전라는 우렁이다. 우렁된장은 들어보았지만, 우렁이가 들어간 카레라이스라니, 토속 음식의 개량인지, 프랑스 달팽이 요리를 흉내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1925년 우리나라에 서양요리제법으로 소개된 카레라이스 만드는 법이 있다. 재료를 보면 우육(소고기) 반 근, 파(동그란 파), 카레가루, 감자, 호나복(胡蘿蔔) 등이다. 양파를 동그란 파라고 표기했고, 홍당무는 호나복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일본의 카레라이스가 서양 요리로 소개된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카레라이스의 대중화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학교와 군대 급식으로 보급되면서, 조리법이 정규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토끼는 새, 멧돼지는 고래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카레라이스를 서양 요리로 분류하고 있다. 영국에서 건너 온 것이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고, 서양의 고급문화로 선진 음식을 수용한다는 의미도 작용한 것 같다. 이런 분류는 합리적 기준이 있다기보다는 문화적 차이에서 온다. 쉽게 말하면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다르게 분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전에는 육식을 전혀 하지 않은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일본에서 토끼를 셀 때 쓰는 와(羽)는 새를 셀 때 쓰는 말이고, 멧돼지를 산(山) 고래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런 들짐승을 날짐승과 바닷고기로 분류해 먹었다. 우리나라 전통악기 분류 체계 안에서 해금과 아쟁은 대금처럼 관악기로 분류된다. 그 이유를 간단히 말하면 음을 지속할 수 있는 찰현악기의 특징 때문이다.

 

카레라이스는 고급문화


  카레라이스를 고급문화로 수용한 한 장면이다. 1928년 11월 평양여고보음악 빠사 장면이다. 빠사는 바자회를 말한다.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의 음악회, 전람회, 빠사회는 지난 25~26일 양일간 동교 안에서 개최되였는데 음악회는 이십오 일 오후 한 시 멘델스존 작곡의 종다리 노래로 시작하여 삼십여 종의 성악 기악 등의 미묘한 음악은 천여 청중의 마음을 신비한 지경으로 끄는 중 그중에도 이학년 정유감 양의 독창 사 학년 송이옥 양의 피아노 독주는 비상한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생도 제작품 즉매소에서는 천여 점의 제품이 수 시간에 모두 팔리고 생도들의 손으로 만든 떡 약밥 등과 시상에서 라이스카레 홍차 등이 비상한 호평이었더라.

  이 기사를 보면 카레라이스를 라이스카레라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역시 당시에는 라이스카레라고 칭했고, 현재는 우리처럼 카레라이스라고 칭하고 있다. 왜 이렇게 라이스와 카레가 뒤 바뀌게 되었는지, 나름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별 중요한 의미는 없는 것 같다. 

  1929년에는 토월회(土月會)의 단막극으로 라이스카레라는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어떤 내용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시대 풍자극이 아닐까 생각된다. 1931년부터 신문지상의 연재소설에 라이스카레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다음은 1932년 별건곤 제57호의 만화다. 제목은 백화점 견학이다. 

  그림에 대한 설명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수학여행(修學旅行) 온 학생 일행(一行)이 백화점(百貨店) 구경을 하는 中, 한 학생 식당(食堂) 앞에 혼자 멈처서 「하-이것이 가쓰레쓰,…야사이사라다…라이스카레 잠시기록해두자」

  가쓰레쓰는 커틀릿을 일본식 발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돈가스를 말한다. 야사이 사라다는 야채샐러드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라이스카레는 카레라이스를 말한다. 아마도 시골 학생이 서울 백화점으로 수학여행 온 모습을 그림의 떡이란 의미로 그린 만화로 보인다. 그만큼 서양식 요리로 알려진 이런 일본식 요리는 새로운 음식문화였다.

 

니들이 카레를 알아


  1934년에는 찬밥 치다꺼리에 손쉬운 양요리 조리법으로 라이스카레가 소개된다. 재료를 보면, 닭고기, 다마네기, 카레 가루, 밥, 밀가루, 뻐터, 우유 또는 고기 국물, 소금, 후추, 아지노모도 등이다. 양파라는 말 대신 다마네기로 소개되었다. 왠지 정감 있는 일본말이다. 그 이유는 어렸을 적 할머니에게 이 말을 들었기 때문일까? 그러나 당시 이런 일본말은 엘리트의 말이고 표현이었다. 1935년으로 가면 이런 식문화에 대해 제법 잘난 체 하는 말들이 있다. 라이스 카레에 대한 인식 부족이란 기사다. 카레는 더울 때 먹는 음식이고, 맵기만 한 것이 특성이 아니란 꽤 긴 장문의 글이다. 원산지는 인도고, 재료는 뭐고, 이열치열로 먹는 음식이란 해석 등이다. 작은 불에 오래 끓여야 제 맛이 난다든가, 카레를 먹으면 몸이 차지기 때문에 구라파에서는 월경 중에는 일체 카레를 먹지 않는다든가 따위의 꽤 잘난 척하는 글인데, 사실 관계는 확인할 수 없었다.

  1938년에는 조선일보에 연재된 한용운의 장편소설 박명에 라이스카레가 나온다. 등장인물이 대화에서 라이스카레를 모르는 친구를 놀린다. 시장하니 라이스카레나 먹자고 친구에게 말하니, 친구는 나이수카리? 라고 되묻는다. 이에 친구는 이런 멍텅구리 나이수카리가 머냐?라며 놀린다. 카레라이스를 모르면 멍텅구리 소리를 듣던 시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카레는 파시즘

  1982년 일본 교육계에서는 카레라이스와 파시즘 논쟁이 있었다. 이때는 신문지상에 카레라이스란 말 대신에 커리라이스란 말이 사용되었다. 할리우드도 어느 때부터인가 헐리우드라고 하는 식으로 양성모음을 음성모음으로 사용하는 게 세련되게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파시즘 논쟁이란 것을 보면, 일본 초중등학생의 급식에 카레라이스를 통일 메뉴안으로 지정해 시행했던 모양이다. 찬성하는 측에서는 연대감을 길러 주기 위해 학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커리라이스를 선택하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주장했고, 반대하는 측은 국가의 교육 통제며 파시즘의 재현이라고 주장한다. 이어서 전국 커리라이스날을 정하는 것은 정부의 지방자치 간섭이며 맛없는 음식을 아동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라며 규탄한다. 이런 논쟁에도 불구하고 문부상과 17명의 문부상 관리가 참여한 가운데 카레라이스 급식은 시행되었고, 아이들은 논쟁에 아랑곳없이 맛있다고 탄성을 질렀다는 기사다. 당시 일본에서 금요일 학교 급식이 우유, 쌀밥, 카레와 디저트 등으로 통일되었던 모양이다. 한편으로 이런 통일된 급식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을 점령한 미군에 의해 실시되었고, 이런 중앙집권적 행정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것이기도 했다.

 

<참고 자료>
모리에다 다카시, 박성민 역, 『카레라이스의 모험』, 눌와, 2019
서양료리제법”, 동아일보, 1925.4.8. 6
平壤女高普音樂 빠사”, 조선일보, 1928.11.28. 3
土月會에서지나간時代上演”, 동아일보, 1929.12.24. 5
백화점 견학”, 별건곤57, 개벽사, 1932
家庭料理 찬밥치다꺼리에 손쉬운양요리 (2) 먹음적스런세가지”, 조선일보, 1934.3.10.
라이스 카레-에 대한 인식부족”, 동아일보, 1935.5.3. 4
우렁(田螺)의 라이스카레”, 동아일보, 1938.6.19. 6
長篇小說 薄命 (108)”, 조선일보, 1938.9.28. 4
日敎育界 "커리라이스" 논쟁”, 조선일보, 1982.1.2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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