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챌린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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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쾌
조선시대 서적중개상 책쾌(冊儈, 書儈, 서책쾌, 책주름, 책괴, book dealers)는 독자의 주문에 따라 서적과 소설을 구해주고(골동품도 취급한다) 이득을 취하던 개인 또는 집단이었다. 또한, 역관이 중국서적을 수입하면 책쾌는 국내 전역에 서적을 공급했다. 국내 책쾌의 활동기록은 16세기 중반부터 1970년까지다. 근대기 책쾌들 국내 마지막 서적 중개상 송신용(1884~1962)은 일제강점기 서물동호회(書物同好會; 고문서 수집 연구)에서 활동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왕실과 관가, 저잣거리를 왕래하며 내방가사, 소설류 등을 취급했다. 반면에 한상윤(?~1963)은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며, 주로 불교서적을 거래했다. 반은 중(僧)이고 반은 기인(奇人)이었다. 김효식(?~?)은 송신용에게 고서지식을 ..
2024.11.27 -
요이사와 JOAK
전주전매국 판매계 주임 이즈노는 강원도 원주에 살던, 나가이 부부를 전주로 1923년 불러들인다.나가이는 전주연초판매 지배인을 맡게 되는데, 이 회사는 대정정 2정목, 현재의 웨리단길다가여행자도서관 부근에 있었다.이때 나가이는 새로운 취미 활동을 하게 된다.수양단이라는 활동인데, 이스미 스님이 선두에 서고, 흰 셔츠에 흰 머리띠를 하고새벽 5시에 '요이사'를 외치며, 대정정 거리를 한바탕 뛰는 활동이었다. 다가교를 건너, 전주신사 앞마당에서 도이 죠스케의 구령에 맞춰수양단의 규칙 같은 어쩌고 하는 책을 다 같이 제창하고,다시 '요이사'를 외치며 돌아간다.나가이는 전주에서의 수양단 활동 덕분에 일본에 귀국한 후에도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여긴다.또 다른 추억은 1924~1925년 무렵이었다.전주공회당에서..
2024.11.26 -
가네모리의 추억
미곡 무역상의 아들 가나모리가나모리 슈이치는 미곡상의 아들로 재조선 일본인 2세다.조선의 군산 삼조통에서 태어났지만, 씨는 일본 씨라며, 야마토혼의 정체성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긴다.전매국이 직장이었지만, 항상sawlead.tistory.com 가네모리는 1925년부터 본격적인 신혼살림을 전주에서 시작한다.이때부터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해, 가네모리가 일본으로 귀국하기 전까지 20년은 그의 황금기였다.가네모리는 전주에서의 그 추억을 5개로 나누어 기록했다.1. 처음으로 사회에 첫 발을 디딘 곳이 전주였다. 2. 처음으로 아내 이외의 여성과 교제를 한 곳이 전주였다. 그는 내연녀를 전북도 내무부장의 그녀였다며,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지만, 결국 그의 결혼 생활은 파탄에 이르게 된다.3. 궁도, 즉, 활쏘..
2024.11.25 -
미곡 무역상의 아들 가네모리
가네모리 슈이치는 미곡상의 아들로 재조선 일본인 2세다.조선의 군산 삼조통에서 태어났지만, 씨는 일본 씨라며, 야마토혼의 정체성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긴다.전매국이 직장이었지만, 항상 군복을 입고 출근했다.그 이유는 재향군인 서분회장, 청년훈련소장, 특설방호단장 등을 겸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 자랑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그는 자신의 집을 군산 토박이 미곡 무역상이라고 자랑하며, 1935년경 17만 5천 톤, 군산항 미곡의 10%를 담당했다고 수량을 정확히 기억한다.1922년경 혼로 나고야중으로 유학하여 졸업한다. 1923년 대구 80연대에 입영해, 1년 4개월 만에 보병 견습 사관을 마치고 다시 가업에 종사한 것이 1925년이다.그의 부친은 여러 대형 도매업체를 인수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연초 도..
2024.11.24 -
마루야마 포목점의 시미즈
1945년 광복 후 일본으로 가게 된 시미즈는 오사카에서 살았다.시미즈에게 전주는 어머니가 태어난 곳이며, 자신이 태어난 곳이다.현재는 전주의 웨리단길이라 불리던 곳에서 그의 부모는 마루야마 포목점을 운영했다.유년 시절 시미즈는 가세, 마사코, 하세가와, 도미코, 하루에와 함께붉은 매화 꽃잎과 물을 섞어 장미빛 물을 만들기도 하고버들강아지를 들고 꽈리를 불며, 흙으로 만든 만두와 나뭇잎으로 만든 도시락을 들고 집 앞 언덕으로 소풍을 가곤 했다.유년 시절을 떠올리던 시미즈는 일본의 집은 임시 거처이고, 자신의 진짜 집은 전주에 있다는 생각에 잠긴다.1978년 중년이 된 시미즈는 전주 소학교 출신의 모임인 39회와 함께 전주를 다시 찾는다.김포 공항에서 내리던 순간 "이 공기와 빛을 나는 계속 찾고 있었다..
2024.11.23 -
전주에 살던 일본인 다카히라
다카히라 마사노리의 기록을 토대로, 일제강점기 전북 전주에서 그가 살던 집을 지도에서 찾아냈다.지도에 그의 집이 표기되었을 정도로 저택에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다카히라의 아버지는 전주부동산(주)의 이사를 지냈다. 관련 소송 기록 등을 보았을 때 그의 아버지는 부동산업과 금융업을 하며, 부를 쌓은 것으로 보인다.다카히라는 전주에서 소학교를 졸업 후 대전중학교에 진학하였다. 졸업 후에는 이리(현 익산) 농사 시험장에 실습생으로 1년간 있었다.대학 졸업 후에는 산업조합중앙회에 근무하다가, 결혼을 위해 전주로 돌아온다.그러나 신혼 반 년만에 소집영장을 받고 군에 입대한다. 이후 경리부 간부 후보생으로 합격해, 남방에서 군 생활을 한다,일본이 1945년 전쟁에서 패하자, 포츠담 선언의 담당 소위로 근무하다가..
2024.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