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7. 08:48ㆍ카테고리 없음
조선시대 서적중개상 책쾌(冊儈, 書儈, 서책쾌, 책주름, 책괴, book dealers)는 독자의 주문에 따라 서적과 소설을 구해주고(골동품도 취급한다) 이득을 취하던 개인 또는 집단이었다. 또한, 역관이 중국서적을 수입하면 책쾌는 국내 전역에 서적을 공급했다. 국내 책쾌의 활동기록은 16세기 중반부터 1970년까지다.
근대기 책쾌들
국내 마지막 서적 중개상 송신용(1884~1962)은 일제강점기 서물동호회(書物同好會; 고문서 수집 연구)에서 활동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왕실과 관가, 저잣거리를 왕래하며 내방가사, 소설류 등을 취급했다. 반면에 한상윤(?~1963)은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며, 주로 불교서적을 거래했다. 반은 중(僧)이고 반은 기인(奇人)이었다. 김효식(?~?)은 송신용에게 고서지식을 가르쳐주었다. 고서화, 고적, 골동품 등의 감식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이성의(?~?)는 지방을 다니며 구입한 서적을 조선총독부 도서관에 독점 납품했다. 미국 콜롬비아대학교에 그의 화산문고본(517종 1857책)이 소장되어 있다. 장서가 김약슬(1913~1971)은 고서수집과 서적 유통에 정통한 사람이다.
책쾌의 분류
책쾌의 성격은 전문가형, 겸업형, 지식인형으로 나눌 수 있다. 전문가형은 오직 서적 매매와 중개를 전문으로 하는 예로 조생으로 불리던 조신선을 들 수 있다. 화산서림을 차리고 경영까지 하던 이성의는 겸업형에 해당한다. 지식인형은 생계유지를 위해 임시로 책쾌 노릇을 하던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누가 어떤 책을 가지고 있는지 자세히 알고 있었다.
조선판 분서갱유
1771년(영조 47년) 5월 『명기집략(明紀緝略)』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중국의 주린이 쓴 『강감회찬』에 조선 왕실을 무함하는 불온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글을 박필순이 영조에게 올리면서 시작된다. 이때 주린이 지은 모든 책을 수색, 조사하는데, 가장 문제가 된 책이 『명기집략』이었다. 이 일로 책쾌가 중국에서 발간한 책을 매매하는 것을 금지하였고, 이 중 책쾌 배경도와 이희천은 극형에 처해 효시되었고, 나머지 관련자는 흑산도 노비가 되었다. 책을 유통한 책쾌는 예외 없이 처벌받았으나, 책을 소지한 자들은 모두 방면되었다.
참고문헌
이민희, 2006, "책쾌 송신용과 교주본 여용국전 연구", 한국민족문화 29
이민희, 2008, "조선과 중국의 서적중개상과 서적 유통무화연구", 동방학지 141
우정임, 2010, "16세기 후반기 방각본의 출현과 책쾌의 활약", 역사와경계 76
신종한, 2011, "근대 이행기의 문학 출판 제도의 변천", 한국문화창작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