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네모리의 추억

2024. 11. 25. 20:16전주

반응형

 

 

미곡 무역상의 아들 가나모리

가나모리 슈이치는 미곡상의 아들로 재조선 일본인 2세다.조선의 군산 삼조통에서 태어났지만, 씨는 일본 씨라며, 야마토혼의 정체성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긴다.전매국이 직장이었지만, 항상

sawlead.tistory.com

 

가네모리는 1925년부터 본격적인 신혼살림을 전주에서 시작한다.
이때부터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해, 가네모리가 일본으로 귀국하기 전까지 20년은 그의 황금기였다.
가네모리는 전주에서의 그 추억을 5개로 나누어 기록했다.
1. 처음으로 사회에 첫 발을 디딘 곳이 전주였다.
2. 처음으로 아내 이외의 여성과 교제를 한 곳이 전주였다. 그는 내연녀를 전북도 내무부장의 그녀였다며,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지만, 결국 그의 결혼 생활은 파탄에 이르게 된다.
3. 궁도, 즉, 활쏘기로 전주에서 여러 성과를 이룩하고, 일본으로 귀국 후에도 도장을 만들어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4. 3번과 연관된 궁도에 대한 것인데, 1935년부터 1941년경까지 그야말로 뭐든지 이룰 수 있는 자유경제의 황금시대였다고 그는 말한다. 물자는 싸고, 관료의 임금은 일본 보다 60% 이상 받았고, 근무 역시 여름에는 오전에만 일했다. 이때 그는 궁도로 봉찬대회에 3회 연속 조선 대표로 출전하여 3연승을 거두는 성과를 이룩한다.
5.  태평양 전쟁 패전 후 그의 최후의 인양지는 전주였다. 당시 가네모리는 일본의 패전 소식을 북선(한)의 산중에서 듣고, 150명의 부하를 책임지느라, 10월 초순에 전주에 도착하지만, 가족들은 이미 전주를 떠나고 없었다. 그가 어떤 임무를 맡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어떤 막중한 책임을 맡아 처리한 공을 알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행간에서 읽을 수 있다.
그는 "생각해 보면 길었지만, 순간의 꿈 같기도 하다"며, "전주는 잊을 수 없는 땅이"라고 글 맺고 있다.

"1930년대 담배도매인 연회장에서 기모노를 입은 미모의 여인을 만나는 28살의 가네모리를 그려줘"라는 명령에 Copilot이 그려준 그림

 

반응형

'전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이사와 JOAK  (0) 2024.11.26
미곡 무역상의 아들 가네모리  (1) 2024.11.24
마루야마 포목점의 시미즈  (0) 2024.11.23
1988년 전주 동문거리  (0) 2022.09.09
야간비행  (0) 2021.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