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곡 무역상의 아들 가네모리

2024. 11. 24. 21:47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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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모리 슈이치는 미곡상의 아들로 재조선 일본인 2세다.

조선의 군산 삼조통에서 태어났지만, 씨는 일본 씨라며, 야마토혼의 정체성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긴다.

전매국이 직장이었지만, 항상 군복을 입고 출근했다.

그 이유는 재향군인 서분회장, 청년훈련소장, 특설방호단장 등을 겸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랑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집을 군산 토박이 미곡 무역상이라고 자랑하며, 1935년경 17만 5천 톤, 군산항 미곡의 10%를 담당했다고 수량을 정확히 기억한다.

1922년경 혼로 나고야중으로 유학하여 졸업한다. 1923년 대구 80연대에 입영해, 1년 4개월 만에 보병 견습 사관을 마치고 다시 가업에 종사한 것이 1925년이다.

그의 부친은 여러 대형 도매업체를 인수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연초 도매였고, 그의 제대 무렵 800만 엔 규모의 대기업이 되어 있었다. 그는 전주 총지점의 영업주임으로 활동하는데, 이때 부인과 함께 전주 본정의 당시 유명한 은행나무집이라고 불리던 여관에 세 들어 살게 된다. 이 여관은 목욕 시설이 유명했다. 이후 그는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20년간 전주에서 살았다. 

그는 자신의 가장 화려했던 전주 시절의 추억을 5개로 나누어 기록했다.

(2편에서 계속)

"1930년대 일제강점기 전주의 거리를 군복을 입고 당당하게 걷고 있는 가네모리를 그려줘. 가네모리의 직장은 전매국이고, 아버지는 전매국의 임원이야."라는 명령에 Copilot이 그려준 그림

 

 

가나모리의 추억

가나모리는 1925년부터 본격적인 신혼살림을 전주에서 시작한다.이때부터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해 일본으로 귀국하기 전까지 20년은 가나모리의 황금기였다.가나모리는 전주에서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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