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19. 14:48ㆍ전주
20세기 후반 전주에는 꽤 유명한 우족탕 집이 있었다. 이 집은 사장과 주방장이 앙숙이었다. 주방장은 사장이 망하라고 고기를 몰래 손님들에게 더 주곤 했다. 방법은 이렇다. 500원짜리 지폐를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아서 뒷구멍으로 주방장에게 건네주면 되었다. 그런데 이 가게는 망하기는커녕 대박이 났다. 현재 이 가게는 없어졌다. 사장이 눈치를 채고 뒷구멍을 막아서라고 어떤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20세기 중반 국가에서 운영하는 동사무소에도 뒷구멍이 있었다. 등본 따위의 서류를 급하게 발급받기 위해서는 급행료라는 것을 관료에게 뒷구멍으로 지불하면 남보다 빨리 서류를 받아 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국가의 재정이 넉넉하지 못해, 관료들은 담배 또는 현물을 월급 대신 받았고, 이들의 아내는 시장에 그것을 내다 팔아 생활을 했다. 아직도 재정이 좋지 않은 후진국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한다.
21세기 최첨단 산업에도 뒷구멍이 존재한다. 이것을 한국의 IT업계에서는 속칭 개구멍이라고 부르고 미국이란 나라에서는 Back Door라고 부른다. 이것은 특정 전산 시스템의 보안과 유지 관리를 위해 특정 관리자만이 접속할 수 있는 비밀 통로 같은 것인데, 해커들에 의해서 악용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뒷구멍을 막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그 문에 보초를 더 단단하게 세워 특정한 관리자만 출입을 가능케 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춘추전국시대 법가는 법 체제를 세밀하게 구성하여 국가를 바로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유가에서는 법망이 아무리 세밀해도 그물에 구멍이 나 있는 것처럼, 법에 의한 통치는 온전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내세운 통치는 인과 덕에 의한 통치인데, 공자가 지금도 일부에서는 존경을 받기는 하지만, 그들은 실패했다.(작명학에서는 어질 인(仁) 자의 사용을 금기시하는데 이런 연유에서 나온 것이다. 공자가 인으로 세상을 바꿔 보려고 했지만, 고생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사랑 애(愛) 자도 금기시된다. 예수가 사랑으로 세상을 바꿔보려고 했지만, 십자가형에 처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뒷구멍이란 것은 과거에 만들어진 시스템이 현재의 상황을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부정적인 선입견을 느끼게 하는 이 뒷구멍을 통해서 현실 세계의 시스템은 균형을 잡게 된다. 이런 어쩔 수 없는 현상을 이해하는 자도 있고, 그렇지 못한 자도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상황에 따라 가장 위험한 사람은 부패한 관료가 아니라, 융통성 없는 청렴한 관료인 때가 더 많다. 어쨌든 이 뒷구멍은 사라질 수 없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월간 김창주,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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