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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전주 최초의 일본인

by 월간 김창주 2021.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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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사무소를 철폐하라

  대한제국이 제네바 협약에 가입한 1903년 1월 외부대신 조병식이 일본임시대리공사 하기와라 모리카즈(萩原守一)에게 “일본인 모리나가 신소(守永新三)가 불법적으로 전주 서문 밖에 설치한 우편사무소를 철폐하도록 조처하여 줄 것을 요청”한다. 대한제국의 슬픈 운명을 보여주듯 외부대신의 공식적인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 행정력은 전주까지 미치지 못했다.

  1902년 12월 5일, 전주의 일본인 회장 모리나가 신소는 우편수취소를 전주군 부내면 행동, 그러니까 당시 대정정 1 정목 26번지에 개설한다. 우편, 소포, 우편 대체 예금 사무를 취급하고 1903년 7월부터는 집배 사무를 시작한다. 처음 개소 시에는 간판 옆에 일장기를 달고 영업을 했지만, 한국 정부의 철폐 요구가 있자 간판을 건물 뒤에 달고 영업을 계속 이어갔다. 1906년부터는 한국 우체사와 전보사를 장악하여 전신 사무를 취급하고 1906년 7월부터는 전주우편국이라 개칭한다. 1910년 일제의 강점 이전에 전주의 현대식 통신수단을 점령한 것이다.

 

성씨가 다른 형제

  1897년 모리나가는 일본 야마구치현 사람으로 성씨가 다른 형인 이노우에 쇼타로(井上正太郞)와 함께 전주에 최초로 이주한 일본인이다.  이들처럼 처음 전주에 정착한 일본인은 전주 서문 밖에서 오두막을 짓고 살며 말라리아약, 회충약, 사탕 등 잡화를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중 사탕에 대한 묘사가 자세한데, 전주 사람들과 경쟁하며 박하사탕과 생강사탕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이들이 일본 옷을 입고 전주를 거닐면 개가 짖으며 쫓아왔고, 밤중에 집안으로 죽창이 날아든 적도 있다며, 무용담처럼 소회를 기록해 놓았다. 20세기 첫 양띠 해인 1907년 전주성이 헐리자, 이들은 전주 원도심의 상권을 장악한다. 모리나가의 이름은 20세기 초에 있었던 유길준 쿠데타 음모 사건에도 등장한다. 이 일본인들은 과연 잡화상이었던 걸까?

※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책을 참고해 주세요.

 

전주미학

전주미학

www.aladin.co.kr

좌: 이노우에 쇼타로(井上正太郞), 우: 모리나가 신소(守永新三)

 

유길준 쿠데타 음모 사건

  이 사건은 유길준이 일본 유학생을 규합해 의친왕을 추대하고 입헌군주제 형식의 내각을 수립하고자 한 음모였으나, 함께 사건을 도모했던 인천의 거부 서상집의 배신과 폭로로 실패한 쿠데타였다. 1902년 4월 30일 주한일본공사관은(往電 第52號) 모리나가 신소가 유길준의 쿠데타 음모와 관련이 있으니, 일단 조사한 후 퇴한(한국에서 퇴거) 조치하라는 훈령을 받는다. 모리나가는 쿠데타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기 위해 바다에 배를 띄워 놓고 사전(私錢)을 제조한다. 이 일을 맡긴 사람은 서상집으로, 백동화 주조를 위해 필요한 선박·기계·물품 등을 구입하여 주었다. 서상집은 처음부터 쿠데타의 성공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고종에게 밀고하여 조정의 충신으로 공을 세우고, 또 한편으로는 만들어진 백동화를 모두 독차지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음모 속에 숨겨진 또 다른 음모였다. 이때 유길준과 함께 일본에서 동거하던 사람은 이두황이었다. 이두황이 누구인가? 동학교도를 잔혹하게 진압해 명성을 얻은 후,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가담해 일본에 망명 중이었다. 1910년 일제의 강점이 시작되자 이두황은 전라북도의 첫 도 장관, 지금 말로 도지사가 되어 부임한다. 이후 모리나가와 이두황의 관계가 어땠을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대한제국 광무 6년(1902년)에 발행한 백동화(한국조폐공사 화폐박물관 소장)

언론과 학교 장악

  1905년 12월 25일 모리나가는 『전주신보』를 창간한다. 한일 양 국어로 인쇄한 주간신문으로 100부 내외를 발간한다. 1912년에는 형인 이노우에 쇼타로 등과 공동 출자하여 『전북일일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하고 16면에 이르는 신문을 발간한다.

  이 신문사는 1914년 제1회 전라북도물산공진회를 대비해 『전라북도안내』라는 책자를 발간한다. 모리나가가 편집한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전북의 인문지리적 특성과 인구·행정·교통 및 기타 전반적인 현황, 2장과 3장은 산업별 현황과 각종 통계, 4장은 전북지역의 명소를 사진과 일화를 소개, 5장은 전북에 속해 있는 시군의 현황과 명승고적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각 기관에서 종사하는 주요 인물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상점과 회사의 광고 등이 실려 있어, 1910년대 전북에서 활동한 일본인의 활동상을 볼 수 있다.

  1913년부터 1915년까지 형인 이노우에가 이 신문사의 사장으로 활동하였다. 1913년에는 보궐선거로 전주학교조합 의원으로 당선되어, 1915년에는 조합의 관리자가 된다. 이 형제는 잡화상에서 신문사 사장과 지역의 유지로 변신을 거듭한다. 이노우에는 1940년 사망하였고, 동생 모리나가의 행적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월간 김창주,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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