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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편경(編磬)

by 월간 김창주 2021.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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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 합주곡을 연주하기 전에 보통 대금의 음정에 맞춰 다른 악기들이 조율을 하는데요. 타악기인 편경이 있을 경우에는 편경에 맞추어 다른 악기들이 음정을 맞춥니다.

 

문: 왜 그런 거죠?

답: 대금이나 편경은 다른 악기, 예를 들어 현악기에 비해서 한 번 악기가 만들어지면 상대적으로 그 음을 바꾸기 어렵기 때문인데요. 또, 편경이란 악기가 값싸게 새로 만들기가 어려운 고가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문: 편경은 얼핏 본 기억이 있는데, 어떻게 생긴 악기인가요.

답: 생김새는 두 개의 상자 위에 각각 흰 기러기 한 쌍이 조각되어 있고, 그 위에 나무틀을 세워 ㄱ자 모양으로 만든 16개의 경돌을 음높이의 순서대로 위·아래 두 단에 8개씩 빨간 줄로 매어 놓았고요. 맨 위에 양편에 봉황 머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편경(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유물)

 

문: 나무틀에다 돌을 매달아 놓은 악기군요.

답: 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돌로 만든 타악기인데요. 실로폰처럼 각각 음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편경은 습도나 온도의 변화에도 음색과 음정이 변하지 않아, 과거 국악기 조율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문: 편경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었나요?

답: 편경은 고려 1116년(예종 11)에 편종과 함께 송나라의 제례 음악인 대성 아악을 수입하면서 들어와요. 우리나라의 궁중 제례악에 사용합니다. 음악과 함께 악기 재료도 중국에서 수입을 하다가, 1425년(세종 7)에 경기도 남양에서 좋은 경돌이 발굴되어 국산화가 이루어집니다.

 

문: 그럼 편경을 국산화한 분은 누구인가요?

답: 이때 등장하는 분이 우리나라 3대 악성(고구려 왕산악, 가야 우륵) 중에 한 분으로 일컬어지는 박연(1378~1458)입니다. 음악가 이전에 요즘 식으로 말하면 조선시대의 문화행정 관료였습니다. 이후에 임진왜란 등으로 제작 방법이 단절이 되었다가, 복구 노력이 있어왔습니다.

 

문: 그러면 언제 또 다시 복원이 되었나?

답: 비교적 최근인데요. 1979년에 전주 출신인 남갑진 악기장에 의해 다시 제작이 되는데요,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제작기간에만 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제작비 역시 고가여서 당시에 1,200만 원에 세종문화회관에 납품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문: 당시 악기 한 대에 1,200만 원이면 엄청나게 비싼 악기였네요.

답: 당시 금 한 돈 27,000원, 현재 금시세로 환산했을 경우, 7,600만 원 정도입니다.(2016년 3월 현재)

 

문: 대표적으로 어떤 음악에 사용이 되나요?

답: 현재 문묘제례악, 종묘제례악과 「낙양춘」, 「보허자」 등의 연주에 쓰이고 있습니다. 보허자는 허공의 걷는 사람이란 뜻의 춤곡인데요. 곧 신선이란 뜻입니다. 장춘불로지곡(長春不老之曲)이라고도 불려지고, 궁중 연례의 정재(呈才)에 사용되었습니다.

 

문: 늙지 않는 신선의 음악이란 뜻인 것 같네요.

답: 민간의 풍류방에서 전승된 현악보허자를 보허사(步虛詞)라고 하고, 본래는 중국 송나라에서 수입한 음악이었는데요. 중국풍의 형식과 주법이 무너지고, 한국 전통음악 어법으로 바뀌면서 다수의 파생 곡과 거문고 악보가 만들어져서 전승되고 있습니다.

 

문: 조선시대에 편경을 국산화한 박연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한데요.

답: 앞에서 박연이 음악가이자, 문화행정 관료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박연에 대한 이야기는 홍계희의 난계유고에 전해져 옵니다. 읽어보면 신선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문: 기이한 행동을 했나요.

답: “어릴 때부터 앉으나 누우나 마음속으로 악기를 치는 흉내를 내거나, 입으로 휘파람을 불며 율려를 소리 내니, 스스로 오묘한 경지를 터득하였다. 또, 지극한 효성에 감동하여 토끼가 따르고 호랑이가 지켜주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문: 음악에 대한 조회가 깊었다는 말씀인데, 율려는 뭔가요?

답: 율려는 계이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한 옥타브 12개 음이 있지요. 세종대왕은 박연이 음률에 정통하다고 하여 음악 일을 맡기게 됩니다. 이때 황종 율관을 제작하고, 이후에 편경을 제작하는데, 성현의 용재총화에도 피리 연주가 뛰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 황종 율관을 제작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답: 황종은 동양음악의 12율(12음) 중 첫 번째 음인데요. 예를 들어서 보통 기타를 조율할 때 소리굽새를 치거나, 라 음을 내는 피리를 불어서, 음을 조율하는데요. 마찬가지로 이 기본이 되는 음을 불어서 낼 수 있는 대나무 피리인 율관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문: 황종 율관을 만드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답: 보통 현악기도 줄의 길이에 따라 음의 높이가 달라지듯이, 관악기도 관의 길이에 따라 음의 높이가 달라집니다. 이 대나무 관에 곡식인 기장을 일정 높이 쌓아서 황종을 결정하는데요. 만들고 나니까, 중국 책에 기록된 것보다, 황종의 음 높이가 조금 높게 나옵니다.

 

문: 고증을 통해 만들었는데, 결과가 다르게 나왔네요.

답: 이때 박연 선생이 “땅에도 기름지고 메마른 차이가 있듯이, 기장에도 크고 작은 차이가 있으며, 소리에도 높고 낮은 차이가 있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을 하고, 다시 중국의 황종에 맞춰 제작을 하게 됩니다.

 

문: 왜 그랬을까요?

답: 박연이 이렇게 황종음을 재연한 것은 역사주의적 관점에서 대성아악이 수입된 당시의 체재로 정비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서양음악에서도 중세 악기와 공연장을 복원해서 이런 노력을 하곤 합니다.

 

문: 그러면 악기를 조율하는 기준 음이 중국과 달랐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답: 사실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중국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달랐습니다. 서양에서도 20세기 초만 해도 유럽의 각 나라마다, 플루트의 길이가 달랐고, 당연히 음정도 달랐는데요. 독일의 연주자가 영국에 가서 연주를 하려면, 영국산 플루트를 새로 구입하거나, 플루트를 음정에 맞게 잘라 내거나 해야 했죠.

 

문: 유럽에서도 나라마다 기준 음이 달랐다는 말씀이네요.

답: 19세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1803년에 독일의 성악가가 영국 볼턴의 한 술집에서 이탈리아 성악가를 만나는데요. 서로 기준 음이 다르다느니, 서로 노래하는 게 반 음 높다 낮다 하면서 논쟁을 해요. 그래서 그 술집에 있는 피아노로 내기를 해요.

 

문: 누가 맞았나요?

답: 둘 다 틀립니다. 왜냐면 영국의 피아노였기 때문이죠. 이렇게 나라마다 동네마다 음을 조율하는 기준 음이 달랐는데요. 이 사실을 역사가들이 각 지역, 나라마다의 소리굽새를 찾아내서 밝혀 놓았어요.

 

문: 그러면 그때 당시에 작곡한 음악을 현재 다시 연주하면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답: 예를 들어 모차르트 시대의 A음은 Bb으로 지금보다 반음이 높았다고 합니다. 모차르트곡을 그 당시의 음높이로 연주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또 그렇게 연주하기도 합니다. 이러다가 1939년 런던에서 A음 주파수를 440 헤르츠로 하기로 하고 전 세계가 통일이 됩니다.

 

문: 그러면 국악기도 440 헤르츠로 조율이 되겠네요?

답: 네 그렇습니다. 이 측면이 아쉬운데요. 단순히 기준 음뿐만 아니라, 각 나라마다 음과 음 사이의 간격도 달라요. 예를 들어 도와 레 사이가 더 길기도 하고 더 짧기도 한데요. 이것 역시 평균율에 의해 조율이 되는데, 이런 특징은 음악적 다양성을 훼손합니다.

 

문: 그래도 아까 술집에서 성악가들이 싸운 것 같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겠다.

답: 예를 들면 김치를 담가도 집집마다 고춧가루와 젓갈을 넣는 비율이 다르고, 이런 차이가 사실 문화입니다. 이런 서양음악적 특징은 음악의 화성적 운용에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고유의 선율, 선법적 운용에는 적절치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본래 고유의 맛이 나지 않게 됩니다.

 

문: 화학조미료를 뿌린 비슷비슷한 맛이 난다 이 말인가요?

답: 그렇죠.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문화는 다양성과 차이에 있다는 것, ‘우리 것이 최고다’는 명제는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고, 다문화사회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이해심과 포용력이 중요하다는 것, 이것이 역사가 또 음악이 주는 교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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