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머드의 꿈

2021. 5. 11. 00:58문화

반응형

  1996년 11월 26일 부안 앞바다에서 매머드의 어금니가 발견이 됩니다.

 

문: 매머드가 맘모스를 말하는 것인가?

답: 맞아요. 마몬트, 맘무트, 맘뭇이라고도 불리어지는데, 북한에서는 털코끼리라고 합니다. 재미있지요. 오늘은 매머드와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코끼리 이야기를 준비했는데요. 맘모스하면 뭐가 생각나시나요?

 

문: 눈 덮인 빙하시대, 화석, 시베리아 등등

답: 지금도 쓰이긴 하지만, 한때 이런 표현이 있었어요. 맘모스 빌딩, 맘모스 호텔, 맘모스 백화점, 맘모스 무도장, 맘모스 빌딩, 맘모스 도시. 최근에는 커피까지도 맘모스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을 보면, 현대인에게 맘모스는 거대한 자본 앞에 놓인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동물로 부활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 시작부터 거창한데 기대가 됩니다. 영화에서 보면 눈밭에서 엄청나게 큰 매머드가 뛰어다니는데, 크기가 어느 정도인가?

답: 털복숭이 매머드의 상아 길이만 4m인데요. 구체적인 크기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왜냐면 요즘은 매머드 보다 큰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시대라 수치로 크기를 말하면 환상이 깨져요. 상아 길이로 한 번 머릿속에 매머드를 그려 보세요. 인간의 욕망만큼 크지 않습니다.

※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책을 참고해 주세요.

 

전주미학

전주미학

www.aladin.co.kr

Hunting Woolly Mammoth

문: 코끼리는 초식동물로 알고 있는데, 매머드도 초식동물인가요? 초식동물이면 인간의 욕망하고 거리가 먼 순수한 동물인 것 같다.

답: 초식동물이 맞아요. 매머드를 사람들은 처음부터 코끼리 모양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뿔이 하나 달린 신화 속 동물로 추측을 했어요. 그러다 러시아의 표트르대제가 1720년대에 시베리아의 고적을 발굴하기 위해 학자를 보내는데, 이때 냉동된 매머드가 발견이 됩니다.

Peter I the Great(Paul Delaroche, 1838)

문: 냉동된 상태로 발견이 되어서 매머드가 코끼리 형태라는 것을 알겠되었다는 이야기인데. 그 추운 데까지, 초식동물이 풀도 안나는 땅으로 왜 갔을까요?

답: 매머드가 눈 덮인 벌판에서 살았다는 것은 잘못된 이미지입니다. 매머드가 살았던 시절의 극지방의 환경은 툰드라가 아니라, 스텝이었습니다.

 

문: 잠깐만요. 학교 다닐 때 지리시간에 배운 거 같은데 툰드라는 뭐고 스텝은 무엇인가?

답: 툰드라는 얼어붙은 평원이란 뜻이고, 스텝은 50cm 이하의 풀이 나는 초원을 말하는데요. 약 1만 년 전에 극지방의 환경이 일부는 툰드라, 또 일부는 침엽 수림지대로 변하면서 극지방의 스텝에서 살던 매머드와 코뿔소가 사라졌는데, 일부가 냉동된 채로 발견이 된 거죠

 

문: 매머드는 넓은 초원의 풀을 먹고살았다는 말씀이네요.

답: 실제로 냉동된 채로 발견이 되었기 때문에 뭘 먹었는지 밝혀졌어요. 하루에 식물을 200kg 정도 먹은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데, 위장에서 여러 종류의 식물이 발견이 되었어요. 특히 꽃가루가 발견이 되면서 어떤 환경의 초원인지 추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문: 부안 앞바다에서 나온 매머드는 어떻게 발견이 되었나요?

답: 당시 기사를 보면 부안군 위도면 왕등도 북쪽 1km 지점에 설치했던 그물에 걸려든 것을 어부인 조수룡 씨가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지는데, 부산대 지질학과 김항묵 교수가 5만 년 전 빙하기에 살았던 매머드의 어금니가 확실하다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문: 그럼 오래전에 매머드가 우리나라에 살았다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답: 의견이 분분한 것 같은데요. 사실 이건 전문가보다 어린이들한테 물어보면 더 잘 알아요. 1962년에는 함경북도 화대군 장덕리에서도 매머드의 화석이 발견이 되었고, 1934년에는 만주에서 철도 공사를 하다가 또 발견이 되어서 털코끼리의 이동경로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문: 앞에서 냉동된 채로 발견이 되었는데, 만주에서 어떤 모습으로 발견이 되었나요?

답: 두개골만 발굴이 되는데요. 1932년에 일제가 만주국을 세우는데, 이때 만주의 철로를 확장하면서 발굴한 것입니다.

 

문: 매머드 이동경로가 꼭 일본 제국주의 이동경로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답: 재미있는 해석이네요. 이런 매머드 화석을 일제는 자기 나라로 가지고 오려고 했어요. 1946년 4월 1일에 인천시립박물관이 개관을 하는데, 매머드 상아가 전시가 되요. 일본군이 가지고 가려다가 해방이 되면서 인천항에 묶여 못 가져갔다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문: 지금은 우리나라에 코끼리도 살지 않는데, 예전에는 살았을까요?

답: 글쎄요. 매머드가 아프리카 코끼리에 가까운지, 아시아 코끼리에 가까운지 30년간 논쟁이 있었는데, 2005년에 매머드의 DNA 정보가 복원이 되면서 아시아 코끼리에 더 가깝다고 밝혀졌고, 『조선왕조실록』에 왕실에서 코끼리를 키운 기록이 있습니다.

 

문: 지금은 코끼리를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데, 조선시대에 동물원이 있었나?

답: 1411년에 일본국왕 원의지가 코끼리를 우리나라에 바쳐서, 키웠는데 하루에 콩을 4~5말을 먹었습니다. 기록을 더 살펴보면 암수 두 마리를 보낸 것 같은데, 중간에 사고를 쳐요. 이우가 기이한 짐승이라 하여 가보고, 그 모습이 추하다고 비웃고 침을 뱉었는데, 코끼리가 화가나서 이우를 밟아 죽입니다.

 

문: 실록이 동물 입장에서 기록을 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어떻게 되나요?

답: 1413년에 지금의 전라남도 보성군 장도로 코끼리를 귀향을 보내요. 다음해에 코끼리가 먹지 않아서 날로 수척해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린다고 보고가 되니까, 태종임금이 다시 육지에 나와 살게 하는데, 1420년 전라관찰사가 또 왕에게 보고를 해요.

 

문: 또 사고를 쳤나요?

답: 이때는 세종임금 때였는데, 코끼리가 너무 많이 먹으니까, 충청도, 경상도에서도 돌아가면서 키우게 해달라고 해서 1421년에 충청도에서 키우는데, 충청관찰사가 코끼리가 사람에게 도움도 안 되고 화가 나면 사람을 해치다며, 키우던 종이 코끼리에 차여서 죽었다고 보고해요.

 

문: 이번에도 섬으로 귀향을 가나요?

답: 네 또 섬으로 귀향을 가는데, 세종임금이 “좋은 물과 풀을 가려서 주고, 병들어 죽지 않게 하라”고 당부를 합니다. 울림이 있지 않나요.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함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문: 매머드, 코끼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늘의 결론, 어떻게 내릴지 궁금하다.

답: 『조선왕조실록』에는 코끼리에 관한 두 가지 관용구가 나온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속담과 ‘코끼리가 밭을 갈고 새가 김을 맨다’는 말이다. 앞에서 매머드가 뿔이 하나 달린 신화 속 동물로 생각하다가 18세기가 돼서야 코끼리 모양이란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다양한 관점의 인정과 공존이 없다면, 과거는 매끈한 신화적 우상이 되거나 괴물이 만들어 진다.

  앞에서 어린이들이 더 잘 안다는 말은 무엇인가? 전문가는 자신이 아는 것만을 말하지만, 어린이는 자기가 모르는 것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끼리가 밭을 갈고 새가 김을 맨다’라는 말은 조선시대에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매머드 같은 트랙터가 밭을 갈고 드론이 날아다닌다. 요즘은 이 상상력의 중요성을 누구나 알고 있다. 또한 획일화된 관점 안에서 상상력이 발동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맘모스, 털코끼리가 인간의 욕망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과 상상력을 상징하는 동물이 되었으면 한다.

 

 

반응형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을 나는 수레  (0) 2021.05.11
무즙파동  (0) 2021.05.11
2015년 영감사전  (0) 2021.05.03
의열단 김상옥과 친일파 박중양  (0) 2020.08.22
이슬람 여성은 히잡을 좋아할까?  (0) 2020.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