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11. 17:10ㆍ문화
한문으로 날비(飛)에 수레 거(車),, 비거 또는 비차라고 불리는 하늘을 나는 수레를 만든 조선시대 발명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문: 하늘을 나는 수레면 비행기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답: 지금 같은 엔진이 달린 비행기는 아니지만, 하늘을 날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문: 어떤 책에 기록되어 있는지 궁금한데요
답: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인 이규경이란 분이 쓰셨는데, 이분은 18세기 후반에 태어나서 19세기 중반까지 활동을 하셨습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 책을 남기셨는데, 이 책에 하늘에 나는 수레에 대한 여러 기록이 남겨져 있습니다.
문: 『오주연문장전산고』란 책 이름은 참 어렵네요, 무슨 뜻인가요?
답: 오주는 이규경의 호인데, 오대양 육대주라는 뜻이고 연문(衍文)은 쓸데없는 글귀, 장전(長箋)은 긴 기록, 산고는 산만한 원고라는 뜻인데, 저자가 겸손하게 붙인 책이름입니다. 백과사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19세기 중반을 전후해서 쓰여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문: 그러면 그 이전에는 하늘을 나는 수레에 대한 기록이 없나요?
답: 관련 논문을 보면 중국 쪽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기록으로 가장 처음 기록된 것입니다.
문: 뭐라고 쓰여 있나요?
답: 비거 발명가를 중심으로 말씀드리면 이규경의 책에는 윤달규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비거를 가지고 있는데, 그 만드는 방법을 기록해 두고 있지만, 감춰두고 사람들에게 보여주지는 않는다”라고 쓰여 있고, 이보다 앞서 임진왜란 때 쓰인 비거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문: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한데, 그림이나 도면 같은 게 남아있나?
답: 그림이 남아 있지 않아서 어떻게 생겼는지 추정하기는 어려운데, 묘사를 해놓긴 했어요. 압축공기를 내보내서 이륙하는 힘을 얻고, 비거에 탄 네 명이 날개를 움직여 비행한다, 이어서 회오리바람이 불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광풍이 불면 추락한다. 200m를 날 수 있는데 상승기류를 만나면 30리를 날 수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문: 정말로 날아갈 수 있을까요?
답: 2000년 3월에 실재로 고증을 해서, 약 10초 동안 고도 20m에서 최대 74m를 비행한 기록이 있습니다. 기록에는 뭔가 동력이 있는 것 같은데, 고증할 때에는 글라이더 형태로 대나무, 무명천, 무명끈, 소나무 등으로 만들었습니다. 최근에는 비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알려지면서 사람은 탈 수 없지만, 축소된 형태의 비거를 만들어 복원해 비행을 고증한 분도 있습니다.
문: 윤달규라는 분은 어떤 사람인가?
답: 이규경의 책 외에는 현재까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데, 18세기 전후에 살았던 인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기록이 별로 없는 것처럼 당시에는 별 반향이 없었지만 1910년대부터 신문지상에 등장합니다. 일본에서 비행기가 들어오니까, 우리도 이미 비행기가 있었다는 식이죠.
문: 임진왜란 때 쓰였는다는 비거는 윤달규가 만들었나?
답: 임진왜란이 1592년, 16세기 말에 발발하고, 윤달규가 18세기 전후에 살았던 사람이니까 또 다른 발명가가 있었던 셈인데, 이규경의 글에는 발명가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고, 이 비거가 임진왜란에 활용된 사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책에는 김제 사람 정평구가 발명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문: 비행기가 공격을 했을까요?
답: 이게 버전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이규경의 책에서는 성 안에 성주가 왜구에게 포위되었는데, 성주의 친한 어떤 사람이 비거를 제작해서 성중으로 날아 들어가 성주를 구해 30리를 날아 지상에 착륙해서 왜적의 칼날을 피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920년대에 들어와서 이 비거 발명가를 김제 출신의 정평구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문: 여러 버전이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답: 이 비거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사실에 대한 고증이 잘 안된 측면이 있어서, 역사라기보다는 설화에 가까운 부분이 있기도 하고, 자부심이 앞서다 보니까 덧 붙여 진 것도 있습니다. 본래 자료는 얼마 안 되는데 많은 부분 상상력이 붙어서 가공된 측면이 있습니다.
문: 16세기 비거를 발명한 정평구는 어떤 사람인가?
답: 정평구라는 인물은 역사적 기록보다는 설화를 기반 한 기록이 더 많은데,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김제 지역에서는 부량면 제월리 출신이고 병법과 축지법에 능했던 발명가, 임진왜란에 참전한 무관이라고 전해져 옵니다. 유재 송기면, 최남선, 권덕규 등이 남긴 정평구와 비거와 관련 기록들은 모두 20세기 초에 기록되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문: 상상력이 붙어서 가공되었다는 증거가 될 만한 것이 또 있나?
답: 정평구와 함께 등장하는 책이 『왜사기』라는 책입니다. 일본 쪽 역사서에도 임진왜란 때 정평구와 비거가 기록되었다는 것인데, 우리 쪽 기록만 있는 것보다, 반대편의 기록도 교차검증이 되면 훨씬 신빙성이 높아지잖아요. 그럴싸해 보이고요. 그런데 이 『왜사기』라는 제목의 책은 존재하지 않는 책이란 점에서 검증하지 내용을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하면서 설화적 변형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문: 그러니까 윤달규가 18세기경에 비거 발명했다고 한 기록이 최초인데, 20세기 초 일제강점기에 정평구가 비거를 발명했다는 설이 새로 등장하고 발명 시기도 임진왜란 때로 훨씬 앞당겨지는데, 왜 그랬을까요?
답: 일제강점기 잡지에서 등장한 정평구의 비거는 임진왜란을 극복한 과학과 기술적 자부심 같은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자긍심과 무한한 상상력, 이야기의 힘이죠. 최근에는 『떴다 떴다 비거 날아라 정평구』라는 동화, 소설 등이 발표되고 있어서, 정평구의 이야기는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문: 이야기가 진화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이 비거도 잘 계승해서 과학과 기술도 진화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네요
답: 그런 노력도 하고 있어요. 2010년부터 경남 사천 항공우주 테마공원에서 국제 신비자 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자동차가 가다가 비행기로 변해서 날아가는 차가 있는데, 실재 이런 모형 비거를 만들어서 기술을 겨루는 대회입니다. 누리집에 가보시면 수상한 작품들의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힘이 기술 개발까지 이어지는 장면인데, 역시 상상력이 힘입니다.
참고문헌
김병수 외, 「Flying Car 국내외 개발 현황 및 국제 신비차 경연대회 소개」, 『한국항공우주학회학술발표회 논문집』, 2013
박성래, 「윤달규의 비거」, 『국어문학』, 2000
윤광준 외, 「조선시대 비차 기록에 대한 고증」, 『한국항공우주학회 학술발표회 논문집』, 2000
한국발명진흥회, 『우리 지역을 빛낸 발명위인! 발명품!』, 2006
허정주, 「정평구 설화의 세계와 문화적 의미」, 『비교민속학』 Vol.4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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