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5. 22:54ㆍ문화
3월 3일이 삼겹살데이죠. 축협이 양돈 농가의 소득을 늘리기 위하여 삼겹살을 먹는 날로 정했는데요. 삼겹살은 많이 보셨어도, 현대인은 돼지를 실제로 거의 보기 힘들어요. TV나 영화, 사진에서 보죠. 직접 보신 적 있나요?
저는 열 살 때쯤인가, 시골에 놀러 갔다가 처음 봤는데, 엄청나게 커서 놀랬던 적이 있습니다. 현대인은 이렇게 돼지의 각 부위는 알아도 실재 돼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공장식 사육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 등에는 무관심한 것이 사실이죠. 이렇게 먹는 돼지 이야기도 있지만, 반려견처럼 반려돈을 키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속담과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돼지 이야기, 일제강점기에 돼지 때문에 벌어진 동맹휴학 사건(돼지 스트라이크)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문: 실제로 돼지가 상당히 영리하다고 들었습니다.
답: 봉준호 감독의 2017년 작품 영화 『옥자』를 보면 돼지의 이런 특징이 잘 묘사된 블랙코미디라는 생각이 들어요. 슈퍼돼지 옥자와 산골 소녀 미자의 여정을 다룬 영화인데요. 옥자를 친구이자 가족으로 그리고 있는데, 영화에서 슈퍼돼지 옥자를 다국적 회사가 납치하면서 벌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비밀 동물보호단체 ALF가 등장하면서 옥자의 탈출을 도와주는 것 같지만, 미자의 여정은 더욱 어렵게 만드는데요. 다국적 기업이나 동물보호단체, 모두 각자의 이익과 욕심을 위해서만 움직이지 정작 옥자의 삶에는 무관심한데요. 영화에서 슈퍼돼지 옥자가 상당히 영리하게 묘사가 되어 있다.
문: 영화에서 보면 돼지를 반려동물로 키우는데, 실재로도 그런 사례가 있나?
답: 서양에서는 돼지가 귀엽기도 하고 지능이 높아서 반려동물로 키운다고 들었습니다. 『대단한 돼지 에스더』란 책에서 보면 돼지를 반려동물로 키우던 두 남자가 나중에는 완전히 채식주의자가 되고 가죽으로 된 신발과 옷도 안 입는 변화과정이 다큐멘터리처럼 잘 기록이 되어있는데요. 이렇게 된 이유가 돼지 에스더는 행복하게 사는데, 공장식 사육시설에서 사육되는 행복하지 못한 동물들을 더 이상 착취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변화가 되었고, 책이 세계 여러 나라에 출간되면서 육식 소비를 줄이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전주한옥마을에 이 학자라고 불린 분이 계셨어요. 덕가 이기원(1871~1959)이란 분인데요. 집에서 돼지새끼 한 마리를 길렀는데 1년이 되자 가솔들이 돼지를 시장에 내다 팔자고 합니다. 이학자는 돼지가 얼마나 오래 살지는 모르지만 사는 데까지 기르자고 해서 돼지 한 마리를 9년 동안을 길렀고, 미물인 파리가 물속에 빠져 허둥대면 정성스레 파리를 꺼내서 살려 날려 보내곤 했어요. 짐승이나 미물까지도 함부로 살생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한테 도움을 많이 주었기 때문에 인근에 소문이 나있었는데요. 일제강점기에도 전주에는 오갈 곳 없는 노숙자들이 있었어요. 노숙자들이 날씨가 추워 견딜 수가 없거나 너무 굶어 배가 고프면 이 학자 집으로 찾아와 먹여주고 재워줄 것을 간청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명의 노숙자들과 동숙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이 학자와 한방에서 함께 살다가 죽은 사람이 세 사람이나 되었습니다. 이 집이 전주한옥마을에서 영의정 댁, 온양집, 300년가로 불립니다.
문: 생명을 존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우리 속담 속의 돼지는 어떤 모습인가?
답: 돼지꿈은 재물이 생길 꿈이라고 하는데요. 돼지를 지칭하는 한자의 음이 돈(豚)이기 때문이라는 풀이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속담에서는 대부분 부정적입니다. 돼지가 더럽고 우둔한 동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돼지는 탐욕스러운 성격의 사람, 게으른 사람, 미련한 행동을 하는 사람, 듣기 싫은 목소리로 크게 노래 부르는 사람들을 빗대어 표현하고 있는데요. ‘돼지 같은 욕심’, ‘돼지는 우리 더러운 줄 모른다’, ‘돼지 멱따는 소리’,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등이 대표적이죠.
『조선왕조실록』에 돼지를 사용한 비유는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 탐욕스럽게 아부하는 벼슬아치, 우물 안의 개구리 등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1421년 세종 3년 오방저미(五方猪尾)라는 표현이 나와요. 돼지는 꼬리를 잘 흔들어서 아부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선조 임금이 돼지와 관련한 속담을 많이 사용하는데요. 관저복통(官猪腹痛), 요동돼지 등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관련 기사를 읽어 보면서 맞춰 보세요.
선조 26년(1593) 기사입니다.
어제 본사에서 유성룡(柳成龍)의 장계에 의하여 군사를 뽑아 훈련하는 사목(규정)을 올렸는데, 더할 수 없이 잘 된 것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외방의 각 고을에서 누가 주장하여하겠는가. 그러므로 속담에, ‘관가의 돼지가 배 앓는 격’이라는 풍자가 있다.
선조 32년(1599) 기사입니다.
탄환만한 작은 나라에 소소한 고을들을 무엇 때문에 나누어 설치하였는가. 제(齊) 나라 땅은 컸지만 70여 개의 성에 지나지 않았다. 전국 3백60 고을에 공(龔)ㆍ황(黃)을 어디서 얻겠는가. 마치 객사(客舍)의 길손과 같으니 속담에 이른바 관가 돼지 배앓이하는 격인데 자주 교체하니, 이 무슨 도리인가. 내 생각은 3백의 수효를 중요시하지 말고 통합하여 줄이고 싶다.
선조 39년(1606) 기사입니다.
조종조 때는 종이 한 장 때문에도 장죄(贓罪, 관리가 뇌물을 받아 받는 죄)를 받았으니 그렇게 보면 오늘날은 모두가 장 죄인이다. 도감과 공조에서 만든 물건이 매우 많은데, 유기ㆍ철물ㆍ상 탁ㆍ지의 따위의 물건들이 모두 간 곳이 없으니, 너무도 심하다. 속담에 ‘관가 돼지 배 앓는 격’이란 말이 있는데, 말은 천박하지만 비유는 아주 적절하다. 관가의 돼지가 배 앓는 것을 남이 누가 잘 치료해 주겠는가. 우리나라의 일이 바로 이런 꼴이다.
문: 요즘은 잘 안 쓰는 표현인데, 그런 속담이 있었네요. 요동 돼지에 대한 이야기는?
답: 1597년(선조 30년) 기사인데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이 있던 해입니다. 임진왜란이 1592~1598까지 벌어졌습니다. 선조 임금이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해서 오는데, 전술이나 무예 등이 당시 중국하고 우리나라 하고 다를 거 아니에요? 그래서 배우기도 하는데요. 실록 기록에는 훈련도감에서 선조 임금에게 아뢰기를 “도감(都監)의 군사는 비록 충분히 정예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수년 동안 교열(敎閱)을 받았기 때문에 다소나마 좌·작·진·퇴(坐作進退)하는 법을 알고 있으므로 군기가 문란하여 대열을 지키지 못할 정도에는 이르지 않습니다.(중략) 결국에는 한단(邯鄲)의 걸음(남의 것을 모방하려다가 도리어 자기 것도 잃는다는 비유)이 되지 않을까 싶으니 이 또한 염려됩니다. 요즘 중국군이 사용하고 있는 여러 진법을 다시 관찰하여 장점만을 선택해서 점차적으로 익힌다면 유익할 듯, 하므로 감히 아룁니다.”
문: 그대로 모방하지 말고 좋은 점만 취하자. 그런 말이네요.
답: 그러자 선조 임금이 말합니다. “"아뢴 대로 하라. (중략) 이른바 한단의 걸음을 배운다는 것은 옳은 말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반드시 배움을 넓게 하고 묻기를 자세히 하며 행함을 독실히 한 후에야 적용할 수 있는 인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물 안 개구리나 요동 돼지를 면치 못할 것이니, 그런 군사를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
요동 돼지는 우물 안의 개구리란 속담과 비슷한 뜻인데요. 중국 요동 사람이 머리가 흰 돼지를 신기하게 여겨 이를 왕께 바치려고 가다가 하동(河東)을 지나면서 그 지방의 돼지가 전부 흰 돼지인 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며 도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문: 일제강점기 돼지 스트라이크는 어떤 이야기인가?
답: 1933년 옥구보통학교에서 있었던 사건인데요. 당시 학생의 증언입니다.
우리 4학년 때 학급에서 돼지를 키운다고 그려. 그래 가지고 돼지가 중간만큼 컸을 때 일본 선생 오에大江가 처음으로 학교에 부임했는데 건들건들하니 미남이고 멋쟁이여. (중략) 그런데 하필이면 우리가 키운 돼지를 팔아서 결혼비용으로 썼단 말이여. 오에 일본 선생이 담임 선생님도 아닌데. 그러니까 우리가 그냥 있을 수 있간디. 그런 순간에 5학년~6학년 형들이 스트라이크를 했어. 그러면서 “너희 학년 돼지를 팔아먹었으니까. 내일부터 너희들 학교 나오지 말라”고했어. 잘됐지. 우리가 주장해야 할 일인데 상급생들이 하니까 잘됐지. 그래 가지고 일주일을 안 나갔어. 놀고 있는데 느닷없이 누가 오더니 형사가 잡으러 다니니까 숨어 있으라고 한단 말이여. 그러니까 어머니가 짚단 속에 숨겨줘서 짚을 쓰고 있으니까 무엇이 지나가면서 아무도 없다 하면서 지나가. 그게 형사들이었던가 봐. 그리고 한 이틀 있으니까 또 온다는 말이 있어. 그러니까 어머니께서 우리 집 뒤에 대밭이 있는데, 대밭에 가서 키를 쓰고 있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하셔서, 키를 가져다 쓰고 있었지. 그런 일이 있었고.
문: 돼지에 대한 여러 이야기 속에 사실 사람의 모습이 들어있다.
답: 돼지를 비유해서 인간의 욕망에 대한 여러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이걸 보면 인간이 그렇다는 것이지. 돼지가 그런 것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삼겹살을 구우면 단백질을 서로 차지하려고 쟁탈전이 벌어지는데, 이때 욕심을 부리는 것은 돼지가 아니라 사람이잖아요. 그런 모습을 돼지에 빗대어 말하고 있는 것이죠. 돼지가 누명을 쓰고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는 사람들에게 고기를 공급하기 위해 공장식 사육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연간 1,500만 마리의 돼지를 먹는데요. 99.9% 돼지들이 농장이 아닌 공장에서 사육이 됩니다. 새끼돼지는 3~4주 만에 어미와 분리되고, 수퇘지는 생후 6개월 만에 110kg의 몸무게가 되어 도축장으로 보내지는데요. 각종 질병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돼지를 탐욕스럽고 어리석다고 말하는 게 옳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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