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考愛

상사화 꽃무릇 아래

by 월간 김창주 2021.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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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경문왕의 침선장은

죽기 전에 대나무 숲을 찾아갔다.

대나무를 베고 산수유를 심어 놓은 곳에

더듬더듬 기던 애벌레

스스로 껍질을 벗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비를 보고 속삭였다.

붉은 껍질을 벗겨내어

숨어 있는 날개를 찾아줘.

하얀 속살을 베어 먹어, 남김없이

 

제 살을 모두 도려내어

똬리를 튼 껍질만 남긴 사과

쐐기풀로 자라

가시 돋은 옷이 되어

날개를 숨겨 주었다.

 

백조는 사람이 되어

대나무 숲에 들어갔다.

이야기를 삼킨 대나무

바람이 불면

스스스사사사하악

 

상사화 꽃무릇 아래

스스로 껍질을 벗어도 날 수 없는

뱀이 잠에서 깨었다.

 

꽃무릇(Laitche, 2007)

[월간 김창주,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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