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13. 00:13ㆍ考愛
『시월애』(2000)와 『건축학 개론』(2012)은 비슷한 점이 많은 영화다. 제목부터 보면, 둘 다 어려운 한자어다. 한글에 괄호 넣고 한자가 쓰여있던 마지막 세대의 사랑 이야기다. 시월애(時越愛)는 10월의 사랑이란 뜻이 아닐까, 언뜻 생각이 들지만, 시간을 초월한 사랑이란 뜻을 담고 있다. 건축학 개론(建築學 槪論)이란 단어 역시 어려운 한자어다. 20세기 대학에 입학하면, 이런 개론 수업들을 처음으로 수강했다. 개론은 어떤 뜻일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내용을 대강 추려서 서술함. 또는 그런 것."이란 뜻풀이가 되어 있다. 뭔가 쉽게 알려줄 것 같지만, 대강 추린다는 말처럼 대상의 본질에 대해서 아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첫 번째 공통점
영화의 제목이 둘 다 한자어다.
時越愛와 建築學 槪論
마치 사랑이란 말은 알지만, 아직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사랑학 개론을 가르친다고 사랑을 알 수 있을까? 연예의 짧은 기쁨 이후에 사랑은 긴 고통의 과정이란 것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사랑을 주제로 한 두 영화 모두 제주도에 집을 짓는 것으로 끝맺음하고 있다. 사랑이란 그녀를 위해 제주도에 집을 지어주는 것일까? 한국인에게 사랑은 무엇이고, 한국인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두 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짚어 보며, 그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두 번째 공통점
영화의 결말이 둘 다 같다.
제주도에 집을 짓는 것으로 끝난다.
『시월애』의 여주인공 김은주(전지현 扮)의 고향은 제주도다. 남주인공 한성현(이정재 扮)의 직업은 건축가다. 『건축학 개론』의 여주인공 서연(수지, 한가인 扮)의 고향 역시 제주도다. 남주인공 승민(엄태웅 扮)의 직업 역시 건축가다. 영화는 고향이 제주도인 여자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지만, 제주도에 건축가인 연인의 도움으로 아름다운 집을 짓는다. 집을 완성하는 것으로 미완성인 사랑을 완성하고 있다. 이 서술을 거꾸로 생각해 보면, 현실에서 보통 사람이 제주도에 자신의 집는 짓는 것은 사랑을 완성하는 것보다 더 불가능하거나 어려울 수 있다. 사랑이란 아름다운 기억의 집을 마음에 짓는 것일까?
세 번째 공통점
여주인공의 고향은 제주도 : 남주인공의 직업은 건축가
사랑은 미완성 : 제주도 집은 완성
사랑의 완성은 제주도에 집을 완성하는 것
현실에서
꿈꾸는 사랑도 꿈꾸는 제주도 집도 모두 꿈일 뿐
사랑을 바라보는 두 영화의 차이점도 있다. 『시월애』의 사랑이 미래에 있다면, 『건축학 개론』의 사랑은 과거에 있다. 『시월애』는 미래에 만날 남자가 제주도에 집을 지어주고 있고, 『건축학 개론』은 과거에 만난 남자가 현재 시점으로 집을 지어준다. 『시월애』는 남녀 주인공이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집을 지어 마무리하고 있고, 『건축학 개론』은 과거에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현재 시점에서 집을 지어가며, 이야기하고 있다. 이별의 순간에 하고 싶은 말을 전하지 못한 채 뒤돌아섰던 후회를 집을 완성하는 것으로 영화는 보상하고 있다. 영화에서 제주도의 집은 전하지 못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다.
첫 번째 차이점
진정한 사랑은 미래에 있다 : 진정한 사랑은 과거에 있다.
집은 이별의 순간 전하지 못한 이야기
『시월애』가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와 진보적 시각을 담고 있다면, 『건축학 개론』은 1990년대를 긍정하는 복고적 시각을 담고 있다. 『시월애』에서 지금은 흔한 전원주택, 컴퓨터와 액정 모니터, 잉크젯 프린터, 빨래방, 센서로 동작하는 오디오, 파스타, 와인 등 세련된 의식주와 손의 수고로움을 덜어 줄 것 같은 현대적인 삶을 보여 주고 있다. 마치 이것들을 가지면 행복한 삶을 살 것처럼 보여주지만, 모든 것이 흔해져 버린 지금은 어떤가? 편리함이 곧 행복이 아니다. 밥과 술은 무얼 먹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먹느냐는 더 중요하다. 반면에 『건축학 개론』은 도시 재생의 주요 대상이 된 한옥, 골목길, 첫사랑을 무르익게 한 막걸리, 순대국밥과 이제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는 CD플레이어가 등장한다. 현재는 자신만의 공방과 술도가를 차려, 옷을 꿰매고, 술을 빚으며, 손의 수고로움 안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시월애』가 함께할 사람을 기대하고 있다면, 『건축학 개론』은 함께할 사람을 약속하고 있다.
두 번째 차이점
밀레니엄(21세기) : 1990년대(20세기)
진보 : 복고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기대 : 약속
두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가? 『시월애』의 은주는 자신의 직업을 갖기 위해서, 약혼남을 따라 유학길에 오르지 않는다. 20세기에 남편이 될 사람을 따라 유학길에 오르는 여자의 이야기는 당연한 듯 때론 부러운 이야기였다. 영화에서 은주는 미국에 가는 연인 대신 자신의 직업을 택한다. 이후 약혼남은 바람을 피운다. 은주의 직업은 성우다. 은주는 절망의 순간에도 발랄함을 연기해야 하는 성우라는 직업에 힘들어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갖게 되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은주가 영화의 절정에서 낸 목소리는 성현에게 전하려 했던 말, “거길 가지 말아요.”였다.
『건축학 개론』에서 “사는 게 매운탕 같아”서 안에 뭐가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다던, 서연은 제주도 고향집을 버렸었고 전공도 포기했었다. 서연은 이혼한 후 자신의 목소리를 갖게 된다. 집을 개축하고 자신의 전공을 살려 피아노 레슨을 하며, 자신의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서연이 자신의 목소리를 갖게 되었지만, 현실의 서연은 자신의 목소리를 가질 수 있을까?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거길 가지 말아요.”라는 잔소리 같은 말이 고전적이며, 현실적으로 들린다. 회사에서 만나는 현실의 은주와 서연은 자신의 목소리를 얼마큼 가지고 있을까?
세 번째 차이점
자신의 목소리가
있다. : 없다.
현실의 여성은 자신의 목소리를 얼마큼 낼 수 있는가?
『건축학 개론』에서 재수생인 납득이가 승민에게 “지금 당장 같이 살라”고 농담을 하자, 승민이 다큐로(진지하게) 납득이 말에 “지금 당장 어떻게 살아, 집도 없는데”라고 대답한다. 그 시대의 평범한 삶에 맞춰서, 집은 사랑과 고통의 시간을 안을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평범한 회사원이 평생 일해 겨우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다. 매달 은행 대출을 메꾸며 사는 한국인에게 집은 자산이 아니라, 인생이고 사랑이다. 평생 갚아야 될지도 모르는 은행빚을 안고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처럼 사랑은 짧은 쾌락 뒤 찾아오는 긴 부채를 안고 살아가는 채무의 삶이다. 사랑은 고통이다. 사랑은 고통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사랑은 기대도 약속도 없이 고통을 즐기는 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