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10. 23:38ㆍ考愛
『지렁이 울음소리』 박완서 작가의 단편집입니다. 안톤 체호프의 유머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마성,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를 보는 느낌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블랙 미러』가 가까운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면, 『지렁이 울음소리』는 가까운 과거의 『블랙 미러』 같은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어요.
단편 중 「도둑맞은 가난」이란 작품에서 그런 생각이 더 들었어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고등어를 굽는 여자. 여섯 집이 다 붙어 있어서, 기름진 고등어를 구우면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여자는 그들에게 복수하듯 지글지글 고등어를 굽습니다, 환풍도 되지 않는 곳에서. 코에서 고등어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아요. 여자의 사랑은 이랬습니다. 남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나목」은 싱그러움과 비참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아빠와 오빠를 그리워하는, 이제 사랑을 알아가는 여자의 이야기에 빠져 들다 보면, 비참함이 후반부에 더욱 커집니다. 싱그러운 젊음이 부적이 되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날, 행랑채에 폭탄이 떨어집니다. 여자는 어떻게 슬픔을 극복하게 될까요?
책 표지 디자인이 독특합니다. 사진을 찍어가는 분도 있었어요. 읽을 때는 조금 불편하기도 하지만, 책날개를 저는 책갈피로 사용했습니다. 중간중간 고풍스러운 한글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그중에 이색적인 단어들이 몇 개 있었는데,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무과수"였습니다.
무과수? 뭘까요? 소설에서 무과수는 파인애플 통조림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