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8. 23:27ㆍ문화
오늘은 금속활자와 전현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조선 궁중 무희에 대한 이야기예요.
문: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지 않았나요?
답: 1972년 5월 29일 금속활자 책 중에서 가장 오래된 직지심체요절이 프랑스에서 발견이 됩니다. 보통 줄여서 직지라고 하지요. 원래는 상하 두 권이었지만, 현재는 하권만 남아있고, 그것도 첫 장은 없는 상태로 발견이 되었습니다.
문: 직지? 책 이름이 무슨 뜻인가?
답: 직지심체의 뜻은 사람이 마음을 바르게 가졌을 때 그 심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뜻입니다. 정식명칭은 백운화상 초록 직지심체요절입니다.
문: 그렇군요. 언제 만들어집니까?
답: 직지는 1377년 7월 청주 흥덕사에서 백운화상의 제자인 석찬, 달잠, 묘안에 의해서 사찰에서 제작한 금속활자로 간행되었다. 백운 스님이 입적하신 지 3년 후에 1377년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간행한 것이다.
문: 백운 스님은 어떤 분인가?
답: 백운 스님은 13세기말에 전북 정읍에서 출생, 황해도 해주의 안국사, 선광사 등에서 주지 승을 지냈고, 75세 때인 1372년 성불산 성불사에서 직지심체요절 상 하 두 권을 저술, 이후에 1374년 77세에 여주 취암사에서 입적했다.
문: 그러면 구텐베르크는 언제 금속활자를 만드나?
답: 1455년인데요.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인쇄본인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직지는 78년이 앞선 것이다. 그런데 기록만으로 알려진 “고금상정예문”이란 책은 구텐베르크 보다 200년 이상 앞서 있는데, 아직 발견이 되지 않았다.
문: 둘 다 종교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직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나?
답: 직지는 그 형식에서 고승의 게송을 모아서 교리의 요점을 간명하게 정리한 요약본의 형태로 간행이 되었다. 백운이라는 스님이 선불교에서 내려오는 여러 이야기를 모아 만든 책입니다. 주로 스님들의 말씀과 편지 등의 내용을 수록되어 있습니다.
문: 게송이 뭐죠?
답: 게송은 불교적인 교리를 담은 한시의 한 형태를 말한다. 부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외우기 쉽게 게구로 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네 구를 한 게라고 하는 데는 한 구는 다섯 자나 일곱 자의 이루어져 있어 한시처럼 짓는다고 합니다.
문: 불교의 교리를 담고 있다는 말씀인데, 당시 이 책이 갖는 의의? 의미는 무엇인가?
답: 직지의 간행은 고려 후기의 격동기 속에서 사회의 안정과 개혁을 추구하며 이루어진 산물이라는 사실, 불교 사상 본래 정신을 되찾아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던 노력의 한 모습이었다. 또한 선교일치를 통한 사상의 체계화를 추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 어느 면으로 보나 귀중한 책이란 생각이 드는데 현재는 어디에 있나?
답: 프랑스에 있는데요. 직지를 처음 발견하고 이것이 금속활자로 인쇄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밝힌 분은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였던 박병선 박사입니다. 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문: 아니 왜 우리나라 책이 프랑스에서 발견? 어떤 사연이 있을지 궁금하다?
답: 프랑스 박물관에 있고, 프랑스 군대가 훔쳐갔을 것 같지만, 직지는 한말에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를 지낸 플랑시가 돈을 주고 정식으로 구매한 책입니다. 이후 귀국 후에 모교인 동양어학교에 기증을 하는데, 우여곡절 끝에 직지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들어가게 되지요.
문: 그렇군요. 플랑시는 어떤 사람인가?
답: 플랑시 1853~1922에 작고한다. 플랑시의 아버지부터 알아야 하는데, 작가, 기자, 출판사를 운영했는데, 플랑시는 외교관이었지만 아버지로부터 이런 영향을 받아서 다양한 연구를 합니다. 서지학, 조선도자기, 법학, 생물학, 천문학 등에 관심을 보이기도 합니다.
문: 공부가 취미였어요. 그렇게 들리네요.
답: 중국에 서식하는 금개구리를 자기 이름을 따서 라나 플란시 공식학명을 붙이기도 합니다. 1887년에 처음 조선에 오는데 이후 외교관으로 13년 정도를 머물면서 한국의 도자기와 고서를 수집하기 시작합니다.
문: 고상한 취미를 가진 외교관인 것 같은데, 성격은 어땠나요?
답: 인물평을 보면 진지하고 예의 바르며 사려가 깊고, 음모에는 전혀 가담하지 않는 인물이다. 턱수염을 기르고 무뚝뚝한 인상이지만, 세련된 미적 감각을 가진 외교관이었다는 평가, 또 외교적 통찰력이 뛰어나서 다른 외교관들로부터 부러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문: 수집한 책들은 어떤 것이 있나요?
답: 1,500여 권을 수집해서 모교인 동양어학교 도서관에 기증을 하는데요. 그 책들을 보면, 직지가 가장 유명하고, 홍길동전, 흥부전도 있고요. 거문고 악보 책인 금보가 있는데, 이것은 현재 프랑스에서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문: 거문고 악보책이 있다니, 예술에도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답: 플랑시의 특이한 이력이 아내가 조선의 궁중 무희, 궁녀라고 알려진 이진이었고 최근에는 이것을 소재로 국내에서 여러 작품이 나오기도 했지요.
문: 조선을 아주 많이 사랑해 버린 남자군요.
답: 플랑시가 프러포즈하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겨요 “이진의 마음씨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당신은 상상도 못 할 겁니다. 그녀는 여신이다. 프랑스에서도 천사로 대우받을 권리를 가질 것이다”라고 말해서, 사랑에 푹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문: 본인이냐 콩깍지가 씌어서 그런 거고 정말로 아름다웠을까요?
답: 다른 외교관 역시 “한복을 차려입은 이진을 넋이 빠진 채 바라보았는데, 이진이 유럽으로 건너갈 때 우아한 파리쟌느의 복장을 하고 있어서 놀랐다”란 기록이 있다.
문: 아하 남편을 따라서 유럽에도 갔군요.
답: 플랑시의 근무지를 따라서 일본, 아프리카 탕헤르를 거쳐서 후에는 프랑스로 건너갑니다. 플랑시가 낯선 문화에 대한 적응을 위해서 이진에게 한국식 규방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문: 아무래도 고향에 대한 향수병이 있었을 듯하다.
답: 다시 플랑시가 1896년 프랑스 공사로 조선에 부임하면서 돌아오는데, 이때 어찌 된 영문인지 장악원궁중에서 연주하는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청)에 다시 강제로 복귀하게 됩니다. 둘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은 것인데요. 이때 충격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문: 안타깝네요. 아니 왜 그랬을까요?
답: 궁녀들은 신분이 궁중에 예속에 되어있는데, 이런 신분 차이, 신분의 굴레 때문인 것 같아요. 신분 전환에 대한 충격으로 생을 스스로 마감한 것 같습니다.
문: 쓸쓸한데, 당시 장악원 무희들의 모습이 궁금하다.
답: 장악원의 무희에 대한 당시 프랑스 외교관들의 평은 “한국의 무희들은 인도의 무희들처럼 우아하다. 이들은 시대의 선각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고, 미묘한 매력을 간직하고 있으며, 프랑스 국립음악원의 젊은 발레리나와 비교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 평가하고 있습니다.
문: 직지라는 책과 프랑스의 연인 조선 궁중 무희를 같이 들으니, 재미있다.
답: 금속활자 인쇄기술과 문화, 조선의 예술가와 예술을 보면,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얼마나 뛰어난 나라인지 알 수 장면이기도 합니다. 외국인 남의 평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 문화의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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