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과 유득공

2021. 5. 16. 21:42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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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는 화려하지만, 때로는 쓸쓸하기도, 또 때로는 유머가 넘치는 악기 해금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해금이 다양한 표현력이 있어서 인지, 해금의 이름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해금(奚琴), 혜금, 혜적, 앵금, 행금, 깡깡이, 깡깽이, 깽깽이 등으로 불리어졌어요.

 

문: 깡깡이란 표현이 재미있네요?

답: 거지 '깡깡이'라고도 했는데, 이 같은 명칭은 해금 특유의 코 먹은듯한 소리를 비유한 것입니다. 예전에 해금을 연주하던 층이 신분이 낮았던 것으로부터 나온 이름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문: 해금은 어떤 악기인가요?

답: 우리 음악에서 해금을 비사비죽(非絲非竹)이라고 했어요. 이 말은 ‘현악기도 아니고, 관악기도 아니다’라는 뜻인데요. 해금은 서양식이 아니라, 우리식으로 하면 관악기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앞에서 여러 명칭 중에 '혜적'이란 이름은 피리 적'(笛)'자를 쓴 것 입니다. 해금을 피리와 같은 관악기의 일종으로 본 명칭입니다.

 

문: 왜 그랬나?

답: 그 이유는 가야금이나, 거문고는 현을 튕기면 소리가 났다가 사라지는데, 관악기는 바람을 불면 부는 데로 계속 소리를 낼 수 있죠. 해금 역시 현을 마찰하면 계속 소리를 낼 수 있는 성격 때문에 관악기로 분류한 것입니다.

 

문: 앞에서 예전에 해금을 연주하던 신분이 낮았다고 하는데 어떤 이유인가요?

답: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조선시대에 가야금과 거문고를 악사들이 연주했다면, 관악기는 악공들이 연주했어요. 특히 양반들은 현악기를 연주하는데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다’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쉽게 생각해 보면, 현악기는 연주를 하면서, 폼을 낼 수 있지만, 관악기는 입으로 연주하는 악기라, 얼굴 표정이 바뀌잖아요. 점잖은 표정을 짓기가 어렵죠.

 

문: 해금 연주를 들으면 표현력이 참 다양한 것 같아요?

답: 찰현 악기의 특징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저도 해금을 도립국악원에서 배운 적이 있는데요. 소리를 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정확한 음정을 내는 것이 어려워요. 해금의 두 줄을 손가락으로 당기고 풀고, 또 손가락 위치로 음정을 내는데요. 조금만 배워도 동요 정도는 쉽게 연주할 수 있는데. 처음에 음을 잡기가 어려워서 주위 사람들이 고통스러워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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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제대로 된 음을 내려면 깊은 수련이 필요한 법이죠. 그런 연주가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법한데요?

답: 조선시대 후기에 유득공이 어느 날 연암 박지원 그룹의 일원인 서기공의 집에서 해금을 연주합니다. 여기에 모인 분들이 조선시대 북학파의 일원이었는데요.

 

문: 북학파가 뭔가요?

답: 북학파는 18세기 실학사상 중 청나라의 발달한 문물 수용해서, 농업과 상공업을 발달시키고 이를 통해 민생 안정과 부국강병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 학파입니다. 이야기에는 유득공, 서기공과 당시 해금의 명인이 등장합니다.

 

문: 유득공(1749~1807)이란 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답: 몇 해 전 이산이란 드라마를 방영했는데요. 여기에서 규장각 4대 검서관의 한 명으로 꼽히는 유득공이 출연합니다. 유득공은 발해고』, 사군지 등을 저술했고, 정약용의 사상에 토대를 마련해주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사 검서관은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서이수 네 분인데요.

 

문: 검서관이 뭔가요?

답: 정조는 왕과 신하들 사이에 논의되는 내용을 검서관이 기록하고 서명해 보관하게 했습니다. 사검서관은 북학적 소양과 문학관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정조는 북학적 사유를 체제 내로 적극 수용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문: 검서관이었던 유득공이 서기공의 집에서 해금을 연주했는데, 서기공(1735~1793)은 어떤 사람인가요?

답: 조선 후기의 화가이자 작품 감식가입니다. 1768년 무렵 서울의 원각사지 부근에 살면서 박지원·이덕무·이서구·유득공·박제가 등과 백탑청연(백탑에서의 맑은 인연)을 맺고 시문과 서화를 즐겼습니다. 그림뿐 아니라 글씨와 문장, 음악에 두루 능통했고, 특히 작품을 보는 감식안이 뛰어났다고 전해집니다.

원각사지십층석탑(1933)

 

문: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답: 서기공이 유득공의 연주를 듣고 거지 깡깡이 소리를 내는 속악(俗樂)이라며 그를 내쫓고 좁쌀 한 그릇 퍼주라고 하고, 아악(雅樂)을 연주하는 유우춘에게 해금을 배우라고 충고합니다. 그도 자존심 있는 선비인지라 한동안 해금을 구석에 놓고 연주하지 않다가, 우연히 서기공이 말한 유우춘을 만나게 되는데요. “사람들이 내 연주를 거지 깡깡이 소리라며 비웃었다네, 이것을 면할 방법이 있겠는가?”라며 그는 유우춘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하게 되죠.

 

문: 유우춘이 뭐라고 답하나요?

답: 모기가 앵앵거리는 소리, 장인의 뚝딱거리는 소리, 선비가 개굴개굴 울어대는 소리, 이 모든 천하의 소리가 다 밥을 구하는데 뜻이 있는데 내가 연주하는 해금이나 거렁뱅이가 연주하는 해금과 무엇이 다르냐며 웃으며 말해요. 내가 해금을 연주하게 된 계기는 늙은 노모를 봉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귀공자들이 내가 타는 것을 해금이니, 혜금이니 하고 논하지만 내가 타는 해금과 무슨 상관있겠소?”라고 하는데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 줍니다.

 

문: 남이 뭐라든 중요치 않다. 자신의 연주를 소신껏 한 유우춘은 어떤 사람인가요?

답: 18세기 조선의 대표적인 음악가인 유우춘은 유득공의 시문집인 『영재집』을 통해 해금연주의 명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비 출신이나 후에 속량 되어 양인이 되었고, 용호영(조선시대 국왕을 직접 호위하던 친위 군영)의 군졸이기도 했습니다. 유우춘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해금을 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해금을 더 이상 연주하지 않고, 절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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