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30. 12:09ㆍ음악
지난 편에서 15세기 초 명나라의 정화가 30년간 세계를 누빈 항해와 동아프리카의 음악인 은고마와 춤곡인 차카차에 대해 전해드렸다. 정화가 아프리카에서 들여온 사자, 기린, 얼룩말에 대한 이야기, 또 조선 초에 북경에 다녀와서 이 동물들을 보고, 기록을 남긴 장자충의 여행기를 소개해드렸다.
2020/08/29 - [바다의 실크로드] - 정화의 남해 대원정과 아프리카
이번 편은 15~16세기의 ‘대항해시대’부터 시작한다. 유럽 특히 포르투갈에서는 동쪽으로 서쪽으로 각각 항해를 하면서 중국과 인도에 가려고 했다. 이때 콜럼버스가 신대륙인 아메리카를 발견한다. 비슷한 시기에 조선은 1506년 연산군을 몰아내고, 이복동생인 진성대군(晉城大君:중종)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인 중종반정이 있었다. 포르투갈 탐험가들의 이야기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동쪽으로 간 포르투갈 탐험가는?
15세기 해양왕자 또는 항해왕자라고 불리어지는 포르투갈의 엔히크가 아프리카의 서해안을 탐험한다. 정화가 15세기 초에 아프리카의 동해안을 탐험한 것과 비교할 수 있다.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대륙 위쪽에 위치해 있는데, 아프리카 대륙의 서해안을 돌아서 인도 남부에 도착을 한다. 탐험 도중에 이미 80년 전에 백인들이 상륙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들이 명나라 초에 아랍과 아프리카를 탐험한 정화의 원정대다. 1498년에 바스쿠 다 가마가 아프리카 남단을 지나서 인도로 직항하는 ‘인도항로’를 개척하고 인도 캘리컷에서 60배의 이익을 남긴 후추와 계피 같은 향신료를 싣고 리스본으로 귀향을 한다. 당시에 아랍 상인들이 인도 교역권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아랍인들과 직접 교역하던 베네치아와 이집트인에게 큰 충격을 준다. 이후에 포르투갈인이 중국을 처음 발견한 것은 16세기 초인 1513년이었다. 이렇게 동쪽으로 항해를 해서 인도와 중국에 가고, 또 서쪽으로 대서양을 건너서 중국과 인도에 가려고 시도를 한다.
서쪽으로 간 포르투갈 탐험가는?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서 1492년에 쿠바를 발견한다. 이렇게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바닷길의 서쪽 끝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확대된다. 잘 알려진 이야기인데,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말을 믿었다. 대서양을 횡단하면 인도나 중국에 도착할 것으로 생각해서, 포르투갈 국왕에서 항해를 건의하지만, 거절당한다. 1485년에 에스파냐로 이주를 해서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2세의 지지를 얻어서 3척의 범선에 선원 90명을 태우고 중남미 일대를 항해한다. 그 지방이 인도 어디쯤으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을 인디언, 갔던 곳을 서인도제도라고 믿고, 향신료와 황금을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이후에 콜럼버스는 모기제독이란 별명이 붙는다. 모기가 있는 곳만 찾아다닌다는 뜻에서 붙은 별명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서 발견한 고추가 유럽으로 전해져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멕시코에 몰레라는 전통소스가 있는데, 17세기부터 유래했다. 우리나라 고추장과 비교하기도 한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을 아메리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언제부터?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인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1499년부터 1504년까지 3번에 걸쳐 콜럼버스가 발견한 중남미를 탐험한 후에 이곳이 신세계라는 견해를 발표한다. 이후에 최초의 발견자는 콜럼버스였지만, 아메리고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고 이름이 지어졌다. 독일의 지리학자 발트제뮐러가 1507년에 간행한 세계지도에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육지를 하나 더 그려 넣고 아메리카라고 표기를 한다. 서쪽을 항해해서 중국과 인도에 가려는 시도는 1519년에 마젤란이 5척의 범선에 265명의 선원을 싣고 항해로 이어진다. 대서양을 횡단하고, 남미의 남단을 지나, 태평양을 건너서, 1521년에 필리핀에 도착을 하지만, 토착민하고 싸우다가, 마젤란은 전사한다. 생존한 엘까노의 지휘로 2척의 배에 나눠 타고, 한 척은 다시 태평양으로 가다가 포르투갈인들에게 나포된다. 엘까노가 탄 빅토리아호는 반대방향으로 가서 인도양을 지나고,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거쳐 1522년에 에스파냐로 돌아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지구 한 바퀴를 항해하게 된다.
15세기 포르투갈의 바닷길을 개척
유럽 팽창주의가 처음으로 나타난 곳이 포르투갈이었다. 다른 나라보다 유리했던 지리적 요건과 또 다른 여러 조건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역사가들의 말을 인용하면 “토지의 빈약함과 척박함 때문에 해안지역에 거주하는 포르투갈인들은 부족한 농업자원을 바다자원으로 보충하려고 했다. 이미 기원전부터 해양민족이 이베리아반도 해안에 거주해서, 청동기시대에부터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카르타고인이 정착하면서 항해가의 타고난 기품을 가진 포르투갈인이 되었고. 또, 14세기 포르투갈 왕실의 적극적인 해운보호정책을 들”고 있다.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 직항로를 개척한 후에 아랍, 베네치아, 이집트 세력을 물리치고, 향료 무역권을 독점해서 막대한 이익을 챙겼지만, 이후에 포르투갈 전통경제에 타격을 주면서, 무위도식하는 기생계급이 생긴다. 향략적 풍조가 만연하게 되면서, 16세기 중반부터 포르투갈의 식민제국은 사양길로 접어들게 된다.
포르투갈의 음악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민요 파두가 있는데, 그 기원에 대한 설이 다양하다. 그 중에 15세기부터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러 떠난 수많은 포르투갈인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가 파두라는 설도 있다. 포르투갈 사람들의 사우다드를 애절히 표현한 것이 파두라고 알려져 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지구상의 어떤 언어로도 번역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우다드는 우리가 말하는 한(恨)과 비슷한데, 그리움, 향수라 번역할 수 있지만, 단순히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고뇌와 기쁨을 동시에 표현하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추억이나 표현, 시간적·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격한 향수라든가 애정, 잃어버린 것을 찾고자 하는 복합적인 감정을 담고 있는 독특한 포르투갈인의 정서다. 바다를 향한 탈출욕구와 고향에 대한 애착사이에서 방황하는 가운데 생성된 복합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아랍의 지배로 인해 인간은 운명의 노리갯감이라는 인생관이 겹쳐져 탄생한 것이 사우다드이고, 이것을 담은 노래가 파두다.
왜 유럽 사람들은 중국과 인도에 가려고 했을까?
중세 유럽인들이 중국과 인도를 동경했던 것은 이들 나라가 풍요한 나라라는 점에 있었다. 이에 반해 중세 유럽은 빈곤했다. 중국과 인도, 또 인도양의 많은 섬들은 귀금속, 각종 보석, 귀한 나무, 향신료를 생산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마르코 폴로의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밀을 싣듯이 이곳에서는 후추를 그대로 범선에다 싣는다”, “말라바르 왕국은 바다에서 엄청난 양의 진주를 채취하는데, 이곳의 왕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진주로만 치장하고 목에만 104개의 아름다운 진주로 장식되어 있다”고 묘사한다. 이렇게 풍요로움을 강조하는 것은 먼 이국에서 귀중품을 수입하던 무역구조와 연관된 당시 유럽인들의 심리를 보여준다. 부에 대한 이런 동경이 동양에는 신비로운 사람과 동물, 괴물이 있는 세계로 그려지고, 새로운 이상세계로 인식하기도 했다. 이런 동경을 갖던 중세 유럽인들이 바닷길을 개척하면서, 서양 세력의 동점과 서점이 진행된다. 1510년에 포르투갈이 인도 고아를 강점하기 시작하면서, 서양국가들의 식민지 개척이 시작되었다. 동양뿐 아니라, 신대륙에서도 멕시코를 비롯한 식민지 국가를 만들고 경영을 위해서 바닷길을 적극 이용한다.
이후의 세계는 사탕수수 재배를 위한 흑인 노예무역으로 옮겨간다. 좀비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볼만 하다.
2020/08/16 - [이야기] - 문화 속 좀비 이야기
모든 향기롭고 달콤한 것에는 인간의 땀과 피가 절어 있다. 초콜릿 무역이 이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도 곧 준비하겠다.
참고문헌
※ 거인의 어깨 위에서 읽은 것을 재 정리한 것입니다. 7~8년 전에 정리한 글로 참고문헌 목록을 잊어버렸습니다. 인용 기호가 제대로 표기되지 않았거나, 참고문헌 목록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한 것은 모두 제 불찰입니다. 제가 잘 기록하지 못한 부분을 알려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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