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23. 16:16ㆍ문화
라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Q: 왜 라면이죠?
A: 2015년 8월에 무박 4일간 남북회담이 있었는데, 뉴스에 잠은 쪽잠, 끼니는 라면으로란 기사가 있었어요. 라면이 상징하는 것이 맥락에 따라 참 달라지는 음식이란 생각이 들어요.
Q: 왜 그렇죠?
A: 회담 중에 라면을 먹었다는 건 긴박한 느낌이 들잖아요. 또, 학창 시절 뜨거운 물에 부어먹던 라면, 추운 겨울에 차가운 도시락과 함께 먹던 맛을 잊을 수 없는데, 라면은 그대로인데 상황에 따라 느낌이 달라져요.
Q: 맞아요. 생일날 라면 먹었어, 참 우울하죠?
A: 그런데 “스키장에서 라면 먹었어”하면 또 느낌이 다르고,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 씨가 “라면 먹고 갈래요?”라고 하면 또, 느낌이 다르죠. 우리 일상에 깊이 스며있는 라면인데 한편으로 우리나라가 압축성장, 고도성장을 하는데 함께 한 음식이란 생각도 들어요.
Q: 그런데 라면의 뜻은 무언가?
A: 라면이란 이름은 중국어 라미엔에서 유래되었다고 해요. 한문으로 읽으면 납면인데, 밀가루 반죽을 양손으로 판 위에 치고 잡아당겨 가늘고 길게 뽑아내는 요리기술이라고 하는데, 수타면을 말하는 것 같아요.
Q: 라면으로 20세기 한국을 읽어보겠다는 말씀인데, 라면 언제부터 먹었나?
A: 라면의 기원은 중국이라는 설이 있지만, 지금과 같은 즉석 라면은 1958년에 일본인 안도 모모후쿠가 발명을 했습니다. 2005년에는 우주라면을 개발도 했는데, 국내에는 1963년에 일본에서 라면기계 2대를 들여와서 생산을 시작합니다. 한 개에 100g 가격은 10원이었는데 사람들이 면을 무슨 섬유나 실, 플라스틱인줄 알고 구입을 기피했다고 하네요.
Q: 십 원이면 어느 정도 가치인가?
A: 당시 커피 한 잔 값이 35원, 짜장면, 김치찌개 가격도 비슷했습니다. 시장에서 팔던 꿀꿀이 죽이 5원이었던 점을 보면 그렇게 싼 가격을 아니었다고 하네요.
Q: 지금 라면 하나에 700~800원 하나요, 예전에 100원짜리 라면도 있었죠.
A: 1990년에 백 원짜리 라면 사라진다라는 기사를 볼 수 있는데, 이때를 전후해서 라면이 전 세계로 수출되면서 세계인의 입맛을 바꿔놓기 시작합니다.
Q: 국민 1인당 한해에 몇 개나 먹을까요?
A: 한 해에 1일당 약84개인데, 라면을 쭉 펴면 56미터, 일 년에 5km의 라면을 먹고 있다고 해요. 1963년 국내에 도입되어서, 1965년 정부의 혼분식 장려정책 덕분에 대량 생산되며 소비됩니다. 우리 라면의 일대기는 한국 산업화 시기와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고,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라면은 한국의 고도성장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창입니다.
Q: 흔한 라면인데,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지 궁금하네요.
A: 어떻게 설명할까 하다가, 1983년 이웅평 대령이 귀순한 해에 쓴 수기에 라면이 나와요. 제목이 한국서 날아온 라면봉지인데, 내용이 영화처럼 좀 코믹해요. 북한의 1급 휴양지인 속후해수욕장에 출입할 정도로 특권의식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알록달록한 비닐봉지를 발견합니다. 주워보니 라면봉지였습니다. 전라북도 이리시(현 익산시)에서 만든 것이었는데요.
Q: 어떤 라면 봉지였을지 추측이 가네요.
A: 봉지에는 맛을 보고 사세요. 모방할 수 없는 맛, 만일 유통과정에서 변질된 제품이 있으면 즉시 교환해 드립니다. 소비자상담실 전화 땡땡땡. “나는 움찔 놀랐다. 남한은 식량이 부족해 굶어 죽거나 영양실조에 어린이 노인들이 헤아릴 수 없다고 했는데, 맛을 보고 사라니.”
Q: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하죠?
A: 제가 보기에 코믹했던 장면은 “변질된 제품을 바꿔준다는 문구를 두세 번 되풀이 읽었다. 라면봉지를 꾸깃꾸깃 접어 주머니에 넣고 휴양소로 돌아왔다. 조리법을 읽다가, 동료에게 걸려요. 가슴을 방망이로 치는 것 같았다,”고 쓰여 있는데, 연극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사실 좀 슬프죠. 북한의 1급 휴양지를 출입하던 장교가 자존심이 상한 거죠.
Q: 그냥 당연한 홍보문구라고 생각했는데, 라면 봉지에 그런 힘이 있을지 몰랐네요.
A: 2014년에 이애란 북한 전통음식문화 연구원장이 쓴 글이 있어요. 북한에서는 라면을 꼬부랑국수라고 하는데, 정말 인기가 많다. 평양사람들만 구경할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라, 뇌물이 되기도 한다. 양념스프가 있는 남한의 라면은 상당한 고급 뇌물로 취급된다.
Q: 라면이 정말 뇌물이 될까요?
A: 더 읽어 보면요. 중국에 친척이 있으면 라면을 조용히 들여다 놓고, 취직, 직장 이동, 대학입학, 증명서 발급, 뺏긴 장사 물건을 찾을 때 아주 긴요하다. 라면이 무게와 부피가 선물을 주는 입장에서 좋다. 북한은 택배가 없고, 개인용 차도 없어서 직접 가야 하는데 너무 무거워도 안되고, 라면이 가벼우면서 부피감이 있어서 선물하기 좋다는 말입니다.
Q: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A: 그래서 북한에 남한의 라면을 많이 보내줬으며 한다고 쓰여 있는데, 상황에 따라 라면이 뇌물이 되는 장면인데요. 라면 하나가 이데올로기나 사상 따위를 말하는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별로 가치 없고 의미 없다고 볼 수도 있는 식품이지만, 그 의미를 북한하고 비교해서 찾아서 미안한 마음도 있네요.
Q: 그냥 흔하게 살 수 있는 라면일 뿐인데,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네요.
A: 1986년에는 라면 먹고 이긴 춘애야 라는 신문 사설이 있습니다. 라면만 먹고 자란 탓에 우유를 마시며 뛰는 친구가 제일 부러웠다는 글이 이어지는데요. 사실 이건 임춘애 선수가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선배, 부모 세대가 그런 거죠. 어렵게 남의 나라에서 차관을 들여와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고도성장을 이룬 것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Q: 그런데 산업화 과정에서 잃은 것도 많지 않나요?
A: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옆을 볼 겨를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구나 우리나 산업화 과정에서 밀가루에 조미료를 첨가해 먹습니다. 값싸고 감미로운 것들로 삶의 기본적인 욕망을 채워 주었죠. 서구는 달콤한 설탕이었고, 우리는 짠맛이 나는 조미료였죠. 둘 다 사탕수수를 원료로 만들어진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탕수수 재배는 서인도 제도의 노예무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감미로운 것은 누군가의 피와 땀입니다.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의 시가 생각나네요. 날로 빈부격차가 커지고 혼밥족이 늘어가고 있지만, 라면 하나를 놓고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나누어 먹을지, 방향과 공존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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