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26. 15:36ㆍ문화
복숭아와 관련된 사건과 기사를 수집해봤는데요. 역사의 장소마다 복숭아가 있었습니다.
문: 그럼 역사책에 나오는 복숭아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답: 『신편한국사』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편을 보면요.
18세기 이후 서울은 명실상부하게 전국적 시장권의 중심도시였다. 서울에서는 전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이 판매되었다. 과일의 경우를 예로 들면 남부지역의 유자·귤·석류 등도 반입되었으며, 복숭아의 경우도 ‘승도’·‘유월도’와 울릉도에서 생산되는 ‘울릉도’도 서울에 반입되었다.
문: 여러 과일이 나오는데요. 복숭아 이름이 특이하네요.
답: 털이 없는 복숭아를 승도(僧桃)라 하고, 털이 있고 아주 크고 일찍 익으면서 맛이 상쾌한 복숭아를 유월도(六月桃), 울릉도에서 나는 것은 대부분 크고 씨는 종자로 삼는데 이것을 울릉도(鬱陵桃)라고 합니다.
문: 승도는 지금 먹는 천도복숭아 하고 비슷한 복숭아인 것 같다.
답: 백과사전에는 그렇게 나오는데요. 이걸 구분하는 분도 있습니다. 허균의 『도문대작』에 의하면 전주 부근에는 모두 승도가 난다는 기록이 있고,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과일 중에 첫 번째로 꼽은 게 승도였습니다. 토머스 제퍼스도 정원에서 승도를 키웠고, 루이14세도 승도를 좋아했습니다.
문: 지금은 누구나 먹을 수 있지만, 양반과 귀족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느낌이 드네요.
답: 과일이란 게 당시엔 그렇죠. 1927년 복숭아화채 만드는 법입니다.
재료. 복숭아, 네모진 설탕, 적색포도주, 레몬. 방법. 복숭아를 껍질을 벗기고 두 푼가량되게 썰고 씨는 빼고, 복숭아 5개에 물 한 되는 넣고 삶는다. 이것을 걸러셔 건대기는 없애고 그 국물에 설탕을 넣고, 포도주를 넣고, 먹을 때 곱부에 조금씩 넣어서 맑을 물을 넣어 적당히 희석 얼음조각과 레몬을 엷게 썰어서 띄운다.
문: 곱부가 무엇인지?
답: 곱부는 컵을 말하고, 복숭아를 빼면 대부분 재료가 수입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레목, 포도주, 설탕 등인데, 제가 찾아본 것 중에는 1927년이 가장 빠르니까 적어도 복숭아화채를 이 이전에 만들어 먹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문: 화채도 있지만, 복숭아 통조림은 언제부터 만들어지나요?
답: 1947.3.16.『동아일보』, 맛 좋은 복숭아 통조림 남조선서 대량생산계획에 대한 기사입니다.
미국에서 묘목입하. 군정청에서는 근 미국에서 복숭아 묘목을 비행기 편으로 가져오게 되었다. 묘목은 미국 뉴저지 농사시험장에서 가져오는 것인데 이를 조선 각처에 심게하여 복숭아 통조림을 많이 만들도록 할 계획이라 한다.
문: 1947년부터 나무를 심고 복숭아 통조림 생산을 준비하네요.
답: 1966.8.8.『매일경제』 기사입니다.
복숭아 대풍. 복숭아 품종 소개. 천도복숭아, 80개들이 1500원, 대구보 복숭아 80개 750원, 백도, 나주의 수밀도 1,000원, 당시 설렁탕 가격이 80원. 소고기 600g 180원. 복숭아 통조림을 육군과 해병대에 납품 중인데 금년에는 13만 통 납품을 목표로 한다. 파월장병에게도 납품
문: 파월장병이면 베트남전쟁이죠?
답: 그렇습니다. 1970.3.19.『경향신문』 "파이내폴 상표에 복숭아 들어 겉 속 다른 식료품. 통조림에 이런 문제가 있었는데, 국물만 가득 들어있는 생선통조림", 같은 해 8.13. 『매일경제』, "농어촌개발공사는 처음으로 복숭아 통조림 삼천 상자를 서독과 네덜란드에 수출"했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문: 복숭아 통조림을 유럽에 수출을 했는데, 많은 양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답: 이렇게 통조림이 비행기를 탄 사건이 또 있었습니다. 1971.1.25.『경향신문』 기사입니다. KAL기 납북미수 사건이 있었는데, 기내에서 폭발물이 터져요. 폭탄이 복숭아 통조림 깡통으로 만든 것이었는데요. 완구점에서 딱총용 화약을 조금씩 모아서 만든 통조림 깡통 폭탄이었습니다. 당시 기장이 바닷가에 불시착해서, 납북을 모면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문: 다행이네요. 웃지 못할 그런 사건이 있었군요.
답: 1973.8.10. 『매일경제』 기사입니다.
인천에서 생산하고 있는 복숭아에 이름 모를 병이 생겨 약 2만 7천여 그루 가운데 50%가 감염, 복숭아 한쪽이 햇볕에 익은 것처럼 반점이 생기면서 전체가 짓무르고 썩어간다. 원인불명. 농민들은 지난달 중순경 몇 차례 비가 온 뒤부터 발생했기 때문에 핵실험에 따른 낙진에서 발병하는 것이 아닌가.
핵실험과 연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복숭아를 먹고 식중독 사고가 많았습니다.
문: 복숭아와 핵실험이라 아무 관련이 없을 것 같은데, 그렇게 당시에는 생각을 했네요.
답: 1977.3.12. 『동아일보』에 가보를 연재하는 기사입니다.
570년 이어온 도핵배. 복숭아 씨로 배든 술잔. 전북 고창읍 월암리 창녕 조 씨 정산사에는 명나라 황제가 하사했다는 복숭아 씨로 만든 술잔 하나가 570여 년 긴긴 세월을 전해오면서도 원형 하나 변치 않은 채 소중하게 간직, 길이 14cm, 폭 11cm 이 술잔은 복숭아씨의 둘레를 은으로 입히고 손잡이 부분에는 꽃 모양의 장식.
씨가 이만하면 엄청나게 큰 복숭아였다.
문: 술잔 역시 컸을 것 같다.
답: 손바닥만 합니다. 주스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1978.2.27. 『동아일보』에 일본서 발효를 통해 쌀 주우스 개발 복숭아 파인애플 같이 달콤. 주스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기사가 있고, 1986.8.25. 『매일경제』 냉동 복숭아 일본에 수출, 1020톤. 51만 달러어치. 일본에서는 냉동 복숭아를 씨를 뺀 상태에서 수입. 복숭아 주스 원료로 사용. 주스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기사입니다.
문: 일본이 먼저 복숭아 주스를 만들었고,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답: 1989.6.16.『매일경제』 복숭아 넥타 시장이 급성장 추세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봉숭아 원료가 20% 이상 포함된 음료인 복숭아 넥타가 지난해부터 급성장하고 있다. 같은 해 6.26. 『경향신문』 복숭아 수입개방 앞두고 덤핑 공포. 완주군 주산단지 재배 농가들 시름. 7~8년 가꿔 첫 수확 맞았는데. 1990.6.5.『경향신문』 농산물 수입개방 후유증에 슬기롭게 대처하려는 농민들의 노력은 포장개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새로 디자인한 배 복숭아 포도의 포장상자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문: 복숭아도 수입이 개방이 되는군요.
답: 1991.9.25. 『매일경제』 복숭아 통조림 수입 크게 늘어. 상반기만에만 2,500톤 국내 임가공은 작년 절반, 같은 해 3월 『매일경제』 정부가 1992~1994년 사이에 냉장 돼지고기, 복숭아, 우유 등 131개 품목을 수입 자유화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외국 농축수산물이 대거 몰려들 전망이란 기사가 있습니다.
문: 복숭아 농가에서도 대책을 세웠을 것 같다.
답: 1996.4.25.『매일경제』 복숭아 재배농민 전국협의회 결성됩니다.
전국 복숭아 산지 27개 농협이 참여. 연간 육만 오천여 톤 생산 전국 생산량의 50% 차지. 이번 협의회 결성으로 수입 개장의 확대 속에서 국산 복숭아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
문: 이후에 1997년 IMF 외환 위기가 있어죠?
답: 1998.12.21.『경향신문』 기사입니다.
신세대 겨냥 상큼한 과즙음료 오렌지와 복숭아 혼합 과즙음료. 오렌지의 상큼함과 복숭아의 향긋함이 어우러져 맛과 향이 색다르다. 새로운 맛을 추구하는 10~20대 신세대층과 IMF체제 이후 기존 100% 과즙음료에 부담을 느끼는 주부층을 겨냥했다.
같은 해 6월에 우리 해군이 동해에 가라앉은 북한 잠수정을 인양하는데, 거기에서 국산 복숭아 음료 피티병을 발견됩니다.
문: 이번에는 잠수정에서 복숭아가 발견이 되네요.
답: 시간이 지나면서 양철 통조림에서 플라스틱 피티병으로 봉숭아를 담는 용기가 변했다는 것도 알 수 있고요. 복숭아를 먹는 방법도 주스로 만들어서 더 먹기 편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20세기 초반의 사치스러운 복숭아화채에서 복숭아 주스까지 복숭아와 함께한 근현대를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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