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29. 10:58ㆍ문화
문제와 답의 계급성
마테오 가로네 감독의 2015년작 『Tale of Tales』에는 벼룩을 키우는 기벽을 가진 왕이 등장한다. 영화에서 왕은 벼룩을 개만한 크기로 키우지만, 벼룩은 수명을 다해 죽는다. 왕은 슬퍼하다가, 벼룩 가죽을 만들어 놓는다. 왕은 이 가죽이 어떤 동물의 가죽인지 맞추는 사람에게 자신의 딸인 공주와 결혼시키겠다고 말한다. 이것은 귀족들이 벌이는 마상경기의 승자가 공주와 결혼을 하는 시험을 대신한 것이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와서 동물의 가죽을 만져보고 답을 낸다. 그 답은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출신 배경과 연관이 있었다. 귀족은 용의 가죽, 해상무역을 하는 사람은 물개의 가죽이라고 말하지만, 모두 오답을 낸다. 이때 혈거 생활을 하는 괴인이 나타나 냄새를 맡아보고 그것이 벼룩의 가죽임을 맞춘다. 이렇게 맞출 수 있었던 것은 동굴에서 사는 그의 삶이 벼룩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中庸』의 “伐柯伐柯其則不遠”이란 구절의 의미처럼 문제 안에 답이 있다. 다시 말해 문제가 어떤 신분(계급)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답 또한 신분(계급)성을 가지며, 서로 상관성을 가지고 있다.
서울시 계약직 제비뽑기로 선발
상기의 예는 극단적으로 과장된 예이지만, 실재로 채용 면접에서 이런 계급성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서울시가 계약직 직원을 선발하면서, 제비뽑기를 해, 논란이 된 바가 있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정당한 노력의 대가가 아닌, 부당한 선발 같지만, 서류와 필기를 합격하고 난 후보자들을 면접으로 다시 선발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별한 재능을 발휘하는 업무가 아닌 이상, 일반 사무직을 평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거의 비슷비슷한 사람들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부정한 권력과 계급성의 작용을 가능케 한다. 2015년 3월 30일자 『경향신문』 보도에 의하면 실재로 서울시는 투명성을 위해 이렇게 제비뽑기 한다고 말했지만, “서울시의원들의 채용 압력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 채용시기가 되면 서울시의원들의 청탁·압력으로 업무를 못할 지경 … 공개추첨제는 시의원들의 과도한 청탁이나 압력을 피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 이와 같은 시의원의 인사 청탁이 벼룩의 가죽을 맞추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중세의 기괴한 이야기와 신화는 현재도 재생되고 있다. [월간 김창주,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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