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계급 재생산과 지방대학의 폐과

2021. 5. 29. 11:47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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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계급성

  바실 번스타인은 중간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5살 난 유아의 말을 비교해, 전자는 정교한 묘사를 후자는 모호한 묘사를 구현한다고 분석하고, 이런 사회계급에 따라 교육의 방법도 달리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이분법적 논의 전개와 미미한 사례 제시 등에서 논리의 비약이 느껴졌지만, 일견 타당해 보인다. 번스타인이 예로 한 사례에서 영화 『황산벌』이 생각났다. 신라군은 백제군의 거시기라는 말을 해석하지 못해 고전한다. 영화에서 신라군의 언어는 당나라 연합군과 외교적 언어를 사용하며, 위계적이라면, 백제군은 거시기로 대표되는 사투리를 사용하며, 인간적 면모를 보인다. 영화는 역사처럼 신라군의 승리로 끝나지만, 패잔 한 백제군이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상봉하는 장면에서, 거시기라는 용어는 엘리트 언어를 조롱하고 있다. 소설은 이렇게 실패한 삶(역사)을 소재로 한다. 다시 말해서 언어는 계급성을 가지고 있다.

 

학력 인플레

  부르디외는 문화자본과 언어의 습득, 시험의 합격 등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있다. 21세기 한국사회의 교육 기회 확대는 지위 상승이나 평등으로 연결되지 않고, 불평등의 유지와 재생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인교육의 목표 대신 대학입시가 교육의 목표가 되면서, 사회적·경제적 지위의 유지 또는 상승이라는 교육의 수단적 가치가 그 교육의 질을 좌우하게 되었다. 20세기와 비교해 한국의 청년들은 고학력의 문화자본을 가지고 있지만, 아버지 세대에서 고졸이면 충분했던 직장에도 취업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부자들은 자신의 기존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공부에 투자한다. 부모의 경제자본이 자녀의 학업 성취도를 좌우한다. 이에 따라 지위 유지를 위한 학력 인플레가 발생한다. 이것은 대학의 서열화로 이어져, 대학은 계급 재생산의 수단이 되었다. 폐과 하거나 문을 닫는 지방대학이 발생하고 있다.

 

상징 폭력

  부르디외 식으로 말하면, 학교의 교육은 지배집단의 상징 폭력 행사(문화)를 정당화하고 누구나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도록 작동한다. 이 과정을 통해 계급 분류가 효과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교육체제 내에서 시험은 외형상 공정한 경쟁이란 이념을 확보하고 효과적으로 불평등한 계급을 재생산할 수 있게 된다. 학교 성적의 우위는 사회적 우위로 이어진다.

 

전주 동문예술거리(2017)

 

쇠퇴와 혁신

  현재 지방대학에서는 비인기 학과와 순수예술 분야의 학과 등이 폐과하고 있다. 문화자본, 경제 자본과 계급의 재생산 기능을 잃은 지방대학의 학과가 문을 닫고 있는데, 이와 함께 지방에서는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 공예과가 폐과 하고 있는데, 핸드메이드 열풍이 불고 있다. 자신이 손수 만든 상품을 판매하는 청년들이 늘어가고 있다. 거리에서 연주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선배 예술가들과 달리, 청년 예술가들은 거리로 나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한편, 학력의 인플레로 서울의 유수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한 청년들이 지방으로 내려오면서, 다양한 예술적 시도가 펼쳐지고 있다. 소수만이 계급 재생산을 할 수 있는 예술 분야에서 대학의 쇠퇴와 문화의 재생산(혁신)이 동시에 그리고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월간 김창주,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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