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29. 23:42ㆍ문화
봄철에 많이 먹는 나물이죠, 또 전주 8 미 중에 하나인데요. 뭘까요? 미나리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해 왔습니다. 전주는 완판본의 고장이고 천재지변과 전란에도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기록 문화의 고장이죠. 미나리에 대한 옛 기록 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문: 『조선왕조실록』에는 어떤 기록들이 남겨져 있나요?
답: 실록에는 96번 미나리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왕실 의례에서 미나리 김치를 놓는 위치가 쓰여 있어요. 첫 줄은 달래 김치를 앞에 놓고, 젓갈을 다음에 놓으며, 둘째 줄은 무 김치를 앞에 놓고, 녹해(鹿醢)와 미나리 김치를 다음에 놓는다는 식입니다.
문: 녹해가 뭔가요?
답: 해산물로만 젓갈을 만드는 게 아니더라고요. 사슴고기로 만든 젓갈, 토끼고기로 만든 젓갈도 제례음식으로 나옵니다. 아무래도 당시에는 냉장고가 없어서 이런 음식들이 있었지 않나 싶은데, 어떤 맛인지 궁금하네요.
문: 녹해 어려운 한문인데, 또 다른 미나리에 대한 기록은 무엇이 있나요?
답: 두 번째로 실록에는 백성들이 미나리와 무도 먹을 수 없다고 하면 대기근이란 뜻으로 쓰였고, 마지막 세 번째 분류는 녹해같은 어려운 한문처럼 헌근과 근폭, 근궁이란 표현도 있어요. 셋 다 미나리와 연관된 관용구들입니다.
문: 헌근(獻芹)은 무슨 뜻인가요?
답: 헌은 헌금할 때 헌자이고, 근은 미나리를 뜻하는데요. 말 그대로 하면 미나리를 바친다는 뜻인데요. 변변치 못한 미나리를 바친다는 뜻으로, 윗사람에게 물건(物件)을 선사(膳賜)할 때나 자기(自己) 의견(意見)을 적어 보낼 때에 겸손(謙遜)하게 이르는 말입니다.
문: 근폭(芹曝)은 어떤 뜻인가요?
답: 근은 미나리, 폭은 따뜻하다는 뜻인데, 폭염이란 말이 있죠. 미나리가 뜨겁다는 말이 아니라,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말해요. 중국 송(宋) 나라 사람이 봄철의 따스한 햇볕과 맛있는 미나리를 임금에게 바치려 했다는 옛이야기에서 나온 말입니다.
문: 어떤 이야기인가요?
답: 송(宋)나라의 어떤 농부가 허름한 옷으로 겨울을 보내고 나서 봄이 되자 양지쪽에 앉아 햇볕을 쪼이다가 자기 아내에게 “이렇게 따뜻한 햇볕을 쪼이는 방법을 임금에게 아뢰면 중한 상을 받을 것이다.”라고 했는데요. 이때 같은 마을의 부자가 그 말을 듣고 “옛날 미나리를 가진 자가 그 지방의 토호(土豪)에게 자랑하자 토호가 그것을 가져다 먹어보고는 비웃으며 나무랐는데, 그대가 바로 이와 같다.”라고 비웃는데요. 별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어리석어 보이지만, 임금에게 충성을 바치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을 뜻합니다.
문: 아하 그렇군요. 충성심을 유발하는 나물이네요.
답: 조선시대 시집인 『청구영언』에는 사랑을 의미하는 말로도 나와요. 어떤 사람은 황진이가 지었다고 쓰기도 했는데요. “겨울날 따스한 볕을 임 계신 데 비추고자, 봄 미나리 살찐 맛을 임에게 드리고자 임이야 무엇이 없을까마는 내 못 잊어 하노라” 너야 아쉬울 게 없겠지만, 별 볼일 없는 미나리 밖에 줄 수 없는 나는 너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시로 들리네요. 또 미나리가 변치 않는 사랑이란 뜻으로 쓰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 마지막으로 근궁은 무슨 뜻인가요?
답: 근은 역시 미나리를 궁은 궁궐 할 때 그 궁자인데요.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을 뜻합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에 “반수가에서 미나리를 뜯는다.(思樂泮水 薄采其芹)”라는 시구가 있은데, ‘미나리를 뜯는다’는 말은 인재를 발굴한다는 말로 쓰이게 되어서, 성균관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문: 반수가에서 미나리를 뜯는다. 반수는 또 무슨 말인가요?
답: 성균관을 ‘반궁(泮宮)’이라고도 했는데, 반수는 반궁 옆에서 흐르는 물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균관 옆 흐르던 물이 반수라는 말인데, 실제로 성균관에서는 미나리밭을 운영합니다.
문: 성균관에서 미나리를 많이 드셨나봐요?
답: 네, 중종 임금 때인 1542년에 성균관의 미나리밭, 미나리꽝에 둘러싼 사건 때문에 중종 임금의 말이 나옵니다. 성균관의 미나리밭 부군에 인가가 들어서면서, 물이 부족해지니까, 미나리 농사가 잘 안되고, 성균관의 종들이 음식 뒷바라지하기가 어려워지니까, 성균관의 최고 관리자인 대사성이, 지금 말로 하면 총장쯤 될까요? 조정에 보고를 합니다. 훈련원의 미나리밭과 바꿔 달라고요.
문: 훈련원이 무사들을 훈련시키는 곳 아닌가요?
답: 네. 성균관이 유생을 기르는 곳이라면, 훈련원은 무예와 병법을 가르치던 곳이었습니다.
문: 그래서 어떻게 결정이 되나요?
답: 중종 임금이 이렇게 말합니다. “대사성(大司成)이 경연에서 아뢰었는데, 나는 유생을 양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아뢴 대로 하려 하였다. 그러나 훈련원도 무사가 모이는 곳이며 문무는 일체인데, 저기에서 빼앗아 여기에 주는 것은 과연 온편하지 못하다.” 미나리가 별 볼일 없어 보였지만, 중요한 부식 중에 하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임금의 문무는 하나다라는 말에 울림이 있지 않나요?
문: 충성심을 상징하는 미나리, 조선시대 성균관과 훈련원에서도 길러 먹던 미나리, 전주 8 미이기도 하고, 몸에도 좋죠?
답: 보통 미나리가 해독작용이 있다고 하는데요. 제가 한의사가 아니라서 신문 기사를 하나 찾아왔어요. 1936년 3월 24일 『동아일보』를 보면요. “과일과 야채보다 나은 미나리 영양가, 비타민C가 부족하면 괴혈병에 걸리는데 우리는 이 비타민을 어디서 얻을 것인가? 우리가 가장 우습게 알든 미나리에서 얻을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 오사카 시립 위생시험소에서 미나리를 분석, 우리 조선사람이 가장 잘 먹는 미나리에 비타민C가 다량 포함, 비타민B도 많이 포함, 귤, 레몬, 카벳스 등과 비교하면 2배 이상”이란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미나리에 대한 효능을 우리 선조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과학적 지식은 1930년대 일본에서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15년 1월에 전주생물연구소가 미나리 추출물로 기능성 화장품을 개발했다는 기사가 있어요. 미백 효능, 진정작용, 항균 및 항염증 효능 등 피부 개선 효과가 뛰어나다고 합니다.
문: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하실 건가요?
문: 정도전과 정몽주의 스승 목은 이색이 이런 시를 남깁니다. 제목이 「개구리 울다」인데요. “개구리가 미나리밭에서 우는데, 비 오고 흐려 소리 더욱 드날리니”라는 시구로 시작합니다. 이색은 왜 미나리꽝의 개구리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을까요? 다음은 개구리에 대한 이야기 준비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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