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1. 15:42ㆍ문화
인류학의 숙명
인류학은 일반화를 극복할 수 있을까? 레비스트로스의 말처럼 “비교에 의해 일반화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화가 비교를 가능”하게 한다. 인류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의 시작은 일반화에서 시작한다. 모든 학문에는 토대가 되는 일반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학은 왜 일반화를 극복하려 했는가? 인류학은 서구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진화주의적 관점에서 시작한다. 이런 숙명의 극복이 일반화의 극복으로 중첩되어 있다. 숙명을 극복하기 위해 인류학자들은 용어의 문제, 비동시성과 동시성의 문제, 분류의 문제 등을 제기하며, 보다 나은 관점을 계발하였지만, 일반화는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문화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며, “세상은 대학의 학과 구분처럼 나눠 있지 않다”라고 말하며, 인류학자는 숙명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란 숙명의 말뜻 그대로 일반화를 극복할 수는 없다. 이 극복할 수 없는 극복의 과정에서 인류학이 발견한 것이 성찰이다. 왜 극복할 수 없는가? 새로운 관점으로 문화의 변화를 기록하고, 비동시성과 분류 체계를 담아냈다고 해도, 기록되는 순간 그 변화와 비동시성, 분류 체계는 고정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픽션이다. 또 다른 일반화가 시작된다. 서구 제국주의의 진화론적 일반화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류학은 성찰을 발견했다.
일반화의 극복
모든 학문이 일반화를 극복할 수 없지만,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다. 인류학이 일반화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다양한 관점과 글쓰기 방식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주관성으로 귀결된다. ‘역사적 맥락에 반하는 구술자의 주관성을 최대한 끌어내어 기록’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기능주의자는 서구적 시각으로 대상을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주관성을 객관성으로 포장하거나, 포장의 과정을 생략하거나, 또는 인지하지 못했다. 기능주의 이후의 인류학은 바로 이 과정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관성으로 일반화를 극복한다는 점에서 인류학은 진실을 찾는 예술과 가까운 학문이다. 예술이 새로운 표현방식을 끊임없이 찾는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며, 이런 면에서 인류학은 인문학에 어울린다.
민족지의 딜레마
“전통적인 민족지에서 볼 수 있는 객관성에 대한 단언은 실제로는 지적인 권위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위에 대한 권리 주장을 조장하는 과시 행위였다. (중략)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비판적으로 의식하고 민족지 저술의 문제성에 대해 알고 있어야(애덤 쿠퍼 저, 박순영, 박자영 역,『인류학과 인류학자들』, 한길사, 2016, 382-383쪽)” 한다. 바로 이 문제성을 알고 대상을 (새로운 방식 또는 그만의 방식, 전통적 방식 등으로) 일반화하여 기록하는 것이 인류학자의 일이다. 무엇인가를 일반화할 수 없다면, 인간은 어떤 것도 분간할 수 없을 것이다. 레비스트로스의 말처럼 일반화가 비교를 가능케 한다. 이것이 민족지를 바탕으로 한 인류학의 딜레마다. 이 매력적인 딜레마가 인류학을 예술에 가깝게 만들고, 사회학 보다 인문학에 가깝게 만들었다. [월간 김창주,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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