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1. 14:40ㆍ문화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에 대한 서평
자크 랑시에르가 말하는 무지한 스승의 원형은 자코토가 아니라,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다. 삼장법사는 구성원 중 종교적 신념만을 소유했을 뿐 가장 무능한 캐릭터이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종교에 얽매인 무지한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직원을 감화시켜 나가며, 그들 스스로가 가진 인간성을 발현케 한다. “학생들을 그들 혼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고리 안에 가둬두도록 명령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은 마치 손오공이 머리에 이고 있는 관인 금강고를 연상케도 한다.
삼장을 자크 랑시에르의 눈으로 보면 스스로 해방한 사람이며, 해방한 무지한 스승이다. 삼장을 제외하면 다른 구성원은 짐승을 모델로 한 요괴들이다. 인간 역시 능력만 있고 인간성이 부재하다면 요괴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이 계몽적 주제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역전되었다. 삼장은 현대의 회사 구성원에 비유하면 무능한 팀장이다. 실재 소설과 영화한 작품에서도 삼장을 배신하기 위한 구성원들의 음모가 일어난다. 그는 리더인 동시에 항상 그 지도력을 의심받는다. 자크 랑시에르가 말하는 무지한 스승 역시 늘 이런 위협에 시달릴 것이다.
자코토가 비록 네덜란드어를 못했지만, 천재였으며, 조국에서 교장 대리를 맡는 등 권위를 인정받는 우수한 교사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크 랑시에르의 말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의 이론은 실행에 있어 위험한 실험성을 가지고 있다. 가르침의 대상을 믿는다는 이 순수한 발상은 그대로 믿음으로 다시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이 순수함은 삼장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성선설을 바탕으로 인간의 탈을 쓴 요괴들을 쉽게 믿는다. 자신의 구성원들이 자신과 같은 믿음이 없음을 오히려 질타한다.
이런 팀장은 현시대에 인정 받을 수 없으며, 성과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성은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인간성 따위는 휴지처럼 버릴 수 있다. 신문지상에 간간히 등장하는 갑질 상사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이런 비인간적 장면은 보험회사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자크 랑시에르의 이론은 선문답 같으며, 구도의 길을 찾는 순례자의 이상을 담고 있다. 그의 이론을 실행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그 해방의 방법을 찾기 위해 학생을 대상으로 실험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월간 김창주,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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