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공과 사도세자

2021. 6. 15. 21:35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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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기념물 53호가 뭐냐고 하면 아는 사람이나 알지 거의 모르죠. 진돗개인데요. 5월 3일은 진돗개의 날로 매년 진도에서는 기념식과 축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진돗개가 천연기념물 몇 호인지 절대 잊어버릴 수 없겠지요. 모든 말에 개가 붙으면 말이 참 저렴해져요. 개를 의인화해서 높여 부르는 견공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천연기념물 53호 진도개(문화재청)

문: 왜 진도에만 진돗개가 있나요?

답: 1940년대 일본인 학자들은 진돗개는 석기시대부터 기르던 것이었는데, 중앙아시아와 만주를 거쳐 한국으로 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진도는 섬이라 잡종이 되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순종으로 남을 수 있다는 설이 있고, 진도에서 구전되어 오는 설은 다릅니다.

 

문: 진도의 구전설은 무엇인가요?

답: 중국 송나라(10~13세기)와 교역을 했는데, 진도를 지나던 송나라 배가 풍랑을 만나서 침몰합니다. 그 배에 실려 있던 배가 진돗개의 선조가 되었다는 설, 몽고군이 우리나라를 침략했을 때 들어왔다는 설, 조선 초에 진도에 군마 육성목장이 있었는데, 도둑을 지키거나 망을 보는 목적으로 몽골에서 들여왔다는 설, 우리나라 토종개가 진도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하여 생겨난 것이 진돗개라는 설 등이 있습니다.

 

문: 중국이나 몽골에서 진돗개가 전해졌다는 설이 있는데, 우리가 일본에 전해준 사례도 있나요?

답: 4세기 중반에 백제의 사신이 일본에 검은 얼룩점이 있는 견공을 전해주는데요. 많지는 앉지만 진돗개 중에 이런 품종이 있다고 하네요. 이때 매를 길들이는 사람은 이름이 미광, 개를 길들이는 사람의 이름은 수광이고, 매사냥 법을 일본에 전해주는데, 전수받은 일본 사람이 매를 팔뚝에 얹고 견공을 앞세워 궁궐로 돌아오자, 일본왕이 매우 기뻐하며 상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유전자를 통한 연구 등에서도 대략 1,500년 전에 한반도의 견공이 일본에 전해진 것으로 보는 설도 있습니다.

 

문: 그때도 견공을 사육하는 사람들이 있었네요?

답: 칼의 노래를 쓴 소설가 김훈의 작품 중에 장편소설 가 있어요. 이 작품을 쓰려고 일주일간 진도에 가서 진돗개보존연구소의 사육일지를 봤는데, “농민들이 쓴 사육일지는 정말 놀랍게 아름답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개가 어떻게 자라서 어떻게 돌아다니고 밥은 어떻게 먹고 똥은 어떻게 싸고 발정은 어떻게 하고 그런 것이 다 씌어 있어. 그리고 개마다 달라. 이 집 개와 저 집 개가 달라”라고 말한 대목이 있습니다.

 

문: 사람들하고 오랫동안 함께한 견공, 대금소리에 맞춰 노래하는 진돗개가 있다고요?

답: 대금의 기본 주파수는 1200Hz고 진돗개 짖는 소리의 기본 주파수가 500~600Hz인데, 이게 2 배수 고조파라 진돗개가 대금소리에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논문이 있어요. 「대금소리에 응답하는 개의 목소리 특성 분석에 관한 연구」라는 두 쪽짜리 논문입니다. 기타 줄을 둥하고 쳤을 때 미 음이 나온다고 가정하고요. 이 줄을 정확히 반으로 잘라서 치면 음은 같지만 한 옥타브가 올라가거든요. 옥타브는 다르지만, 대금이 자신과 비슷한 음을 내니까 친구로 생각하고 함께 노래한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문: 진돗개 기원설 중 어떤 설이 맞는까요?

답: 중국 송나라 기원설과 13세기 몽고군의 침략으로 전해졌다는 설은 구전인데요. 백제가 일본에 흑반, 검은 얼룩점이 있는 견공을 일본에 보냈다는 것은 훨씬 앞선 4세기 중반의 기록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진돗개는 석기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르던 견공의 후예가 진도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혈통을 유지하면서 토착화된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문: 진돗개 이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견공은?

답: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진돗개와 풍산개, 199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삽살개 등 3종류가 보존되고 있습니다. 구전과 기록에 남아 있는 토종개는 경주개 동경이, 제주개, 거제개, 오수개, 복실이, 바둑이 등인데요. 이것들은 대부분이 멸종되었거나 멸종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일본에 전해주었다던 흑반, 검은 얼룩점이 있는 견공도 거의 찾기가 어렵다고 하네요.

천연기념물 제368호 삽살개(문화재청)

문: 검은 얼룩점이 있는 견공, 그 모습이 궁금한데, 옛 그림 속에 견공이 등장하는 그림은?

답: 사도세자가 그렸다는 그림에 이 검은 얼룩점이 있는 견공이 등장합니다. 중앙에 검은 얼룩점이 있는 큰 개가 자리하고 있고, 작은 개 두 마리가 반갑게 달려오는데도 큰 개는 고개만 돌려 바라볼 뿐 무덤덤한 표정인데요. 따뜻한 부정을 느끼고 싶어 한 사도세자의 안타까운 마음과 아들을 부자 관계가 아니라 군신 관계로만 대했던 영조의 냉정한 태도를 비유적으로 보여 준다고 풀이하기도 합니다.

犬圖(국립고궁박물관 소장, https://www.gogung.go.kr)

문: 현대적인 작품 중에는?

문: 김연경 작가의 견공 그림이 있는데요. 14~16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던 인간 중심의 미술사조인 르네상스의 명화 속 인물의 얼굴을 견공으로 바꿔 인간의 내면을 표현했습니다. 견공의 머리 형상을 빌려와서 의인화했고, 권력과 부를 지닌 겉모습과는 상반되는 인간 내면의 고독한 삶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직접 보시면 참 재미있는 작품이고, 바로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월간 김창주,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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