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다리기의 이야기 구조

2021. 6. 15. 14:10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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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

  남녀로 나뉘어하는 줄다리기는 주로 동남아 지역에 분포해 있다. 중국의 줄다리기와 비교하면 경쟁적인 놀이의 성격보다는 풍년을 기원(기풍)하는 농경제의로서의 성격이 훨씬 강하다. 성행위를 묘사하는 퍼포먼스나 남녀가 비와 태양으로 상징되어 여성이 풍요의 대상이 되는 주술적인 상징과 요소는 오늘날 전승되는 우리의 줄다리기에서 확인된다.(서해숙, 2011)

  서해숙은 조선 후기 이앙법 확산으로 벼의 수확량이 많아지면서, 줄다리기가 더불어 확산되었고, 수전 농업지역에서 줄다리기가 성행하였다고 파악하고, 줄다리기 본연의 의미는 경기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하나가 되어 거행하는 의례이며, 동시에 놀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완성된 짚 줄은 놀이용 줄이 아니라, 생산력 생명력을 담보하는 용으로 신격화된다고 말한다.

줄꼬기(문화재청)

  남녀로 나뉘어하는 줄다리기는 형식적이며, 줄을 만드는 기간에 비교하면 놀이의 시간이 매우 짧다. 줄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성의 접근을 막으면서, 경기에서 여성이 손쉽게 이기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풍이란 기존의 해석 이외에 빛과 그림자로 나누어 융의 심리학으로 해석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관(官)과 줄다리기

  경쟁적으로 경기를 하는 것이 줄다리기의 원형인가? 남녀로 나뉘어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줄다리기의 원형인가? 1932년부터 1940년 사이에 조선총독부 주도하에 농촌진흥운동이 전개되는데, 이때 일제가 조선의 향토 오락 진흥을 제창하고 나선다. 향토 오락은 당시에 예로부터 민간에 전래된 민속놀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향토 오락 진흥의 이유는 농촌사회를 보다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일본 내지의 정책을 국내에 수용한 것인데, 1934년 경기도 지방과의 조사에 의하면 줄다리기의 경우에는 "투쟁적인 면모로 폐해를 일으"킨다고 "부활하고 장려할 필요가 없다"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당시 민속놀이의 특징은 대회화, 무대화, 도시화되는 변모 양상을 보인다.(김난주, 송재용, 2011)

줄운반(문화재청)

  이러한 연구 성과의 특징적인 면은 기존의 인류학 교본에서 배운 정설과 다르다는 점에 있다. 식민지의 민속이 저항운동에 응용될 수 있기 때문에 미신적이거나 열등한 것으로 식민지 통치자들이 금기시한다는 것이 정설이었고, 과거 이런 패러다임으로 해석한 연구 경향이 있는데, 현재는 다양한 사료가 발견되면서 이와 상충하는 연구 경향이 보인다.

줄고사(문화재청)

  18~19세기 영산 지역은 관에서 줄다리기 행사를 주도한 사실이 보인다. 조선 후기에 각 지역에서 빈번하게 행해졌던 향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향리와 수령이 향촌사회를 원활하게 통치하고 이끌고 가기 위한 목적으로 고을을 단위로 한 줄다리기를 주도적으로 행했을 가능성이 높다.(서종원, 2011)

국가무형문화재 제26호 영산줄다리기, 길놀이(문화재청)

  조선 후기 관 주도의 줄다리기는 주술적 요소가 사라지고, 고을 단위의 대규모 경기적 요소가 강화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현재도 민속 줄다리기는 관의 지원을 받으며, 관광 축제의 형태로 변이 되면서, 본래 행해졌던, 줄다리기 기간이 아니라, 축제 기간에 행해지는 형태로 변이하고 있다. 주술적, 경기적, 농촌진흥적, 문화산업적이란 수식어가 시대별로 붙어있다.

  이 네 가지 수식어는 줄다리기의 문화콘텐츠화 과정에서 지역의 특수성과 개별성을 확보하고 원형(원조)을 찾기 위한 주요한 관점으로 작용해서, 몇 가지 담론 구조를 만들어 냈는데, 이 이야기의 구조는 비단 줄다리기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형문화의 원형을 찾는 이야기 구조와도 유사한 특징이 발견된다.

 

원형화 과정

  무형유산의 원형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수학의 방정식을 풀듯 변수 X를 상정하고, 이 원형 X를 해석하는 방법은 연구자의 함수에 의해 새롭게 해석된다. 이런 해석의 유형은 시대의 패러다임에 따라 유사한 형태를 띠며, 유기체와 같이 변형, 통합, 해체되는데 이 과정에서 설득력을 얻은 원형설이 해당 무형유산 원형의 정설로 정착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원형이란 끊임없이 변형되는 변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형이란 용어가 필요한 것은 방정식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X라는 기호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무형유산의 원형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상징적인 기호일 뿐이다. 따라서 원형을 찾는 과정은 특별한 상수를 찾는 과정이 아니라, 변수 X가 어떻게 변이 되었는지 알아가는 과정이다.

  원형이란 재현되는 순간 변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관점이 적층 되는 과정 속에서, 집단 무의식을 도출할 수 있다면, 이것을 원형이라고 칭할 수도 있을듯하다.  [월간 김창주,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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