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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언 기술

by 월간 김창주 2021.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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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매출 170조의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중국 알리바바 마윈 회장이 앞으로 30년간 IT(정보 기술)가 아닌 DT(데이터 기술)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해 화제다. 데이터 기술은 집적된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이라는데, 누가 축적한 데이터며 이것으로 무엇을 예측한다는 것일까?

  아침마다 거울을 보는 나는 되고 싶은 나를 상상하며, 또한 되고 싶지 않은 나를 다짐하며, 머리카락을 빗는다. 거울 속의 나는 수면 아래 별주부를 따라간 토끼처럼 야망을 꿈꾸기도 하고, 하나뿐인 간을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이 다짐의 거울은 별주부의 바다 속도 아닌 인간이 만든 가상의 공간으로 옮겨졌다.

  21세기 나르시스의 호수는 스마트폰이다. 현대인은 각자의 휴대폰을 바라보며, 자신의 빛과 그림자를 담고 있다. 남과 다른 소비와 명망 있는 친구를 가상의 공간에 나열해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증명하려 한다. 되고 싶은 나에 대한 열망이 강해질수록, 현실에서 벌어지는 실패와 좌절, 되고 싶지 않은 나의 긴 그림자 역시 가상공간에 펼쳐진다.

에코와 나르키소스(John William Waterhouse, 1903)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이 가상의 공간에 평범한 일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상의 공간 속에 인간이 집적한 데이터는 곧 사람의 욕망을 축적하고 있다. 이 욕망을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기계)은 인간 삶의 무엇을 예언할 수 있는가? 소비로 존재를 증명하는 현대인에게 보다 나은 소비를 제안할 수 있을까?

  보다 나은 소비의 정의는 무엇이고, 기준은 무엇일까? 결국 집적된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한다는 기술이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를 부추기며, 인간관계의 물화(物化)를 가속화하지 않을까? 집적된 데이터로 최단거리를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 여행의 풍광을 앗아간 것처럼 엄청난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술이 과연 인간에게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직관과 통찰을 줄 수 있을까?

  과거에도 예언하는 기술은 존재했고, 선택의 순간에 사람은 이성적 또는 비이성적 수단을 사용해 왔다. 별자리를 보는 점성술과 점괘를 담은 책, 예언자들의 말도 있었다. 수많은 예언에 대한 맹신과 의심 속에서, 인간은 좀 더 나은 예언의 기술을 갈망해왔다. 그 원동력은 맹신에 대한 의심이었다. 의심은 다시 여행자에게 풍광을 돌려준다.

  역사 속 종교 지도자와 지식인들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미래를 예언해 왔다. 그렇다면 21세기 데이터 기술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기술인가?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술이란 결국 사람이 만든다. 그는 거대한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는 거대한 기업의 직원일 것이다. 그가 광녀(狂女) 카산드라라고 불릴지라도 물질문명에 대한 반시대적 사고라 할지라도 맹신을 의심하는 것은 지식인의 사명이다.

  물속에 비친 자신을 사랑하다 죽은 그리스 목동은 수선화를 남겼지만, 21세기 소비로 존재를 증명하는 나르시스의 호수는 ‘좋아요’를 남기고 있다.

※ 전북매일신문(2015.5.28.목.15면)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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