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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전주 도시공간의 빛과 그림자

by 월간 김창주 2021.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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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 공존의 문화

  전주는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를 기준으로 도시가 배치되었다. 좌묘우사(左廟右社)의 원리가 적용되어 좌측에는 경기전과 우측에는 사직단이 자리 잡고 있다. 근대기로 접어들면 역동적인 공존의 문화를 볼 수 있다. 경기전이 왕의 사당이라면, 그 앞에 자리한 전동성당은 중인의 문화를 대변한다. 이곳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교동의 향교는 선비 문화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향교 앞의 남천교를 지나면 서학동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본래 감영의 사령들이 살았다. 『전주부사』에 의하면, 동학교도들이 패주한 후 부채와 우산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나갔다. 이와 같이 전주 도시공간의 배치는 역동적인 공존의 문화를 담고 있다. 단적인 예가 전주인이 지켜낸 「태조어진」과 『조선왕조실록』이다. 어느 한 세력이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다른 문화를 극단적으로 훼손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도시공간

  초대 전라북도 도장관 이두황은 철도 유치를 위해 전주 유지들을 설득하지만, 유지들은 반대한다. 이 유지들은 바로 회사를 설립하고 1914년 전주와 익산 간에 사설 철도를 개통한다. 이후 이 철도는 국유화된다. 현 전주시청에 있던 전주역은 왜식 또는 서구식이 아닌, 한옥의 형태로 1929년 지어진다. 이 무렵 전라북도 내의 중소지주들은 자녀들의 신식 교육을 위해 전주로 나오게 된다. 이때 조성된 것이 지금의 한옥마을로 집장사가 일정한 규격으로 지은 것이다. 이것을 일제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하는 서사구조는 허구다. 1931년에는 「전주안내도」가 발간되어, 전주의 명소와 유흥점, 요리점, 숙박업소를 소개하고 있다. 관광자원화된 것이다.

  높지 않은 언덕임에도 전주를 조망할 수 있는 다가산에는 전주신사가 세워졌고, 신사참배를 거부한 신흥학교는 학교를 폐교하기도 했다. 각 학교에는 일본 신사인 봉안전이 세워졌다. 또한 앞서의 한옥들은 일본식 현관을 내지 않으면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해방 후 학생들과 주민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봉안전과 일본식 현관을 때려 부수는 일이었다. 당시 가장 번화한 상권이었던 은행목통(구 보건소, 은행나무거리)에서는 하수구를 내기 위해 천년이 넘는 은행나무를 베어내고, 대신 그 나무로 지장보살(88개의 영장)을 만들어 놓고, 게이샤를 불러 매년 일본식 축제를 개최했다. 일제강점기 일본 신을 전주에 재배치시키고, 그들의 축제로 재구성한 것이다.

전주시 서노송동 옛 전주문화재단 현관에서 북쪽을 보고 촬영한 사진. 교회가 불을 밝히고 있고, 반대편에는 선미촌이 있다.(2012)

도시의 양가성

  노송동은 현재는 다소 낙후된 곳이다. 이곳에서 근현대화 속 도시의 양가성을 읽을 수 있다. 노송동은 후삼국 시대 견훤의 성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물왕멀이란 지명이 있다. 물이 많아서 물왕멀이라고 증언하는 사람은 평생 물 걱정 없이 살았다고 말하고, 그 주위에서 살던 다른 주민은 물이 없어서 평생 고생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노송동에 있던 전주역에서 흘리던 눈물은 누군가에게는 만남의 기쁜 눈물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이별의 슬픈 눈물이었다. 이곳에 있던 속칭 피병원에 대한 증언 역시 상반된다. 헌혈의 집으로 증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일제강점기 피를 빼 마루타를 실험하던 곳이란 증언도 공존한다. 권삼득로를 따라 북쪽에는 큰 교회가 양쪽으로 마주 보며 진리의 불을 밝히고 있으며, 반대편인 남쪽에는 홍등가의 욕망의 불이 켜진다. 도시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고 있다.  [월간 김창주, 2016]

 

※ 성매매 집결지였던, 노송동의 선미촌은 2021년 현재 여성인권과 문화예술복합 공간으로 재생되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책을 참고해 주세요.

 

전주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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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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