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26. 13:11ㆍ음악
지난 편에서 2세기 중엽 로마가 베트남에서 중국과 교역을 한 이야기와 베트남의 음악, 인도네시아의 음악인 가믈란에 대해 이야기했다.
2020/08/25 - [바다의 실크로드] - 기원 후의 바닷길
6세기에 그리스의 기독교 수도사 코스마스가 『기독교 풍토기』라는 책에서 “인도와 페르시아, 에티오피아 등 여러 나라 선박들이 실론에서 출항해서, 멀리 중국까지 내왕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번 편은 실론, 지금 말로는 스리랑카로 가보겠다. 스리랑카는 한국으로 온 이주노동자의 수가 만 명이 넘는 나라 중에 하나다. 조선족을 제외하면 아시아권의 나라 중 이주노동자의 비율이 아홉 번째로 많은 나라다. 다문화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인정과 이해가 필요한데, 이번 이야기로 스리랑카의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스리랑카는 어떤 나라인가요?
인도양의 진주 또는 눈물방물이라고도 한다. 인도 아래에 위치한 섬나라이고, 경기도를 제외한 한반도 남한만한크기다. 민족 구성은 싱할라족 70%, 타밀족 20%, 무슬림이 10%다. 포르투갈 150년, 네덜란드 150년, 영국 150년. 총 450년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2009년에 종식된 싱할리족과 타밀족 간의 내전은 27년간 아시아 사상 최장기 내전이 벌어졌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반면에 홍차인 실론티의 명산지로 알려져 있다. 코끼리를 가두지 않고, 자연 속에 살도록 둔 나라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전래동화도 있다. 「재칼의 결혼식」은 “여우가 시집가는 날”에서처럼 해 뜨고 비가 오면, 재칼이 결혼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해와 달과 벼」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비슷한데, 스리랑카에서는 불효하는 두 아들은 해와 달이 되고, 딸은 달이 된다는 내용이다.
법정 스님과 14세기에 활동한 이븐 바투타의 기행문이 재미있어서 몇 가지를 적어 보았다.
법정 스님은 어떤 기록을 남기셨나?
법정스님이 1990년에 스리랑카에 다녀와서 남긴 기행문이 있다. 인상적인 부분을 인용하면, “인도 대륙에서는 거지꼴이었는데, 스리랑카에서는 왕이 된 느낌이었다”고 쓰고 있는데, 인도에서는 음식도 맞지 않고, 고단한 여행길이었는데, 그 행색을 영화 닥터 지바고에 비유를 하고 있다. 지바고가 패잔병이 되어서 라라의 집으로 숨어 들어왔을 때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고 울부짖었던 그 모습이었다라고 재미있게 표현을 했다. 에어랑카에서 본 스튜디오스의 미모가 그 동안의 고생을 잊을 만큼 나를 감동시켰다고도 썼다. 스리랑카를 지상에 남은 마지막 낙원이라고도 하는데, 순례지인 “아담의 산”에는 아담의 발자국이라고 불리어지는 발자국이 남아 있다.
아담의 발자국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나?
14세기에 활동한 이븐 바투타가 "스리랑카에서 첫눈에 띄는 것이 싸란디브산이었고, 9일 거리나 되는 먼 바다에서도 보이고, 하늘을 찌르듯 아아하게 솟은 이 산은 마냥 연기기둥과 같다." 바로 아담의 산이다. 스리랑카 남부에 높이 2,243m의 산꼭대기에 큰 바위가 우뚝 서 있고, 바위에는 사람 발자국을 닮은 움푹 팬 부분이 있다. 이슬람교에서는 아담의 발자국으로, 힌두교에서는 시바신의 발자국, 불교에서는 부처의 발자국으로 믿고 있다. 해마다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이 많다. 이븐 바투타가 아담의 발자국을 찾아가는 길과 스리랑카를 답사한 기록을 남기는데, 스리랑카인들은 아담을 바바, 하와를 마마라고 부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븐 바투타가 아담의 발자국을 찾아가는 길
당시 실론섬 항구의 술탄은 잔인하데다, 해적질을 해서, 선주가 배를 항구에 정박하기를 두려워했다. 이븐 바투타가 대표로 해안가에 내려서 술탄에게 “제가 이 섬에 온 목적은 다름이 아니라 거룩한 발자국, 즉 아담의 발자국을 탐방하려는 것입니다”라고 설득해서 환대를 받는다. 코끼리가 많지만 이방인을 해치지 않았다. 실론섬에는 전역에 루비가 널려 있다. 모든 여성들이 오색찬연한 루비목걸이를 걸고, 술탄의 시녀들은 루비로 그물을 짜서 머리에 쓰고 있다. 싸비크 동굴에서는 줄루라는 날아다니는 살인 거머리를 만나기도 한다. 아담의 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하와의 길은 걷기 쉬워서 순례자가 돌아올 때 택하고, 아담의 길은 꼬불꼬불하고 오르기 힘들지만 사람들은 이 길을 택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상에 올라서 남긴 소감?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거룩한 발자국, 우리의 시조인 아담의 발자국은 펑퍼짐한 곳에 두드러져 있는 거무스름한 암석에 찍혀 있다. 거룩한 발은 암석 속에 푹 빠져 들어가 그 자국이 깊이 패어 있다. 옛날 중국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엄지발가락 부분을 떼어 갔다. 발자국이 있는 암석에는 9개의 구멍이 패어 있는데 이교도 순례자들은 거기에 루비나 보석 같은 것을 집어넣는다"고 기록하고, 3일간 묵으면서 아침저녁으로 참배하고 하와의 길로 하산합니다. 길 끝에 산기슭에 다라흐트 라완이라는 낙엽이 지지 않는 고목을 만나는데, 현지인들은 그 잎을 먹으면 늙은이도 회춘을 한다고 말하지만 황당무계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실론섬에서 연주되던 음악은?
종교의식에 관한 기록이 있다. 아담의 산에서 이틀을 더 걸어서 해변가에 상인들이 거주하는 디나와르라는 도시에 도착한다. 이곳은 힌두교 사원이 있고, 디나와르라는 우상이 있다. 이 사원에 약1천 명의 사제가 있고 약500여 명의 인도 여인들이 있는데, 매일 밤 우상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사람 크기의 이 우상은 금으로 만들어졌고 두 눈에는 큼직한 루비를 박아 넣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20세기 말에 수렵채집민인 베다족의 노래와 춤에 대한 기록이 있다. 남자들은 모두 각자 자신만의 노래와 춤을 가지고 있는데, 종교의식을 하든 어느 때든 결코 다른 사람의 것을 흉내 내지 않는다고 하고, 벌꿀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벌이 어느 꽃에서 딴 꿀인지 향기로 알아낸다고 하는데, 점점 정착생활을 하고 있어서 점점 이런 지식과 문화가 사라져가고 있다.
이븐 바투타는 어떤 사람인가요?
이븐 바투타는 1304년에 태어났다. 모로코의 지브롤터 해협 인근의 항구도시 탕헤르가 고향이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40개국 12만km를 30년간 여행한 인물이다. 마르코 폴로(1254 ~ 1324)보다 3배가 넘는 거리를 여행했다. 중세 이슬람의 문화, 풍습, 가치관을 담은 탐험기를 남기고, 법관으로도 활동을 한다. 1353년에 귀향해서, 1368년에 모로코 페스에서 타계한다. 마르코 폴로는 13세기 사람이고 이븐 바투타는 14세기 사람이다. 당시 세계사를 들여다보면 13세기에 세계적인 몽골제국이 건립되고, 14세기에 서양의 르네상스를 계기로 근대적인 경제문화가 싹트면서 동양의 물품에 대한 수요가 더 많아진다. 14세기 중엽에 명나라가 세워진다. 15세기 초에 명나라의 정화가 30년간 세계를 누빈 항해를 시작한다. 선단 승선인원이 2만 7천여 명, 배 한 척에 1천 명이 승선할 수 있는 대규모 원정이었다. 다음 편은 페르시아로 항해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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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인의 어깨 위에서 읽은 것을 재 정리한 것입니다. 7~8년 전에 정리한 글로 참고문헌 목록을 잊어버렸습니다. 인용 기호가 제대로 표기되지 않았거나, 참고문헌 목록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한 것은 모두 제 불찰입니다. 제가 잘 기록하지 못한 부분을 알려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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