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8. 10:37ㆍ문화
문: 오늘 주제가 삭발입니다. 여러 이유로 삭발을 할 것 같아요.
답: 삭발의 상징성에 대한 조명일 씨의 연구가 있습니다. “삭발 스타일이 개인의 이미지뿐 아니라 종교, 정치, 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하는 이데올로기적 산물이며 더 나아가 패션과 예술을 창조하는 하나의 매개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고대부터 현대까지 참 다양한 이유로 삭발을 하고 있었고, 여러 의미가 있었습니다. 삭발도 여러 스타일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머리카락을 다 자르는 삭발이 있고, 조금 남겨 놓는 반삭도 있습니다. 예전에 남학생들은 중학교에 올라가면 이런 헤어스타일을 했죠.
문: 삭발도 여러 스타일이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스타일이 있나?
답: 스킨헤드 스타일, 모히칸 스타일, 반삭 스타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스킨헤드는 영국 노동자 계급의 저항문화에서 유래했는데, 두피 전체가 드러난 민머리 스타일입니다. 모히칸 스타일은 모호크족에서 유래한 것으로, 닭 볏과 같은 독특한 모양인데, 주로 외국 영화에서 악당들이 이런 헤어스타일로 등장하기도 하고요. 또는 락스타나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이 가끔 하기도 하는데, 펑크문화와 만나면서 독특한 펑크 헤어스타일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반삭 스타일은 우리나라에서는 1895년에 김홍집 내각이 성년 남자의 상투를 자르도록 내린 명령인 단발령 이후부터 등장했는데, 지금은 유행과 개성을 추구하는 하나의 패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문: 삭발을 해 보신 적 있나?
답: 제가 1990년대에 다니던 고등학교는 두발 자율화였습니다. 머리를 길게 하는 건 자율이 아니었는데, 반삭에서 완전 삭발까지는 자율이었다. 그런데 어떤 학교는 완전 삭발은 반항, 항의의 의미로 해석해서 선생님들한테 혼났죠. 지금 생각하면 저희 반에도 삭발한 친구가 꽤 있었는데, 다들 잘생긴 애들이 했던 거 같아요. 예전에 이런 스타일이 잘 어울리는 영화배우 중에 율부리노가 있었죠. 저는 그렇게 삭발하는 친구들의 용기가 부럽기도 했고, 막상 해보려고 하니까, 창피함이 앞서서 못했어요. 저희 학교는 삭발하고 결연한 의지로 공부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한 거 같습니다. 장려했습니다.
문: 삭발을 두고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데, 현대인에게 삭발은 어떤 상징성이 있나요?
답: 정치적 측면에서 삭발은 의사나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폭력 시위의 한 형태가 삭발 시위인데요. 삭발은 머리털을 비롯해서, 무기를 가진 것 없다는 맨몸이다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주로 사회적 약자들이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비폭력적 행위인 삭발을 하는데요. 가끔 국회의원들이 하기도 합니다. 10여 년 전쯤에 대학생들이 등록금 인하를 외치면서 단체로 삭발했던 게 기억납니다. 반대로 삭발이 폭력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흔히 깍두기 스타일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폭력집단에서 이런 헤어스타일을 하는데요.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싸울 때 영화처럼 멋있게 싸우지 않죠. 머리채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 그렇다고 하네요.
문: 앞에서 영화배우 율부리노를 말씀하셨는데, 삭발이 남성성을 보여주기도 하지 않나요?
답: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남성성을 표출하고 패션을 연출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합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012년 10월 4일자에 삭발한 남성이 남성적이고 우월해 보이며 리더십이 뛰어난 인상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는데, 실험방법이 남성의 평소 모습과 삭발한 모습의 사진을 344명에게 보여준 결과, 머리카락이 없으면 더 능력 있어 보인다는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 실험을 한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맨즈 박사가 자신이 삭발하고 나자 사람들이 전보다 공손하게 대한다는 느낌을 받고 이 연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마존 닷컴 창립자인 제프 베조스. 드림웍스 CEO 제프리 카젠버그, 넷스케이프 창업자인 마크 안드리센, 제너럴 모터스 CEO 댄 애커슨, 마이크로소프트 CEO 스티브 발머도 머리카락이 없는 민머리입니다.
또 상반되게 1970년대 대중문화 현상 중 하나였던 펑크문화에서 삭발을 하는데요. 앞에서 스킨헤드가 대표적입니다. 당시 영국의 경제 불황과 관련이 있는데요. 펑크는 일자리를 잃은 젊은 실업자나 노동계층들에 의한 하위문화였고, 저항의 의미를 가지고 1980년대까지 유행했습니다. 지금은 펑크 패션은 이런 의미는 사라지고, 이미지 연출을 위한 헤어스타일이 되었습니다.
문: 예술적 측면에서 삭발의 의미를 더 이야기해보죠.
답: 예술적인 측면에서는 영화나 드라마, 연극 등에서 캐릭터의 완성을 위하여 삭발을 합니다. 영화 『왕과 나』에서 율부리노가 대표적입니다. 국내에서는 주로 여배우들이 삭발했을 때 많은 관심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명세빈 씨가 1997년에 TV광고에서 백혈병에 걸린 친구를 위해 삭발했던 연기를 보여줬고, 더 오래된 것으로는 1989년에 30년 전이네요. 강수연 씨가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 삭발하기도 했다. 저도 어렸을 때였는데, 당시에 상당한 화제였다. 최근 작품 중에는 2012년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앤 해서웨이가 듬성듬성 자른 반삭의 머리로 비운의 판틱 역을 연기하기도 했죠.
또 삭발한 머리를 보디아트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영국의 필립 레빈(Philip Levine) 작가가 있습니다. 자신의 삭발한 머리를 캔버스 삼아서 작품을 표현해서, 헤디즘(Headism)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문: 현대사회에서 삭발이 여러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전통적 의미는 무언가요?
답: 삭발의 전통적 의미도 나라마다 달라요. 의례적 의미에서 삭발은 인간의 생사와 관련이 있었고, 아프리카, 이집트, 우리나라에서 갓 태어난 아이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마사이족은 성인식의 의미로 삭발을 합니다. 열대지방에서는 청결과 위생을 위해 삭발을 했는데,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막의 뜨거운 열과 직사광선을 피하기 위하여 머리를 삭발하고 통풍이 잘되게 짠 가발을 쓰고 다녔습니다.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것은 남성의 힘, 남성성이 사라진다고 생각하기도 한 것 같아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삼손이 머리카락이 잘리면서 힘을 못쓰죠. 정치적 측면에서 삭발은 전쟁포로, 노예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한 것으로 행해졌습니다. 일종의 모욕, 굴욕을 주려는 의도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독일 나치군과 교제한 여성에 대해 보복하기 위해 집단 삭발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말레나』에 그런 장면이 나오죠.
반면에 종교적 측면에서는 속세의 모든 욕심과 육체적인 쾌락을 멀리하면서 신명을 바치겠다는 각오와 금욕의 상징, 욕망의 단절을 의미로 삭발을 하는데요. 스님이 대표적입니다. 1972년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가톡릭교회의 수사님들도 삭발을 했습니다. 힌두교의 비슈누를 숭배하는 신도들은 자신을 낮추고 ‘회개’한다는 의미로 머리를 삭발합니다.
문: 삭발이란 행위는 같지만, 의미는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르네요.
답: 학창 시절에 삭발한 것을 누군가는 반항의 메시지로 누군가는 열공의 메시지로 읽었죠. 왜 그럴까요? 내가 어떤 의미로 삭발을 했든, 삭발이란 하나의 사건만으로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과거의 행위, 사회적 문화적 맥락 안에서 삭발의 의미를 해석합니다. 삭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표현과 해석이 그렇죠. 그중에 삭발은 강력한 충격을 주는 표현 중에 하나입니다. [월간 김창주, 2019]
※본 글은 조명일의 연구(「현대 헤어스타일에 나타난 삭발의 상징성」,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3)를 참고하였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분은 논문을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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