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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전주 미래유산

by 월간 김창주 2021.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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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유산의 차별성

  서울시는 미래유산을 ‘근현대 서울을 배경으로 다수 시민이 체험하거나 기억하고 있는 사건, 인물 또는 이야기가 담긴 유·무형의 것으로서 서울특별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가 미래세대에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것을 말한다. 다만,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지정·등록된 문화재는 제외’라고 규정하고 있다. 전주시의 미래유산 정책 역시 이와 같은 기조(基調)를 공유하고 있다. 지정문화재, 등록문화재와 비교하여 미래유산의 제도적 차별성은 시민 스스로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기억과 감성을 발견, 또는 그것이 담긴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발굴·보존·관리·활용까지 시민주도의 자발성에 있다. 또한, 등록문화재가 50년 이상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기간 이전에 서울시의 난개발로 멸실 또는 훼손되는 문화유산에 대한 보존・활용 방안으로 미래유산 정책을 내놓았다. 이보다 더 큰 차별성은 기억과 감성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 있다. 지정문화재가 원형보전으로 관람형 활용 정도가 가능하다면, 미래유산은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도 차별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교한 것은 전주시의 미래유산 정책의 출연 배경은 무엇인가를 묻고, 서울시가 정한 미래유산이란 용어를 그대로 사용해야 하는가를 묻기 위해서다. 미래란 말에는 현재의 이념이 담겨 있다. 유산에는 재화의 성격이 강하다. 그것이 가진 기억, 이야기, 정신보다 재화 자체를 신성화하며 물화될 수 있다. 미래유산이 차별성을 갖기 위해서는 기존의 문화재에서 보이는 이와 같은 특징과 다른 성격의 특징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지역적 개별성과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 전주만의 용어와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 지정문화재가 강력한 원형보존의 원칙을 따른다면, 등록문화재는 현상변경에 대한 조항을 두어 보존과 활용이란 양가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2013년 8월에는 구형 세탁기, 냉장고, 라디오 등이 등록되어 등록문화재의 범위가 확장되었다. 재화 중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화유산을 물건으로 생각하면 변형을 용납할 수 없고, 활용이란 변형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같은 노래를 불러도 그것은 매번 다른 노래가 된다. 그것은 듣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기계에 녹음된 음악을 같은 사람이 매일 듣더라도 그의 기분의 따라 음악의 느낌은 변한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같은 기사를 읽더라도, 시대에 따라 읽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그 기록에 대한 해석은 변주한다. 미래유산은 활용 쪽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신창희는 문화유산의 활용을 재생·재현·재이용·전용 등으로 정리하고 미래유산 활용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집중된 점적 활용에 대한 선적 면적 활용이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활용에 대한 과도한 해석으로 문화유산이 훼손되는 문제, 물리적 기록화에만 치중한다는 점도 제기하였다. 2001년부터 문화재청에서는 등록문화재를 대상으로 기록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 기록들은 도면·사진·연혁에 대한 것으로 불의의 사고로 훼손되었을 때 수리, 복원하는데 목적이 있다. 대상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 문화재 정책과 미래유산의 차별성은 결국 기억, 이야기, 행위, 활용에 있다. 이 활용의 과정에서 그것을 훼손으로 보느냐? 변주로 볼 것인가란 문제점과 지점이 있다. 그것을 변주로 볼 수 있다면 미래유산은 재창조라는 명제가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재생·재현·재이용·전용과는 다른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한 것을 정리하면 미래유산의 재창조는 기억을 기록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문화적 기획물을 만들어 새로운 창조적 행위를 창출하는 과정이다. 이 행위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다시 기록되어 기획, 행위로 선순환될 때 미래적 가치를 갖는 전주 미래유산이 될 것이다. 그 가치란 인간성과 인간관계의 회복을 담고 있어야 하며, 변주와 활용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은 것은 미래유산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미래유산 찾기는 기억과 기록을 통한 정체성 찾기다.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은 기억을 재구성하는 상상력에 달려 있다. 누구도 어제의 일을 그대로 기억할 수 없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전주 미래유산은 어디에 있을까?

  도노반 립케마는 『역사 보존의 경제학』에서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도시 개발보다 문화유산 보존이 더 경제적인 활동이라고 말한다. 첫째, 일자리 창출과 가계소득 증가 둘째, 도심 재활성화 셋째, 관광 상품화 넷째, 건물의 자산 가치 상승 다섯째, 지역 내 소기업 육성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문화유산 보존이 건물 신축 사업보다 16.5퍼센트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분석하였다. 믿지 않을 사람도 있겠지만, 더 자세한 수치를 들지 않더라도 전주한옥마을을 지켜봐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옳게 여길 것이다. 이것은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이 아니다. 도노반 립케마를 말하지 않아도 전주인은 그 가치를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 경험이 곧 자산이다.

  전주한옥마을은 1977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되어, 1997년에는 보존지구가 해제되기도 했다. 보존과 재개발을 두고 여러 갈등이 있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정다운 우리 동네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살기 불편한 낙후된 집이었다. 전주 한옥마을은 이 갈등의 시간을 견뎌내었다. 강산이 몇 번 변하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전주한옥마을의 가치를 미리 알아보고 보존지구로 지정한 혜안과 이것을 실천한 선배들이 있었다. 이것을 보면 전주 미래유산이란 말은 오늘 만들어졌지만, 미래유산이란 말이 있기도 전에 우리의 선배들은 이미 그것을 알아보고 실천하고 있었다. 재개발의 논리로 허물어져 사라져 버릴 것들을 지켜낸 것이 어디 이것 하나뿐이겠는가?

전주 오목대에서 촬영한 전주한옥마을(2011년)

  후배들이 발견하지 못한 전주 미래유산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앞의 사례를 보면 미래유산이란 과거 어디쯤에 완벽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쩌면 현재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배들의 혜안과 실천을 깊이 살펴보면 그 안에서 미래유산을 찾을 수 있다. 전주시‧전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전주문화재단은 일곱 차례에 걸쳐 전주 미래유산 포럼을 개최하였다. 미래유산이 무엇인가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모아졌다. 유형적 자산에는 건축물, 장소, 경관 등이 무형적 자산에는 기억, 기록, 공동체 등을 포함하고 문화지구와 지구단위계획을 중첩해 미래유산지구를 지정하는 제도적 활용 방안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미래유산이 아니다. 미래유산을 만들어가는 도구다. 유형적 자산은 바늘, 무형적 자산은 실, 지구단위계획은 가위에 비유할 수 있다. 각각은 하나의 도구로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바늘이 구멍을 내어 점(장소)을 만들어낸다면, 형체를 변형할 수 있는 실은 점과 점을 이어 선을 만들어낸다. 지구단위계획은 마름질한 옷감을 잘라내는 가위다. 이 바늘과 실과 가위가 만나 만들어내는 옷이 미래유산이다. 이 옷을 만드는 행위의 주체는 전주시민이 다. 그 행위 안에는 우리 선배들이 보여줬던 혜안과 실천이 필요하다. 그것은 대동과 풍류, 올곧음과 창신을 담은 꽃심이다. 전주문화재단은 전주의 정신과 마음을 찾기 위해 전주시 33개 동의 마을조사를 2018년 완료하였다.

※ 본 글은 2016년『전북중앙신문』에 게재한 칼럼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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