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

밸런타인데이와 초콜릿

by 월간 김창주 2021. 11. 12.
728x90
반응형

현대 여성의 악취미

  1938년 『삼천리』 8월호에 초콜릿에 대한 재미있는 기사가 실려 있다. 당시 유명인사 여러 명에게 각각 “현대 여성의 악취미”에 대해 의뢰해 기록해놓았는데 그중 첫 번째가 이화고보의 김창제 교수의 글이다.

“첫 번째가 활동사진(이건 영화를 뜻하고), 두 번째가 초코레트, 세 번째가 머리 지지기, 입술 칠하기라”

  후대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생활방식과 환경에 따라 취미가 변하기에 선악을 말할 수 없지만, 막연하게 일시적으로 느낀 바를 쓴다”라고 덧붙였다.

 

아리송한 일본인 의식

  1974년 2월 1일 자 『경향신문』에서 “서양에서는 2월 14일 사랑의 날 즉 밸런타인데이라고 하여 큐핏을 상징한 그림이나 감상적인 시구, 때로는 풍자화 등을 그린 카드를 익명으로 이성이나 애인에게 보내는 풍습이 있다”라고 소개를 한다. 1980년 2월 14일 자 『경향신문』에서는 “이날 연인들은 공장에서 찍혀 나온 축하카드를 교환하는데, 과거 영국 아가씨는 이날 교회 마당에 삼씨를 뿌렸다(중략) 밸런타인데이의 기원은 3세기 ‘발렌티누스’라는 이름의 기독교 순교자의 죽음”에서 밸런타인데이가 연유했다고 소개한다.

Saint Valentine baptizing St. Lucilla(Jacopo Bassano, 1500s)

  1980년 7월 24일 『동아일보』에서는 “아리송한 일본인 의식”이란 제목으로 “서양 사람들의 명절인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기사가 보인다. 1981년 2월 14일 『경향신문』에서는 “밸런타인데이에는 미국에서만 모두 8억 장의 카드가 팔려나가 15억 달러의 매상을 보였다.(중략) 밸런타인 카드는 4장 가운데 3장 꼴이 우편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전달되기 때문에 미국 우체국은 별재미를 보지 못 한다”라고 당시 풍경을 기록하고 있다. 이걸 보면 밸런타인데이는 적어도 1974년 이전에 국내에 소개된 듯하다. 미국에서는 연인에게 익명으로 카드를 보내는 명절인데, 일본에서는 기이하게 초콜릿을 주고받는 명절이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1910년대 미국의 밸런타인데이 카드, 여자가 하트와 꽃을 들고 있다.

칠월칠석을 사랑의 축제일로

  1982년 2월 11일 『매일경제』에는 “고려당이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하트형 초코리트(삼천 원)을 개발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이것을 토대로 추정을 해보면 우리나라에는 1982년 이전에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 초콜릿을 주고받는 기념일이 된 것 같다.

  1984년 2월 13일 『동아일보』에는 “밸런타인의 날 백화점마다 초콜릿 판매전 치열”이란 제목의 기사가 보인다. “이날은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해도 흉이 되지 않는다”라고 쓰고 롯데쇼핑의 연간 판매량을 소개한다. “1982년에는 오백만 원, 1983년에는 일천 오백만 원, 올해는 삼천만 원을 목표”로 한다는 기사 내용이다.

  1985년 2월 18일 『동아일보』의 “되살아난 옛 정취 구정”이란 제목의 기사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그토록 요란하고 밸런타인데이까지도 축하하면서 정작 우리 명절은 잊어가고 있지 않았던가”라는 내용의 기사가 있고, 1986년 2월 13일 자 『동아일보』에서는 “밸런타인 상술 이래도 좋은가, 2월 비수기 타개 일본 수법 그대로 본떠”라는 기사를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우리 명절도 아닌데 너무 떠들썩하다라든가 우리의 답교놀이나 칠월칠석을 사랑의 축제일로 하자는 의견 등이 보이기 시작한다. 1989년 8월 11일 『한겨레신문』에는 전주 남노송동에 거주하는 홍인재 씨가 이와 같은 독자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초코레트는 활동의 가솔린

  1929년 7월 1일 『동아일보』 연재소설 “황원행(최독견 작)”에는 “도서관 가는 사람 붙잡고 초코레트크림 사달라고 졸랐다”는 글귀가 있다. 같은 해 5월 11일 『동아일보』 광고에는 명치제과주식회사의 광고가 실려 있다. 호수에 쪽배를 탄 연인이 초콜릿을 먹고 있는 그림에 “둘이서 초코레트만을... 먹고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는데, 초콜릿‘만’을 먹고 있다는 표현이 재미있다.

  같은 해 11월 9일 『동아일보』에는 “초코레트는 활동의 가솔린”이란 광고가 있다. 어린아이가 장난감 차에 가솔린을 주유하는 그림을 붙여 놓고, “삼영밀크초코리트의 영양가는 (계)란의 삼 배, 미반(쌀밥)의 사 배, 우육(소고기)의 칠 배 반입니다”란 문구를 써놓았다. 이 제과회사의 광고를 더 찾아보면, 1922년 11월 6일 『동아일보』에 “독서의 계절 애용의 고조기 미루구 기야라메루”라는 광고가 있어서 무슨 말인가 한참을 보았는데, 밀크캐러멜을 말한다. 1922년 12월 18일 『동아일보』 광고에는 “현(명)한 기호, 어여쁜 아기는 요새는 암만해도 죠고레트가 아니면 먹을 수 없다고 귀찮게 합니다. 무슨 까닭이냐 물어본 즉, 과자로 먹는 것이 아니라, 제1등 자양품이라 하여 먹는 것이 외다”라는 글귀가 있다.

  이 기사를 토대로 추정해 보면 1922년 이전에 초콜릿이 국내에 들어왔음을 추정할 수 있다. 초콜릿은 사치스러운 과자가 아니라 고영양 식품이라고 홍보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1933년 『별건곤』 2월호에는 초콜릿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일본에서 명치유신 이후인 19세기 중반 이후에 외국 문명을 수입하면서 들어왔고, 1917년에 일본에서 제조하기 시작했다.

 

의리 초코

  1936년 제과회사인 모로조프가 영자신문인 『재팬 애드버 타이저』에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초콜릿을’이란 광고를 게재하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후 1950년대 후반 일본 백화점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날’로 밸런타인데이 세일을 시작했는데, 이때는 초콜릿을 팔기 위한 기획이 아니었다. 1960년대 모리나가 제과가 신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선물하자”라는 광고를 시작하고 1965년 이세탄 백화점이 밸런타인데이 매장을 기획하고부터 급속도로 번졌다. 1960년대 일본 내부에서는 밸런타인데이는 정착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있었고 2월에 기획판매를 하지만 오히려 백화점이 판매량이 감소하기도 했다.

  초콜릿의 소비량은 1970년대부터 급속히 증가하는데 구매자의 80%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10대였다가 1970년대 후반부터는 직장여성이 더 많아지고 1980년대에는 연인관계가 아닌 직장 상사나 동료에게 주는 ‘의리 초코’가 등장한다. 받은 초콜릿의 수와 품질이 남자의 인기를 나타낸다고 느끼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를 평가하는 행사가 되었다. 이렇게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하는 연령대가 높아지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사탕 선물하는 날

  3월 14일 화이트데이는 일본에서 만든 기념일이다. 일본 전국사탕과자공업협동조합이 1978년 나고야에서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 받은 남자가 답례의 의미로 3월 14일 ‘사탕을 선물하는 날’을 만들기로 합의를 한다. 이때 2년간 준비기간을 거쳐서 1980년 3월 14일 화이트데이가 시작된다. 일 년에 하루쯤 이런 날이 있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초콜릿보다는 남과 다른 나만의 선물을 고민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월간 김창주, 2013]

728x90
반응형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술작품 위작 논란  (0) 2021.12.06
크리스마스 선물  (0) 2021.12.02
지와 아지노모도  (0) 2021.11.03
햄릿과 미래사회  (0) 2021.10.09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0) 2021.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