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6. 10:39ㆍ문화
문: 미술작품에 대한 위작 논란이 있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면 천경자 화백, 이우환 화백에 대한 기사가 있다.
답: 한국화의 채색화 분야에서 독자적 화풍을 이룬 여류화가이고, 꽃과 여인의 화가라고 백과사전에 기록되어 있는 천경자 화백에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문: 꽃과 여인의 화가다, 천경자 화백은 어떤 분이었나?
답: 천경자 화백은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셨고, 2015년 미국 뉴욕에서 작고하셨습니다. 그림뿐만 아니라 글도 잘 쓰셔서 여러 편의 수필집을 남기기도 하셨는데, 박경리 작가가 천경자 화백에 대한 시를 남기셨어요.
천경자를 노래함
박경리
화가 천경자는
가까이 갈 수도 없고
멀리 갈 수도 없고
매일 만나다시피 했던 명동 시절이나
이십 년 넘게
만나지 못하는 지금이나
거리는 멀어지지도
가까와지지도 않았다.
대담한 의상 걸친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허기도 탐욕도 아닌 원색을 느낀다.
어딘지 나른해 뵈지만
분명하지 않을 때는 없었고
그의 언어를 시적이라 한다면
속된 표현 아찔하게 감각적이다.
마음만큼 행동하는 그는
들쑥날쑥
매끄러운 사람들 속에서
세월의 찬바람을 더욱 매웠을 것이다.
꿈은 화폭에 있고
시름은 담배에 있고
용기 있는 자유주의자
정직한 생애
그러나
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
답: 두 분이 오랜 친구였다고 하는데요. 우정, 그리움, 예술혼, 또 어떤 성품 인지도 알 수가 있지요. 시인 고은은 “천경자는 누구인가. 그는 그것밖에 어떤 것도 될 수 없는 천형(天形)의 예술가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문: 천형의 예술가 천경자 화백의 작품 위작 사건은 무엇인가?
답: 1991년으로 가야 합니다. 당시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움직이는 미술관 사업을 하면서, 원작을 복제해서 판매하는 사업을 해요. 당시에 복제품 소장 운동이 있었어요. 지금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고호의 작품 같은 합법적인 복제품을 살 수가 있죠.
문: 그렇죠. 진품은 비싸서 못 사니까. 그런 기념품 같은 것을 팔고 있죠. 그렇데 무엇이 문제가 된 것이죠?
답: 문제는 천경자 화백의 작품을 복제했다고 했는데, 복제한 진본 자체가 내 작품이 아니다고 문제제기를 하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문: 그러니까 국립현대미술관이 천경자 화백의 작품을 복제해 판매하는 사업을 했는데, 진본 자체가 가짜였다는 이야기군요.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답: 당시에 진위를 가리기 위해 X-ray, 적외선, 자외선 촬영 등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한국화랑협회 미술품감정위원회는 1991년 4월 11일 진품이라고 판정을 해요. 국립현대미술관은 "앞으로 위작임을 확증할 수 있는 증거가 밝혀지면 받아들이겠다."는 단서를 붙여요.
문: 일단은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에는 진품이다. 위작이 아니다는 이야기인데, 천경자 화백이 자기 작품도 못 알아봤을까요?
답: 이렇게 판정이 나니까, 당시에 세간에서는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화가”라는 소문에 휩싸이게 되는데, 화가 나죠, 1991년 4월 8일 자 신문을 보면, 가짜가 진짜 뺨치는 화단 풍토에 환멸을 느끼고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절필을 선언하고, 천경자 화백은 뉴욕으로 떠납니다.
문: 그럼 이후에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나요.
답: 이후 회고전을 가진 적은 있지만, 신작을 더 이상 보기는 어려워졌고, 당시 기사를 보면, 붓을 들기가 두렵다,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가짜를 진품으로 오도하는 오늘의 화단 풍토에선 창작행위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을 남깁니다.
문: 국립현대미술관이면 국내 최고의 미술기관인데, 누구의 말이 맞을까요?
답: 기사를 더 읽어볼게요. 당시 천경자 화백이 68세였는데, “서글프게 내 기억력을 의심하며 가짜 그림을 진품으로 몰아가고 있다. 미인도의 머릿결을 새까맣게 개칠하듯 그리지 않는다. 머리 위의 꽃이나 어깨 위의 나비 모양도 내 것과는 다르다”는 기사가 이어집니다.
문: 화가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갔군요.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더욱 궁금해지네요.
답: 그런데 1999년 7월 8일 신문을 보면요. 아는 사람의 부탁을 받고 천경자 미인도 내가 그렸다는 서화 위조범의 자백이 파문을 일으킵니다.
문: 아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궁금하지만, 일단 드디어 진실이 밝혀지나요?
답: 반대로 1991년 진품이란 감정 결과를 낸 한국화랑협회에서는 이번에도 진품이 틀림없다고 확신을 하면서, 위조범이 천경자 화백의 그림을 복제할 수 있으면, 천재라고 하면서 미인도를 다시 그리게 하면 위작 의문이 풀릴 것이라고 자신을 합니다. 흉내 낼 수 없다는 말이죠.
문: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네요.
답: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작품 입수 시점과 위조했다고 진술한 시점이 일치하지 않고, 위조자가 수묵화 전문이어서, 천경자 화백의 채색화를 위조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또 검찰에서는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는 입장을 표명합니다.
문: 2016년에도 다시 진위를 가리는 불이 재점화되었죠?
답: 그렇습니다. 2016년 4월에 천경자 화백의 가족이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비롯해서 6명을 명예훼손과 저작권법 위반 협의로 고소를 하면서 검찰에서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했는데, 국내 처음으로 미술작품 감정에 DNA 분석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문: DNA라 하면 천경자 화백의 DNA가 작품에 있나 없나로 진위를 가린다는 말인데, 이게 어떻게 가능하죠?
답: 천경자 화백은 아교에 석채(돌가루), 분채(가루 물감) 등을 섞어서 만든 재료를 썼는데 검찰은 석채와 분채를 손으로 섞는 과정에서 천 화백의 DNA가 일부 혼합됐고, 그림에 미세하게나마 남아있을 가능성, 또 지문이 남아 있을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 잘 밝혀지면 좋겠는데, 실제로 가능할까요?
답: 조사를 지켜봐야겠는데요. 2009년에 독일 무명 화가의 작품으로 알려졌던 ‘「아름다운 공주」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지문이 발견돼 화제가 된 해외사례도 있는데, 이 그림은 미술계의 다양한 추가 검증을 거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문: 그런데 안 나올 수도 있고, 이것만으로 충분하 조사가 될까요?
답: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는 엑스선, 적외선 등 특정 파장의 빛을 이용해 위작 여부를 가리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고, 엑스선으로 물감이나 도료, 화폭의 성분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적외선으로 그림을 촬영하면 스케치 흔적 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문: 그렇군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이번에는 진실의 여신이 입을 열까요?
답: 처음 위작 논란이 있고 많이 시간이 흘렸잖아요. 어떤 결과가 나와도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과 믿을 것이란 생각을 해봤어요. 법적으로 가릴 수는 있겠지만, 여전히 진품이란 사람과 위작이라고 보는 사람이 공존할 것 같은데, 요즘 같이 첨단기술의 발달로 진품과 복제품을 가릴 수 없는 시대에는 이런 논란은 더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간 김창주,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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