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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크리스마스 선물

by 월간 김창주 2021.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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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크리스마스 하면 뭐가 생각나세요?

답: 화이트 크리스마스?

 

문: 예수님의 생일, 또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주는 날?

답: 그렇죠, 어른들은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주는 날이고, 어린이들은 받는 날인데요. 크리스마스에는 두 가지 의미가 공존하고 있어요. 예수님의 생일이라는 종교적인 의미, 그리고 산타클로스로 대표되는 상업적인 이미지가 있죠.

 

문: 음 그렇죠,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도 크리스마스에는 산타가 되어야 하죠?

답: 제가 어렸을 때 곰곰이 생각해보면 성당에서 산타클로스를 본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요즘 산타는 북극이 아니라, 백화점과 완구점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상업적인 이미지의 크리스마스가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문: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어린이들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얼마나 기다리는데, 동심 파괴 발언이에요. 산타클로스는 어디에 살고 계신가요?

답: 산타클로스는 영화나 만화에서 보는 것과 같이 눈이 쌓인 산골마을에서 순록과 함께 살 것 같지만, 사실은 올리브가 우거진 지중해 섬에서 살았어요. 터키 해안에 있는 제밀러라는 섬인데요. 섬의 길이는 1km도 안되지만 교회가 적어도 다섯 군데나 있던 섬입니다.

 

문: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게 따뜻한 동네에서 살았다는 말이네요.

답: 네. 이 섬을 성 니콜라스 섬이라고도 하는데, 성 니콜라스는 기독교 성인이에요. 아버지에게서 많은 유산을 물려받는데, 이 돈을 익명으로 가난한 사람, 특히 어린이에게 나눠주기 시작합니다. 이 성 니콜라스가 오늘날의 산타클로스로 진화했다고 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성 니콜라스와 관련해서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당시에 어떤 몰락한 귀족한테 세 딸이 있었는데, 지참금이 없어서 결혼을 할 수 없었어요. 이걸 알고 성 니콜라스가 창문으로 금 한 자루를 던져 넣어요. 다음 날은 둘째 딸을 위해서 금 한 자루를 창문으로 넣고, 셋째 날에는 창문이 닫혀 있었답니다.

 

문: 주려면 한꺼번에 세 자루를 팍 던져주지, 왜 하나씩 줬을까요?

답: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첫째 언니가 금덩이 세 자루를 다 가지고 시집갈까 봐 하나씩 던졌을 까요? 차례차례 시집가라고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문: 그런데 셋째 날 창문이 닫혀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나요?

답: 굴뚝으로 금 자루를 던져 넣어요. 이후에 마을 사람들이 굴뚝으로 금덩이가 떨어지지 않을까 해서 벽난로 옆에 양말을 걸어두었다고 하는데, 산타클로스가 금덩이를 던져주는 것을 보면 인간의 현세적인 욕망을 상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 당장 필요한 것을 준다는 점에서 지금의 산타클로스와 다른 바가 없네요?

답: 이런 특징 때문에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종교적인 의미와 함께 선물을 준비하고 주는 상업적 이미지가 공존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 앞에서 산타클로스는 눈이나 순록 하고 상관없다고 하셨는데, 이런 풍경이 크리스마스의 상업성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답: 크리스마스 하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상상하지만, 예수님이 탄생한 예루살렘의 사막 지역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미지입니다. 이런 이미지가 형성된 것은 19세기 미국 뉴욕의 겨울 날씨인데요. 바로 이 영향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진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축제(부산광역시, 2020)

문: 그렇다면 크리스마스가 언제 우리나라에 전해지나요?

답: 1899년 「대한크리스도인회보」를 보면 “서울 성 안과 성 밖에 예수교 회당과 천주교 회당에 등불이 휘황하고 여러 천만 사람이 기쁘게 지나가니 구세주 탄일이 대한국에도 큰 성일이 되었더라”는 기사를 볼 수 있어요.

 

문: 19세기 말에 이미 크리스마스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 같네요?

답: 1920년대까지 교회 행사였는데, 1930년대에는 크리스마스가 연말의 유흥문화로 자리 잡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서울시내에는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소비문화가 전파되는데, 크리스마스가 상업 문화와 함께 유행해요. 이때부터 모든 사람이 즐기는 날로 인식이 바뀌게 됩니다.

 

문: 크리스마스가 상업화 대중화되었다는 말씀인데, 그 풍경이 궁금하다.

답: 1933년 윤치호의 일기를 보면 “크리스마스가 서울 여성층에게 또 하나의 석가탄신일이 되었다. 여성들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여성들이 관심을 갖는 건 크리스마스 쇼핑을 위한 또 하나의 핑곗거리이자 기회라는 사실이다”

 

문: 여자들만 쇼핑을 하나, 남자들은 더하지요?

답: 맞아요. 1936년에는 기사 제목이 “토산 크리스마스”에요. 토산품 할 때 토산인데, 국산 크리스마스라는 뜻인데, 기사를 보면 종교와 상관없이 도시 근로자들이 연말에 모여 흥청망청 술을 먹는 장면을 크리스마스 풍경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문: 일제강점기인데, 아무래도 잘 사는 사람들이나 그랬을 것 같다.

답: 그렇죠. 모던걸과 모던보이가 누리던 일종의 고급문화였는데요.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급격하게 사라지는데, 일제가 유흥적 크리스마스 행사를 금지합니다. 이후 상업적인 크리스마스는 해방 후 미군정 시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문: 아까 크리스마스에 쇼핑을 한다고 하던데 당시에 뭘 샀나요?

답: 20세기 초에 교회에서 받던 크리스마스 상자가 있었어요. 이건 매년 미국에서 우리나라로 전송되어 온 것인데, 어린이들에게 주었는데, 상자 안에는 학용품, 과자, 사탕, 건과 등이 들어 있었고, 이때부터 크리스마스는 교회가 신자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날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문: 새로운 소비문화가 시작되었다는 1930년대는 어땠나?

답: 신문지상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어떤 것이 좋은지 추천하는 구매 가이드를 볼 수 있는데, 연애하는 남녀 간의 선물을 추천해요. 1원에서 10원까지 100여 종 선물 목록을 나오는데요. 1, 2원 정도 초코레트(초콜릿), 파우더, 페퍼 나이프, 푸로치(브로치) 같은 것을 추천하고 있어요.

 

문: 당시 1원이면 지금 돈으로 얼마나 되나?

답: 1933년에 금 한 돈이 7원이에요. 지금 금 시세로 하면 1원이 2만 6천 원 정도인데요. 3, 4원 핸드백, 향수, 지갑, 행카칩(handkerchief), 추럼푸(trump) 등은 남부럽지 않은 선물이다라고 소개가 재미있네요. 5원 정도는 화장품 한 벌, 타이즈, 모자, 목도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이때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문: 그나저나 선물 준비했어요? 뭐가 좋을까요?

답: 저는 어렸을 때 과자가 종류별로 들어있는 종합선물 세트 하나면 충분했는데, 그렇죠? 저는 선물도 선물이지만, 괜히 밤에 설레던 기억이 나네요.

 

문: 맞아요. 크리스마스 하면 10대 때 밤을 새우던 올 나이트(all night)가 생각나요?

답: 한 번쯤 경험이 있을 것 같은데요. 1945년 10월 미군정에 의해 크리스마스가 공휴일로 제정되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고요. 한국전쟁 이후 1980년까지 있던 야간 통행금지가 크리스마스이브와 12월 31일에만 예외였는데. 이날은 해방감을 누리는 날이었고, 올 나이트 문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월간 김창주, 2015]

1950년 중공군이 한국전쟁 참전 기간 중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유엔군에게 보낸 심리전용 전단(전쟁기념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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