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과 미래사회

2021. 10. 9. 23:04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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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은 다중인격

  데이비드 볼은 『통쾌한 희곡의 분석』을 읽기 전에 『햄릿』을 읽으라고 권합니다. 일독했습니다. 읽다 든 생각은 햄릿이 다중인격자가 아닐까? 여기서 다중인격은 햄릿, 오필리아, 숙부 등등 죽어나가는 사람이 모두 햄릿 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을 의심하게 된 구절이 아무런 개연성 없이 뚝 튀어나온 햄릿의 대사 때문입니다. 5막 2장입니다.

햄릿 : 이래서 꼼짝없이 흉계에 걸려들고 만 셈인데, 채 서막도 되기 전에 머릿속에서 연극이 전개되었네. 그래서 나는 우선 칙서를 하나 위조했지, 흡사한 필적으로. 한때는 나도 이 나라 정객들처럼 펜글씨를 경멸하여 습득한 솜씨를 일부러 잊으려고 애도 썼네만, 이번엔 그 펜글씨가 퍽 도움이 되었네. 내가 위조한 칙서의 내용을 알고 싶은가? 
햄릿 : 아, 그것 역시 천우신조, 마침 선왕의 옥새를 주머니 속에 가지고 있었지.

  갑자기 햄릿이 필적을 위조하는 능력이 생기고, 선왕의 옥새를 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그래서 햄릿과 숙부가 동일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지요. 5막 1장에서는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햄릿 : 나는 오필리어를 사랑했다. 4만 명의 오빠의 애정을 전부 합쳐 봐도 내 사랑에는 감히 따르지 못한다…….

  왜 하필이면 4만 명일까? 햄릿의 머릿속에는 4만 명의 인격이 들어 있나 봅니다.

오필리아(John Everett Millais, 1851)

  『통쾌한 희곡의 분석』 157쪽에는 이런 소제목이 있습니다. “햄릿은 왜 덴마크 왕자인가” 이 부분은 연극의 배경을 설명하는 장입니다. 여기서 햄릿이 덴마크 특정 왕조를 대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선왕조 500년도 이런 식으로 상징적인 왕자 하나를 가공해서 희곡을 하나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면과 나팔수

  『햄릿』을 읽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일수록 말이 많고, 중요한 말을 합니다. 고대 벽화에서 중요한 사물은 크게 그려집니다.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은 시종보다 크게 그려지고, 중앙에 위치해 있습니다. 듣기와 읽기가 귀족만큼 원활하지 않은 피지배층을 위해 이들은 몇 가지 상징과 거대한 신전과 건축물, 조각 작품을 남겼습니다. 현대인의 술자리에서 말이 많은 사람은 그날 술값을 내는 사람이거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말이 많다는 것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입니다. 설득한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를 누군가에게 관철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행위입니다. 술자리에서 물주와 권력자가 따로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 물주를 후원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때는 술값을 내는 사람은 조용합니다.

  권력자도 조용한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자리한 사람이 권력자의 말을 대신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나팔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피리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햄릿 : 그렇다면 자넨 날 뭘로 알고 있는가? 나 같은 건 마음대로 피리 다루듯 놀려 볼 수 있단 말이지. 구멍도 잘 알아서 마음속의 비밀을 빼내고, 저음에서 고음까지 내 심금을 울려놓고-이 작은 악기에는 절묘한 음악이 무수히 들어 있어. 그러면서 이 피리를 다룰 줄 모른다고? 제기랄! 그래. 날 피리보다 놀리기 쉬운 걸로 알았는가? 날 무슨 악기 취급해도 상관없지만 소리 나게 하지는 못할걸, 화나게는 할 수 있어요.(『햄릿』, 3막 2장)

  이 나팔수는 상황에 따라서 저격수가 되기도 하고, 완장을 차기도 합니다. 누구도 말하지 않을 때 이들은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들이 말하는 바의 근원은 “나는 잘났습니다. 저를 인정해주십시오”입니다. 셰익스피어는 해면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햄릿 : 암, 물론이지. 왕의 총애와 은상과 권세를 빨아들이는 해면 같은 놈이지. 하긴 왕으로서는 그런 놈들이 가장 필요하거든. 왕은 그런 족속들을 사과알처럼 입 속에다 넣어 두거든. 처음엔 넣어만 두었다가 마침내 삼켜 버리지. 일단 자네들에게 빨게 해 놨다가 필요할 때에는 꾹 짜기만 하면 되거든. 그러면 해면이라 자네들은 다시 말라 버리지. (『햄릿』, 4막 2장)

  권력자가 말 많은 경지를 넘어서서, 나팔수가 생기면 더 많은 권력이 생깁니다. 말하지 않는 동안 다른 사람의 이야기(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최고 정점에 도달하면 그는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세의 군주가 태양이라는 상징을 자신과 동일시했듯이, 말없이 내려 비추기만 하면 됩니다. 요즘말로 하면 유비쿼터스 Ubiquitous입니다. 사실 요즘 말은 아닙니다. 이 말은 중세 신학에서 나왔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육면이 막힌 감옥에 갇힌 아름다운 여인을 겁탈하기 위해 비로 변하여 그녀를 촉촉이 적십니다. 권력이란 이런 것입니다. 태양 같은 중세의 왕은 백성에게 빛을 주는 존재였습니다. 백성들은 그렇게 믿었습니다. 이것이 권력입니다. 유비쿼터스. 21세기에는 이 용어를 IT산업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산기기가 없이 언제든지 정보통신망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합니다.

  권력의 초기 단계에서 사람은 말을 많이 합니다. 말 많은 단계를 넘지 못하면 그는 나팔수로 남습니다. 그다음은 무언가를 크게 만들거나 상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를 넘지 못하면 그는 역사의 사기꾼이 됩니다. 마지막은 권력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 단계입니다. 사람들은 인터넷에 자신의 속내와 일상사를 스스로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일기장 검사를 받듯 날마다 사상을 자발적으로 검증받고 끼리끼리 집단을 만듭니다. SNS에서는 누구나 개인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 자신의 정보를 공개하고 숨겨야 할지 또는 숨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세상입니다. 이런 환경의 미래사회에서는 권력은 실체를 보이지 않고, 대중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월간 김창주,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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