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독도의 날

2021. 12. 9. 23:12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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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가짜 독도의 날도 있나요?

답: 예상하셨겠지만, 일본 사람들이 정한 다케시마의 날입니다. 일본 시마네현에서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공시하는데, 이걸 기념하는 것입니다.

 

문: 그러니까 공시 내용에 독도가 자기네 땅이다 뭐 그런 내용이 담겨 있나 보네요.

답: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고 명명하고, 시마네현 오키도사(隱岐島司)의 관할로 정한다는 내용이 담긴 어처구니가 없는 문서입니다.

 

문: 그러면 진짜 독도의 날은 언제인가요?

답: 우리나라에서는 10월 25일입니다.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한 날입니다.

독도 전경(근현사 디지털 아카이브, 2018)

문: 그럼 오늘은 독도에 대한 이야기를 가져오셨겠군요.

답: 독도가 우리 땅이란 건 이미 많은 증거가 나왔는데요. 퀴즈를 한 번 내볼까요? 이것은 무엇일까요? 18세기 후반 기록입니다. 바닷속에 큰 짐승이 있는데, 소 모양에다 눈동자는 붉고 뿔은 없다. 해안에 떼를 지어 누워 있다가 혼가 가는 사람을 보면 해코지하지만 많은 사람을 만나면 달아나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이름을 ○○라 한다. 상고하건대, 그 짐승의 가죽은 물에 젖지 않으므로, 안장, 풀무, 가죽신 등을 만들 수 있다.

 

문: 독도에 살았다는 물개, 해구라고 하나요? 맞나요?

답: 기록을 찾아보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지라고 했어요. 또는 可之魚, 강치라고 불리었던 바다사자인데요. 울릉도 사투리로는 가제, 가재라고 합니다. 실제로 울릉도에 가지도구미, 독도 큰가제바위, 작은가제바위라는 지명이 있어서, 가지 또는 가제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해요.

 

문: 독도에 살던 바다사자의 우리 이름은 가지 또는 가제라는 말씀이군요.

답: 그렇습니다. 가지는 수컷의 크기가 200~250cm, 무게가 200~490kg 정도 되었다고 해요. 최근에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문헌 증거가 나오면서, 일본에서는 독도 영유권 대신 어업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세우기도 하는데, 이 가지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문: 그런데 얼마나 잡았길래 멸종이 되어버렸나요?

답: 1903년 일본인이 독도에서 가지를 본격적으로 포획했는데, 일본 해군이 독도를 강점하려던 목적이 망루를 설치하는 것이었어요. 울릉도와 독도에서 강치 썩는 악취가 너무 심해서 설치가 힘들 정도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정말 악랄하죠. 1903년 나카이 요자부로에 의해서 시험적으로 가지 포획이 시작되는데요. 러일전쟁이 터지자 가지 가죽과 기름의 시세가 올라가니까, 일본의 어부들이 몰려와 싹쓸이 시작해요. 나카이는 강치 잡이 독점을 위해 일본 정부를 청원을 넣었는데, 이에 일본은 1905년 독도를 일본 영토에 편입하고, 시마네현에 귀속시킵니다. 이후 일본 나카이 등 4명에게 가지 잡이에 대한 독점적인 허가를 내주는데요. 다케시마어렵합자회사를 세우고, 이때부터 매년 독도로 출어를 하기 시작합니다.

 

문: 도대체 얼마나 잡았답니까?

답: 통계가 있어요. 1905년에 1,003마리를 시작해서, 매년 천 여 마리 이상을 포획하는데, 가장 많은 1908년에는 1,680마리를 남획한 이후 개체 수가 급감하기 시작합니다. 1928년에는 100여 마리를 포획하고 이 어업회사가 활동을 중지해요. 사업이 안되니까 빚을 지게 돼요.

 

문: 무자비하게 포획을 하더니, 망한 거군요.

답: 이후에 어업권이 채권자들에게 넘어가는데, 얼마나 포획이 심했던지, 이 사람들이 강치의 번식을 위해 6년간 포획을 중지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어린 강치를 서커스에 팔기 시작해요. 1933년 8마리, 1935년 49마리, 1942년에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문: 안타깝네요. 그런데 앞에서 일본이 독도 어업권을 주장하는 새로운 전략이 가지와 관련이 있나요?

답: 그렇습니다.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것은 이미 여러 증거가 나오면서 일본에서 새로운 논조가 나왔는데요. 독도 영유권을 포기하는 대신 어업권을 인정하라는 것인데, 시마네현 어민이 독도에서 과거 활발하게 어업을 했기 때문에 어업권을 주어야 한다고 말해요.

 

문: 아하~ 그러니까 시마네현 어민들이 어업을 하던 곳이니까 고기는 잡게 해 달라.

답: 평화를 명분으로 이런 논조를 보이고 있는데, 당연히 사실이 아닙니다. 앞에서처럼 단 4명에게만 가지 잡이 독점권을 주었을 뿐이고, 전복이나 미역을 채취하는 해변 어업은 허가했지만, 고기를 잡는 연안어업은 일본 정부에서 당시에도 금지했고, 금어 지역이었습니다.

 

문: 사실 그 많던 가지를 멸종시킨 사람들이 어업권을 달라는 것도 말이 안 되죠.

답: 그렇죠. 1911년에 해변 어업이 허가를 받는데, 잠수기선과 잠수부를 동원해요. 단, 두 명이서 하루에 600관(2.2톤)의 전복을 채취해요. 싹쓸이를 한 셈인데요. 이렇게 자연을 훼손해 놓고, 더 이상 가치가 없으니까, 1941년 이후 일본인들은 스스로 독도 어업을 포기합니다.

 

문: 그래 놓고는 이제 와서 자기네 땅이네, 어업권이 있네 없네 하는군요.

답: 일본 내에서도 의식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아요. 일본 잡지 세계』의 편집장인 오카모토 아쓰시는 “독도는 일본의 조선 침략의 시작인 섬이다. 이 섬의 영유에 고집하는 것은 일본이 조선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라고 말을 합니다.

 

문: 한국과 일본의 평화를 위해서 깊이 새겨야 될 말이네요.

답: 바다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이걸 다시 말해보면 독도를 잃으면 평화를 잃는다는 말이 될 것 같아요. 또 한 번 변주하면 독도를 지키는 것은 평화를 지키는 것이 돼요. 다음에는 독도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던 분들의 이야기를 준비해 오겠습니다. [월간 김창주, 2016]

독도경비대(근현대사 디지털 아카이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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