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과 1인 미디어

2021. 12. 19. 15:07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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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누구나 1인 미디어, 유튜버를 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궁금한 사항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동영상으로 거의 다 나오는 것 같아요. 저는 최근에 손목시계 줄을 바꿔 끼워야 해서, 혹시나 해서 검색을 하니까, 관련 영상이 있어서 보고 했습니다. 1인 미디어를 누가 가장 먼저 시작했을까 생각하다가 떠오른 분이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 작가였습니다. 

 

문: 먼저, 1인 미디어와 유튜버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인가?

답: 사전을 펼쳐보면, 1인 미디어는 네티즌이 직접 꾸미고 참여하여 자신만의 트렌드를 추구할 수 있는 서비스들을 일컫는 말로 블로그나 미니홈피가 여기에 속합니다. 이것을 보면 거의 대부분 현대인은 1인 미디어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SNS에 글, 사진, 영상 등을 올릴 수 있죠. 그런데 유튜브가 활성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앞에 것들은 이렇게 자신의 콘텐츠를 인터넷에 올린 이용자들이 돈을 벌 수 가 없었는데, 수익모델이 만들어지면서 더욱 1인 미디어가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문: 유튜버는 무엇인가?

답: 유튜버 (Youtuber)는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에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으로 동영상을 올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유튜브(Youtube)에 자신이 제작한 동영상을 올리고 광고 수익을 얻는 직업, 넓게는 인터넷 방송진행자를 일컫는 말로도 사용됩니다. 장난감을 갖고 노는 동영상, 화장품 사용 후기, 게임 플레이, 농튜버라고 해서 농사일을 올리기도 합니다. 인기 유튜버는 한 달에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을 벌기도 합니다. 2019년쯤 국내 한 유튜버가 케이블방송을 인수한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2018년에 유튜버는 초등학생 장래희망직업 순위 5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문: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 작가가 1인 미디어의 시초라고 했는데, 왜 그런가?

답: 1995년으로 기억하는데요. 제가 백남준 작가를 직접 만나기도 했고, 작업도 같이 했습니다. 제1회 광주비엔날레 때였다. 저는 그때 그분이 백남준 작가인지도 몰랐어요. 작은 메모지를 주면서 여기에다 소원을 쓰라고 했는데, 쓴 메모를 벽에 죽 붙여 놓았어요. 나중에 이것을 컴퓨터 통신망에 성황당 나무를 만들어서 이 소원들을 다 올려놓는다고 했는데요.. 대수롭지 않게 적어서 드렸어요. 뭘 썼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네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게 1인 미디어의 시작을 예고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붙여 논 메모지 하나하나를 TV로 또는 모니터로 생각해 볼 수 있고, 사람들이 저마다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고. 성황당 나무는 일종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플랫폼이 되는 것이죠. 지금의 유튜브처럼요. 생각난 김에 백남준 아트센터에 다녀왔는데요.

 

문: 백남준 작가는 어떤 작업을 했나요? 

답: 백남준아트센터는 경기도 용인시에 있어요. 이번에 작품을 보니까, 그때는 몰랐는데, 백남준 작가가 미디어의 특성을 정말 잘 이해하고 미디어의 미래를 잘 예측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시 안내 글을 읽어보면, 이런 대목이 있어요.

  “백남준은 1980년대부터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필두로 위성 기술을 이용한 텔레비전 생방송을 통해 전위 예술과 대중문화의 벽을 허무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미디어 아트의 개척자로서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작업을 했던 예술가이다. 예술가의 역할이 미래에 대한 사유에 있다고 보았으며 예술을 통해 전 지구적 소통과 만남을 추구했던 백남준은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엔지니어인 새로운 예술가 종족의 선구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국산업은행 본점 로비에 설치되어 있는 백남준의 작품(근현대사 디지털아카이브)

 

문: 어떤 작품이 있던가?

답: 초기 작품을 보면 미디어의 영향 아래에 놓인 대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 전시관에 들어가면 1965년작 「닉슨 TV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닉슨 대통령이 연설하는 장면이 화면으로 나오고 TV 앞에 코일이 감겨 있는데, 스위치를 누룰 때마다 닉슨 대통령의 얼굴이 일그러져요. 닉슨은 1960년에 케네디 대통령 후보와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미디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낙선했는데, 백남준 작가는 이런 미디어 영향력에 주목해 작품을 제작합니다.

  전시관을 나오면 마지막에 1975년작 TV 물고기 작품이 놓여있는데요. 네모난 24개 어항에 텔레비전이 각각 켜져 있고, 어항에 물고기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물고기가 불쌍하다는 말을 했어요. 계속 그 반복된 화면을 보아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큐레이터가 큰 물고기 두 마리가 2008년 개관 당시부터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데, 수질 관리도 잘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저는 그 수족관을 벗어날 수 없는 물고기가 수많은 미디어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대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이런 일방향의 미디어 영향과 더불어서 개인이 1인 미디어를 할 수 있고, 메시지와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고, 수익까지 창출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문: 1인 미디어가 인기 직업으로 자리 잡을 정도 호응도 받지만, 문제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답: 미디어가 처음 시작할 때는 믿을만한 콘텐츠인지 부정적인 여론이 있었습니다. 신문도 처음에는 그랬어요. 이 기사를 어떻게 믿을 수 있냐? 당연한 의문과 불신이 있었고, 방송도 인터넷도 그랬습니다. 2000년 초만 해도 인터넷에 떠다니는 전문지식들이 엉터리라는 의견들이 꽤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백과가 인정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료가 계속해서 갱신되기 때문인데요. 현재 1인 미디어 역시 가짜 뉴스, 음모론의 온상지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 매체 자체가 일방적이지 않고, 덧 글을 통해 아주 비 학문적인 말로 속 시원하게 비평을 해줄 수 있지요. 청취자들이 더 빨리 알아채고 안기도 합니다. 과거의 거대 언론 권력에 기껏해야 전화해서 항의하는 정도였지만, 청취자들도 여론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 교수는 “지식권력이 이제 더 이상 대학에 있지 않다.”라고 말하는데요.

  그 예로 두 가지 사건을 말해요. 이미 국민들이 경험한 것인데요. 하나는 2000년에 있었던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입니다. 유수의 저명한 국내 학자가 참여했고, 세계적인 학자들이 검증하고 인정한 논문이었지만, 이것이 허위라는 의문을 제기한 것은 인터넷 취미 사이트였고, 포토샵을 이용해 사진이 조작되었다는 의문을 처음 제기합니다. 학계가 아니라 취미 모임이었다는데 방점이 하나 있고요. 학문이 의심에서 시작하는데, 학문이 권력이 되면 종교화되는 현상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학문을 의심하지 않고 믿어 버리는 현상.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려준 사건이었죠.

  다른 하나는 2008년 있었던 미네르바 사건입니다. 당시에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한국에도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고 예측을 했고, 처음에는 전문가들도 별로 대수롭게 생각지 않다가, 점점 미네르바의 예언을 더 믿기 시작했죠.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상에 여러 예측을 했는데, 미네르바의 예언이 맞을 때마다 사람들이 열광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전문대 출신의 무직자였습니다. 대학 지식권력의 독점 붕괴에 대한 징후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1인 미디어가 그 역할을 계속해서 해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편으로 진실이 밝혀져도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찾아서 믿는 현상은 여전할 것 같아요. 또한 1인 미디어로 소수가 공유하는 문화가 활성화되고 공존하는 사회가 될 것으로 생각이 되고. 마지막으로 인문학을 영상과 방송이란 방법으로 실현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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