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考愛

레베카가 사랑한 사람은 누구인가?

by 월간 김창주 2022.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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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연애편지

  레베카는 영화로는 히치콕 감독의 1940년 작과 벤 휘틀리 감독의 2020년 작이 있다. 뮤지컬로도 국내에서 제작되었다. 레베카의 원작자는 대프니 듀 모리에(1907~1989, 영국 소설가)다. 레베카는 질투에 대한 이야기다. 여성에 대한 집착과 질투에 대해 혹자는 괴기스러울 정도로 표현되어 있다고 하는데, 소설이 583쪽에 달하니 그 분량면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벤 휘틀리 감독의 영화를 먼저 보아서 그런지 소설은 분량 때문에 지루한 면도 있어, 몇 차례 쉬엄쉬엄 읽었지만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은 있는 소설이다. 이 질투에 대한 심리 묘사는 대프니의 경험과 동성애에서 나왔다. 대프니는 남편이 전 약혼녀에게서 결혼 전 받은 편지를 발견한다. 대프니에게 남편의 전 약혼녀는 레베카의 성격 중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레베카의 게임

  소설에서 레베카는 당당하고 아름답고 자유로운 여자로 그려진다. 또한 죽어 마땅한 여자로도 묘사된다. 사람들은 레베카를 사랑하고 집착하고 질투한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댄버스 부인은 이것이 모두 레베카의 게임이었다고 말한다.

그저 웃으면서 '난 나 좋을 대로 살 거야. 세상 누구도 날 막을 수는 없어'라고 하셨죠. 어떤 남자든 그분을 한번 보면 미친 듯이 빠져들고 말았어요. (중략) 그분은 깔깔 웃으면서 남자들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제게 다 말해주었지요. 그분께 그건 일종의 게임이었거든요. 게임 말이에요. 그러니 누군들 질투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레베카』, 현대문학, 2013. 372~373쪽

  레베카가 매혹적인 인물이란 것과 남성과의 관계를 게임처럼 즐기는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말이다. 댄버스 부인의 말을 잘 들어보면 레베카의 행동을 추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를 유년 시절부터 돌본 하녀였고, 결혼 후에도 레베카를 따라와 그녀를 돌본 하녀로 누구보다 레베카를 사랑하고 자신이 가장 레베카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진지한 대화와 속내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댄버스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걸 보면 레베카는 남성과 여성,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인물이다.

 

  단, 한 사람 레베카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레베카의 남편 맥심이다.

난 그 여자를 증오했소. 우리 결혼은 처음부터 어릿 광대극이었지. 사악하고 역겹고 썩을 대로 썩은 여자였소. 단 한순간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고 행복하지 않았지. 레베카는 사랑도 품격도, 다정함도 모르는 사람이었소. 정신 상태도 정상이 아니었지. 『레베카』, 현대문학, 2013. 411~412쪽

  맥심은 레베카를 증오하고 있다. 또한 단 한순간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고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레베카의 거래

결혼한 지 닷새째 되는 날 결국 그 여자의 정체를 알았소. (중략) 도저히 입에 담지 못할 만큼 추악한 얘기였소. (중략) 그 여자는 제안하던군. '내가 저택을 관리해주죠. 당신의 그 소중한 맨덜리를 가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만들어주겠어요. (중략) 결혼 한 주 만에 파경을 맞기보다는 내가 자존심이나 개인적 감정 따위의 모든 걸 희생하리라는 걸 알았던 거요. 『레베카』, 현대문학, 2013. 413~414쪽

  레베카는 신혼여행 중 맥심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그녀가 제안한 것은 쇼윈도 부부였다. 남들 앞에서는 행복한 부부처럼 보이며, 대저택인 맨덜리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대신에 자유로운 생활을 원한다. 맥심의 말에 의하면 그 자유는 입에 담지 못할 추악한 이야기였다. 레베카가 결혼 전에 이런 거래를 요구했다면 결혼은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 후 추문에 휩싸이는 것을 두려워했던 귀족 맥심은 레베카의 거래를 받아들인다. 이 지점에서 레베카의 잘못은 맥심과 다른 결혼관이 아니라, 모럴 해저드(정보의 비대칭)를 이용한 거래의 우위에 있었다는 점이다. 레베카 자신이 자유롭게 사는 여자라서 잘못이나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결혼 전에 이것을 밝히지 않고 결혼 후 맥심의 약점을 간파하고 거래를 성사시켰다는 점에 잘못이 있다. 레베카는 스스로 자유로운 여자라고 밝혔으므로 맥심을 기만하거나 속이지 않았다. 

그 여자는 새벽같이 차를 몰고 런던으로 가 강변의 아파트로 숨어들었소, 시궁창으로 숨어드는 동물처럼. 그렇게 이루 형언 못할 닷새를 보내고 난 후 주말에 다시 돌아오는 식이었소. 난 거래에 충실했소. (중략) 우리는 그렇게 살았소. (중략) 그 여자가 런던에서 어떤 짓을 하든 나하고는 상관없었소. 『레베카』, 현대문학, 2013. 416~418쪽

  그 자유란 주중 5일은 런던 강변의 아파트에 살면서, 레베카가 어떤 짓을 해도 상관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거래는 몇 년 후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프랭크를 집적거리기 시작했소. 그 선량하고 수줍은 사람을 말이오. (중략) 난 레베카에게 화를 냈소. 그 여자는 발끈해서 온갖 상소리를 섞어가며 저주의 말을 퍼붓더군 (중략) 배를 타고 돌아온 자일스는 지나치게 쾌활했고 레베카는 눈빛이 묘했지. 레베카가 자일스에게 집적대기 시작했던 거요. (중략) 프랭크나 자일스까지 집적거렸으니 영지의 일꾼이나 케리스의 주민 누구나 상대가 될 수 있지 않겠소 (중략)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추문이 새어 나가기 시작한 거요. 『레베카』, 현대문학, 2013. 418~420쪽

 

맥심의 분노

  맥심은 레베카가 자신의 친구와 매형에게도 집적거리기 시작하자, 더 이상 참지 못한다. 

그 여자한테는 사촌이 있었소. (중략) 잭 파벨이라는 이름이었소. (중략) 그 여자는 파벨이라는 작자와 해변의 돌집으로 가곤 했소. 『레베카』, 현대문학, 2013. 420쪽

  또한, 결혼 전부터 깊은 관계였던 레베카의 사촌 파벨을 자신의 영지에서 만나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결국, 레베카에 대한 추문이 퍼지기 시작하고, 맥심은 무력감을 보이며 분노한다. 이미 레베카는 그의 집과 하인, 주변 남자들까지 모두 장악하고 있었다. 그 무력감이란 맥심이 레베카의 잘못을 주장해도 주위 사람 모두가 그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란, 레베카의 말에 굴욕감을 느낀 것이다.  레베카는 맥심과의 거래에서 자유를 보장받았으므로 레베카가 거래의 규칙을 위반했다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맥심이 두려워했던 추문이었다. 이런 무력감과 굴욕감은 결국 분노의 폭발로 이어지고, 맥심이 레베카에게 총을 겨누게 만든다. 이 분노의 폭발까지 레베카는 모든 것을 의도한다.

 

레베카가 사랑한 사람은 누구일까?

   레베카가 사랑한 사람은 누구일까? 파벨은 레베카가 자신을 사랑했다고 말한다. 레베카의 하녀 댄버스 부인은 이 말에 그녀가 어느 남자도 사랑하지 않았고 그저 즐기는 관계였다고 응수한다. 댄버스의 강한 부정 속에 그녀의 레버카에 대한 사랑과 집착, 질투가 숨어 있다.

누구나 즐길 권리는 있는 것 아닌가요? 남자들을 상대하는 게 그분께는 게임에 불과했어요. (중략) 우스운 일이라고요. (중략) 당신도 다른 남자와 마찬가지예요. 그분께는 웃음거리에 불과한 거죠. 집에 돌아오면 침대 위에 앉아 남자들을 비웃곤 하셨습니다.  『레베카』, 현대문학, 2013. 517~518쪽

  실상 레베카가 사랑하고 마음을 준 남자는 술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바람둥이 파벨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 급한 전보를 보내며 파벨을 만나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다. 파벨은 이에 반해 레베카를 이용해 돈벌이를 하려고 협잡을 한다.

 

레베카는 왜 나쁜 남자 파벨을 사랑했을까?

  대프니의 아버지는 수많은 여성과 내연 관계를 맺은 귀족이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대프니는 아버지의 버림을 받을지 모를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대프니는 어렸을 적 아들을 원했던 아버지 때문에 남자아이 옷을 입고 자랐다. 자신이 여자애의 몸 안에 남자애가 갇혀 있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여자아이도 남자아이도 아니며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 남과 다른 사람이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대프니는 양성애자였고, 아버지와도 선을 넘는 관계였다. 성장한 대프니는 아버지를 닮아간다. 20년 후에는 아버지의 연인이었던 연극배우 거트루드 로렌스와 동성애 관계였다.(섀넌 메케나 슈미트, 조니 랜던, 허형은 역, 미친 사랑의 서, 문학동네, 2019, 212~222쪽)

  레베카는 여성이었던 대프니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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