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7. 05:39ㆍ考愛
테네시 윌리엄스(1911-1983)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등장하는 블랑쉬는 어떤 사람일까? 미국 남부의 귀족 출신이었던 블랑쉬는 왜 늘 불안할까?
블랑쉬는 시를 쓰는 미소년과 어린 나이에 결혼한다. 블랑쉬는 남편이 걸어 다닌 땅까지 숭배할 정도로 사랑했지만, 그는 변태 성욕자였다. 남편과 단 둘이 있다고 생각했던 방에는 늙은 남자가 있었다. 블랑쉬의 비난을 듣고 방을 뛰쳐나간 남편은 곧 자살한다. 상실은 연이은 가족의 죽음과 가족 대대로 살던 저택을 잃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후 블랑쉬는 거미가 희생물을 끌어들이는 것처럼 낯선 남자들을 유혹해 관계를 갖는다. 자신이 가르치던 열일곱 살짜리 소년과도 관계를 맺으면서, 블랑쉬는 일하던 학교에서도 교사직을 그만두게 된다. 파국을 맞은 블랑쉬는 말한다. "당신이 누구든, 난 언제나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블랑쉬의 불안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다. 블랑쉬는 연이은 상실을 경험한다. 이 상실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낯선 남자의 친절을 욕망했다고 보기도 한다. 블랑쉬는 자신의 집 가까이에 임시 주둔한 군부대의 군인들을 모두 상대한다. 누구든 낯선 남자의 친절에 이끌려 관계를 맺는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과 불안의 해소를 남성과의 관계로 확인받으려 했다는 해석이 맞다면 블랑쉬는 일종의 관계중독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남편의 성적 취향을 보살펴 주지 못하고 자살케 한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이것에 대해 속죄하고 자신에게 벌을 주기 위해 수많은 남자와 관계를 맺었다는 해석도 있다. 이것이 맞다면 블랑쉬는 성녀(聖女, saintess)다.
블랑쉬를 성녀로 때로는 관계중독증에 걸린 사람으로 상반되고 극단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성(性, sexuality)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성(性)은 성(聖)스러운 특성과 속(俗)물적인 특성을 동전의 양면처럼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육체적 쾌락과 아기의 출산을 연상할 수 있다. 또는 성을 통해 나와 타인을 구원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그저 타락한 욕망인 상황도 있다. 성(욕망)은 극락과 지옥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스탠리는 블랑쉬의 여동생인 스텔라의 남편이다. 스탠리는 블랑쉬의 제부다. 스탠리는 블랑쉬를 겁탈한다. 이후 블랑쉬는 미친다. 스탠리의 욕망이 극락이 된 세계는 블랑쉬에게는 욕망을 성취할 수 없는 지옥이 된다.
블랑쉬에 대해 앞에서 한 해석보다 바로 이 극락과 지옥이 된 상황을 눈여겨 보고 싶다. 블랑쉬를 성녀나 상실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려는 관계중독자로 해석하는 건 블랑쉬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여자로 본 해석이다. 또는 이런 핑계를 이용하는 사람이나, 이런 것을 병명으로 만들어 돈벌이하는 사람들의 해석일 수 있다. 여자도 욕망할 수 있다. 남자인 스탠리의 빗나간 욕망은 범죄, 또는 그저 남성적 욕망으로 비교적 단순히 해석한다. 그럼에도 블랑쉬의 욕망에 대한 해석은 길고 지루하고 어쩌면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럴듯하다. 여자의 욕망을 특이하게 생각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블랑쉬를 사람이 아니라, 여자로 해석하고 있다.
다시 처음 물음으로 돌아간다. 블랑쉬는 어떤 사람이며, 왜 불안해 할까? 블랑쉬는 욕망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그녀가 불안한 것은 욕망이 가진 양가적 특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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