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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딸기와 역사

by 월간 김창주 2021.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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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와 『무정』

  딸기는 53개 이상의 방언(따올, 따올기, 따울, 딸, 딸광, 때알 등)이 있다. 현재 흔히 먹는 딸기는 19세기에 남미 칠레의 딸기가 네덜란드로 전해지면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는 이 개량된 딸기가 20세기 초에 일본에서 들어온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장편소설인 이광수의 『무정』에 딸기가 등장한다. “울지 말고 딸기나 먹어라”는 대목이다. 소설이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가 되었으니, 그 이전에 딸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딸기는 과일?

  딸기는 과일인가? 채소인가? 나무에서 나면 과일이고, 덩굴이나 풀의 줄기에서 나면 채소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흔히 수박, 토마토, 딸기는 채소라고 한다. 이 단순한 구분 방법은 명쾌하긴 하지만 다양한 관점을 획일화한다. 과일과 채소의 기준에 대한 논쟁은 1887년 미국에서 과일에는 관세를 붙이지 않고 채소에만 관세를 붙인 관세법이 등장하면서 시작한다. 아마도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었던 것 같다. 1893년 미국 대법원이 ‘토마토가 저녁 식사에는 나오지만 후식으로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채소다’라고 판결하면서 토마토는 채소가 된다. 하지만 식물학자들은 토마토는 과일에 더 가깝다고 한다.

딸기가 채소인지 과일인지는 정하기 나름이다.

  전제와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지식을 서로 다르게 분류할 수 있다.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사물도 같은 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서양식의 분류법으로 보면 해금과 아쟁은 현악기이지만, 우리 음악에서 이 악기들은 관악기로 분류된다. 우리식의 대표적인 지식분류체계는 “사상의학”을 들 수 있다. 어쨌든 이 판례를 적용하면 딸기는 과일이 된다.

 

해금과 유득공

때로는 화려하지만, 때로는 쓸쓸하기도, 또 때로는 유머가 넘치는 악기 해금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해금이 다양한 표현력이 있어서 인지, 해금의 이름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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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악기 아쟁

해금에 대한 이야기를 전에 말씀드리면서, 해금이 우리음악에서는 관악기로 분류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쟁 역시 찰현악기지만, 관악기처럼 지속음을 내는 성격 때문에 우리음악에서는 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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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는 구황작물

  일제강점기에 전주의 역사와 당시 정치‧사회‧경제‧문화 전반을 다룬 『전주 부사』가 출판되었다. 이 책을 펼쳐보면 구황작물로 곰딸기(가을에 짙은 황적색 열매가 익는다. 맛은 달콤하고 새콤하며 예전에는 이 열매로 술을 빚었다), 산딸기, 장딸기. 흰땃딸기, 멍석딸기(익은 열매는 액즙이 많고 맛이 달콤하면서도 새콤하다. 삶아서 잼을 만든다. 빚어서 술을 만들기도 한다), 겨울딸기를 소개하고 있다. 재래종 딸기인데 사진을 찾아보면 지금처럼 우아한 모습의 딸기가 아니라 털이 송송난 투박한 모양이다. 고구마나 감자 같은 구황작물로 소개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적 딸기는 설탕에 찍어 먹던 간식이었고 지금처럼 달지 않았다.

 

딸기는 화장품

  일제강점기 재래종 딸기가 구황작물로 기록된 것에 반해 미용으로 소개된 사례도 있다. 1932년 7월 19일 자 국내 신문기사를 보면 “유행의 원천인 파리에서는 최근 얼굴 화장품으로 딸기를 쓰는 것이 성풍이다. 그 방법은 간단한데, 딸기를 얼굴에 대고 뭉그러트려 얼굴 전체에 바르고 10분 동안 두었다가 씻으면 된다”라는 기사를 볼 수 있다.

 

딸기와 미국 유학생

  윤치호(1865~1945)는 일제강점기에 문신‧관료‧정치가‧사회운동가로 활동을 하였다. 윤치호의 미국 유학하던 시기에(1889.12~1892.12) 기록한 일기에 딸기를 5차례 정도 기록하고 있다. 1891년 5월 8일 일기를 보면 “두서없는 생각들(중략) 편견이 이성보다 더 강하다. (중략) 오직 여자, 음악회, 독창회, 이중창 따위를 이야기하는 상류사회의 분위기(중략) 아이스크림, 딸기와 과자가 목이 쉰 군중에게 충분하게 나왔다”라고 쓰여 있다. 아마도 기록에 나온 최초의 개량종 딸기를 먹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딸기의 정치‧경제

  2012년 4월에 있었던 총선 선거운동으로 젊은 인력이 빠져나가고 공공근로로 어르신 일손이 투입되면서 농가에서는 일손 부족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기사가 있다. 같은 해 3월 15일 자 연합뉴스를 기사를 보면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삼례농협 딸기공동선별장은 농번기를 맞아 일용직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지만, 일당이 높은 총선 선거 운동원 모집이 시작되면 고용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딸기 생산 농민의 걱정을 읽을 수 있다.

  같은 해 2월 10일 자 연합뉴스 기사에는 “최근 전국을 휩쓴 한파에 전북 완주의 딸기 생산량이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딸기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중략) 농업용 면세유가 지난해 대비 25% 상승한 리터당 1,200원 선이어서 농가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중략)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영세한 딸기 농가의 경우 도산 위기”라고 쓰여 있다.

 

딸기와 역사

  딸기 하나에도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존재한다. 역사가는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를 쓸 수 없다.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를 재구성할 뿐이다. 사료는 사실이 아니다. 사료는 어떤 사건을 담은 기록물일 뿐이다. 비빔밥 요리 레시피가 비빔밥이 아닌 것처럼. 비빔밥 사진은 비빔밥이 아닌 것처럼 이것들은 실체가 아니라 그저 기록물일 뿐이다. 이런 기록물을 가지고 역사가는 과거를 해석하고 압축한다. 누구도 과거 사건의 사실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신만이 알 수 있다. 일본 영화 라쇼몽을 보면 하나의 사건을 두고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하는 것은 서로 다른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고 또한 그것에 대한 존중이다. [월간 김창주,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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