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16. 22:29ㆍ전주
1923년 메이데이
1923년부터 노동절이란 표현이 아닌 메이데이라는 말이 신문지상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대구, 진주, 마산 등의 메이데이 기념식 장면이 실려 있다. 기념식과 강연만 인정, 시위 행렬은 금지한다는 기사가 덧붙여 있다. 1925년 4월 30일자 기사를 보면, 전주청년회관에서 5월 1일 오후 8시 반부터 메이데이 기념강연을 한다. 연사에는 “메이데이 의의”에 김균, “메이데이 역사”는 주영섭이 맡는다는 등의 기사를 볼 수 있는데, 기념행사와 강연만 있고, 시위 행렬은 없었다.
일제의 노동조합 탄압
1927년으로 가면 일제가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모습이 보인다. 전주청년동맹배달인조합, 양화직공조합, 철공조합, 인쇄직공조합 등 각 단체가 5월1일 오전 11시 전주청년동맹회관에서 이평권 씨의 사회 하에 개회를 선언하고 기념행사를 시작한다. “이날 이득산 씨의 기념사와 하준기 씨의 의의, 이봉규 씨의 메이데이 역사로 무사히 식은 마쳤으나, 최후에 이봉규 씨를 검속하여 유치하였다더라”는 기사가 이어지는데 계속해서 사람들을 검거하면서, 일제가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절대 비밀리 취조
1931년 5월 1일 오전7시로 가보면 "전북경찰부 고등과에서 돌연활동을 개시 전주고등보통학교생 2명을 검거, 절대 비밀리에 취조 중, 모 방면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때마침 메이데이임으로 모종의 계획이 미연에 발각"된 것, 검거된 학생은 권영운, 문은종 이다. 어떤 모종의 계획이었을까? 메이데이를 적색으로 쓴 전단지가 전주시내 각 중등학교 교정에 뿌려지는 사건이 있었는데, 1932년에도 같은 일이 전주에서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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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급휴가 요구하다 전원 해고
1933년으로 가면 부산에서 조선인 노동자와 일본인 노동자 170명이 메이데이 휴일에 급료를 요구하자, 2일 저녁때 전기 토공 인부를 전부 해고한다. 숙소에 있던 서준재가 선두에 서서 3일 정오에 부산공구사무소를 습격, 점거 후 다시 현장 사무소로 나간다. 이 사건으로 약 100명의 경관이 급행, 노동자 60명을 검거하고 해산, “부산경찰서에서는 이 기회에 종래 불온다고 인정한 분자를 일거에 검거했다”는 기사를 볼 수 있다.
해방 후 노동절
1959년으로 가면 “3월 10일 처음으로 맞이하는 노동자들의 명절을 의의 깊게 맞기 위해 당일은 전국적으로 전 노동자들에게 유급휴일로 정하는 한편,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한다는 기사가 있다. 날짜가 지금하고 다르다. 노동절은 과거 5월 1일이었던 것을 공산국가에서 이 날을 공통적으로 노동절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3월 10일로 선정했다”라고 그 이유가 덧붙여 있다.
1961년 대구의 노동절 행사를 보면 오전 10시 대구역광장에서 2만여 명의 노동자가 참석한 가운데 노동절 기념식이 성대히 거행, 이날 기념식이 끝난 후 11시 반부터 각 직장별로 가장행진에 들어가 이채, 1962년 1월 30일에는 노동절을 법정공휴일로 정부에 제정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노동절은 이념적?
그런데 노동절이 맞는 표현인가, 근로자의날이 맞는 표현일까? 이게 논쟁이 있었다. 1978년으로 가보면, “내년부터 근로자의 날에 노동절이란 표현을 일체 쓰지 못하게 방침 정부의 관계자는 노동절이란 사회주의 체제에서 쓰고 있는 이른바 메이데이를 우리말로 직역한 것, 올해까지는 어쩔 수 없이 허용, 내년부터는 일체 허용치 않는다”는 기사가 있다.
그러나 뜻대로 고쳐지지 않는다. 1980년으로 가보면, 노동청은 1963년 근로자의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근로자의 날로 불러야 한다는 데 반해 노조측은 이 법률의 내용은 이날을 “유급 휴일로 정한다는 의미가 있을 뿐 전통에 따라 노동절로 해야 한다면서 단어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인다.
1989년으로 가보면 당시 민정당과 민주당은 법을 개정해서 3월 10일로 되어 있는 근로자의 날을 5월1일의 노동절로 바꾸기로 했다는 기사가 있다.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1991년부터 노동절이 5월 1일로 정착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1993년 12월 14일자 신문를 보면 “이르면 내년부터 3월 10일 근로자의 날이 5월 1일을 노동절로 부활한다”는 기사, 날짜를 변경하고 용어도 근로자의 날에서 노동절로 법률이 개정된다고 예고하는데. 날짜는 바뀌었지만 현재 정식 명칭은 근로자의날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헤이마켓 사건
이념적인 문제 때문에 이런 변화가 있었던듯 하다. 메이데이는 어느 나라에서 시작되었을까? 왜인지, 구 소련 같은 공산권 국가에서 시작되었을 것 같지만, 메이데이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1886년 5월 1일을 기해 8시간 노동제 쟁취를 목표로 전국적 총파업을 선언하는데, 이날 경찰의 발포로 어린 소녀를 포함, 노동자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미국에서 있었다. 다음날 분노한 노동자 30만 명이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기 위해 헤이마켓광장에서 집회를 개최하던 도중, 누군가 던진 폭탄이 터진다.
이때 경찰이 총을 난사, 집회를 주도한 노동자 8명이 폭동죄로 체포된다. 헤이마켓사건이다. 이 중 4명이 교수형에 처해 지는데, 7년 후에 자본가들이 이 사건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미국 국민을 경악케 한다. 이후 1889년부터 이날을 기념하기 위한 운동이 세계 각국에 확산되기 시작, 다음해인 1890년 5월 1일부터 메이데이 행사를 치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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