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와 기생과 생강

2021. 4. 16. 17:45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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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와 생강

  1929년 겨울, 독일 유학을 마친 윤건중(1897~1987)이 고향 봉동에 돌아왔다. 다음 해 윤건중은 봉상산업조합을 설립한다. 조합 설립 1개월 만에 조합원 수는 1,000명을 넘었다. 조합은 저금리대출, 비료 공급, 포장과 품종개량, 공동판로 개척 등의 사업을 진행한다. 고리대금을 없애고 운임을 낮춰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 체제로 소비자 가격을 보장, 농촌의 자립경제형성에 크게 기여한다.

  당시 봉동에는 13,000여 명의 면민이 거주했지만, 의료시설이 없었다. 이에 윤건중은 1937년 조합 내에 병원을 짓고 의료보험을 실시한다. 치료비는 50% 이내로 하고 병원을 지은 첫 해는 무료 치료를 한다.

  윤건중은 1919년 자전거 뽈(pole)대에 「독립선언서」를 숨겨 전주에 들어온다. 같은 해 3월 13일 전주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을 주도한다. 이후 수배자가 되어 중국 상해로 망명길에 오른다. 1922년 독일로 유학, 1927년 뮌헨대학을 졸업하지만, 공소시효가 끝나는 1929년에야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 지역 농업경영의 근대화에 힘쓰다, 1954년 제9대 농림부장관에 발탁된다. 쌀 생산비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쌀값을 올려야 한다고 소신을 굽히지 않고 주장하던 중, 재임 56일 만에 사임한다.

  1977년 정부는 윤건중에게 독립운동 유공자 대통령 표창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책을 참고해 주세요.

 

전주미학

전주미학

www.aladin.co.kr

생강(Franz Eugen Köhler)

 

생강과 기생

  17세기 초 유행한 ‘올공금 팔자’라는 말이 있었다.

  전주의 상인이 생강을 배에 가득 싣고 평양 대동강에 정박한다. 당시 생강은 관서 지방에서는 나지 않았기 때문에 귀한 재화였다. 한 배 가득 실린 생강은 베 천 필, 곡식 천 석에 해당했다. 상인은 이 귀한 재화를 그만 기생에게 홀려서 모두 탕진한다. 차마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던 상인은 기생집 머슴살이를 하다가 몇 년간 일한 세경으로 다 부서져가는 장구 올공금을 받는다. 알고 보니 이 올공금이 귀한 오금이었다. 상인은 올공금을 되팔아 다시 고향에 돌아와 가업을 세우고 동방의 갑부가 되었다. 기생은 가치 없는 물건인 줄 알고 도와주려는 의도 없이 올공금을 주었는데, 알고 보니 값비싼 물건으로 빈털터리가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다.

  오금은 구리에 1~10%의 금을 섞은 합금으로 검붉은 색이고 장식품에 쓰인다. 올공금과 관련한 몇몇 기록을 살펴보면 이 금속이 임진왜란 이후에 국내에 들어온 것 같다. 여기서 올공금은 장구의 갈고리쇠(용두쇠)를 말한다. 장구 양편 가죽을 줄에 엮어서 부착하는 데 사용한다. ‘올공금 팔자’ 이야기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장구? 장고?

오늘은 타악기인 장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문: 잘 안다 생각하지만, 실은 잘 모르는 타악기가 장구인 것 같아요. 답: 그렇죠. 누구나 두드리며 연주할 수 있지만, 제대로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

sawlead.tistory.com

 

기생과 포쇄별감

  2013년 경기전에서는 포쇄의식을 재현했다. 조선시대에는 이들을 포쇄별감이라고 하였다. 이들은 한양에서 내려와 전주에 보관되어있는 실록에 볕을 쬐게 하는 일을 했다.

  16세기 초 여색을 멀리하는 젊은 사관(史官)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꽤 기이한 행동을 하는데, 지나오는 여러 고을에 공문을 보내 객사에 기녀를 들이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젊은 사관이 전주에 도착하자 한 달이 지나도록 장맛비에 사고(史庫) 문을 열 수 없었고, 사관은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게 된다. 부윤과 판관이 한양에서 내려온 근엄한 사관을 모시기가 골치가 아팠던 모양이다. 결국 판관이 꾀를 내어 기녀의 유혹에 빠지게 하는데, 이에 대한 늙은 기녀 노응향의 말이 재미있다. “객사에 머무는 관리 중 기녀를 보고 농담하며 웃는 자는 범하기가 어렵지만 기녀를 보고 정색하는 자는 다루기가 쉽습니다.” 앞의 올공금과 포쇄별감 이야기는 전혀 다른 설화 같지만 하나의 이야기가 변형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야기는 생강

  독립운동가, 생강, 올공금, 기생, 포쇄별감의 이야기를 수직적 구조 안에서 읽을 수 있다. 그 안에서 이야기의 화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의 이야기가 유기체처럼 수평적으로 변이 되었다고 해석해도 재미있다. 앞의 이야기와 『춘향전』, 『배비장전』도 이렇게 같은 선상에 놓고 보면 누가 말했느냐에 따라 말하는 자에 의해 이야기가 변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의 변형은 컴퓨터 게임에서 응용되고 있다. 게임의 문제는 무한반복 중에 싫증이 나는 데 있는데 인공지능에 의해 새로운 시나리오가 계속 만들어지면, 게임을 즐기는 사람마다 각각 다른 이야기 속에서 게임 운영의 높은 자유도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전주는 완판본 방각본 소설이 증명하듯이 이야기를 생산하고 활용(telling)하고 판매하는 도시다. 이율곡 선생은 제자들에게 “세상에 나가면 화합할 줄 알며, 자기 색을 잃지 않는 생강이 되어라”고 했다. 이야기는 생강이다. [월간 김창주,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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