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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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의 문화원형
관화(觀花) 시절 1921년 4월의 꽃구경하는 풍경이다. “관화 시절의 단속, 꽃 때가 되어 사람의 왕래도 차차 많아짐에 따라 경찰관도 많이 출동하여 통행 등을 단속하고, 구호반을 설치하여 부상한 사람이 있을 때 속히 구호하며, 맥주, 사이다 등 음료 및 음식 값을 엄중히 단속한다는데, 물가를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맥주 한 병 칠십오 전, 사이다 한 병 삼십 전, 일본식 비빔밥 일 인분 오십 전, 점심 상등 일 원 보통 칠십 전” 일본식 비빔밥이 50전이었던 것에 비해 1930년 우리 비빔밥의 가격은 10~15전 내외였다. 1931년 5월 윤백남이란 사람이 전주 대정여관에 하루를 묵고 말로만 듣던 전주비빔밥을 먹는다. 그의 평은 "무엇이 좋아서 전주비빔밥, 전주비빔밥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라..
2021.11.21 -
거두리 참봉
거두리 참봉과 단오제 1959년 해방 후 첫 시민의 날, 카니발을 준비하던 모임이 있었다. 전주방송국 내 문화위원회 유기수, 류승국, 김근희, 정재인, 이봉희, 진기풍 등 6인은 전주만의 카니발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회의를 시작한다. 전주의 기인으로 많은 선행을 베푼 ‘거두리 참봉’이란 분의 날을 정해 축제를 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회의 끝에 전통적인 단오제를 계승하기로 결정한다. 지금은 잊힌 인물 ‘거두리 참봉’은 어떤 사람인가? 동냥으로 영결식을 1931년 10월 3일자 『동아일보』 3면에는 거두리 참봉의 장례를 다음과 같이 알리고 있다. “전북 전주읍 다가정 이보한(속칭 거들 선생) 씨는 61세를 일기로 지난 27일 서거하였다는데, 전주읍내에 무의무탁한 거지가 이백여 명이 집중하야 영결식은 거..
2021.11.14 -
밸런타인데이와 초콜릿
현대 여성의 악취미 1938년 『삼천리』 8월호에 초콜릿에 대한 재미있는 기사가 실려 있다. 당시 유명인사 여러 명에게 각각 “현대 여성의 악취미”에 대해 의뢰해 기록해놓았는데 그중 첫 번째가 이화고보의 김창제 교수의 글이다. “첫 번째가 활동사진(이건 영화를 뜻하고), 두 번째가 초코레트, 세 번째가 머리 지지기, 입술 칠하기라” 후대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생활방식과 환경에 따라 취미가 변하기에 선악을 말할 수 없지만, 막연하게 일시적으로 느낀 바를 쓴다”라고 덧붙였다. 아리송한 일본인 의식 1974년 2월 1일 자 『경향신문』에서 “서양에서는 2월 14일 ‘사랑의 날’ 즉 ‘밸런타인데이’라고 하여 큐핏을 상징한 그림이나 감상적인 시구, 때로는 풍자화 등을 그린 카드를 익명으로 ..
2021.11.12 -
가을비 오는 날
가을비 오는 날 전주향교 1분 영상(2021.11.8.) 가을비 오는 날 전주향교 30분 영상(2021.11.8.)
2021.11.10 -
딸기와 역사
딸기와 『무정』 딸기는 53개 이상의 방언(따올, 따올기, 따울, 딸, 딸광, 때알 등)이 있다. 현재 흔히 먹는 딸기는 19세기에 남미 칠레의 딸기가 네덜란드로 전해지면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는 이 개량된 딸기가 20세기 초에 일본에서 들어온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장편소설인 이광수의 『무정』에 딸기가 등장한다. “울지 말고 딸기나 먹어라”는 대목이다. 소설이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가 되었으니, 그 이전에 딸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딸기는 과일? 딸기는 과일인가? 채소인가? 나무에서 나면 과일이고, 덩굴이나 풀의 줄기에서 나면 채소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흔히 수박, 토마토, 딸기는 채소라고 한다. 이 단순한 구분 방법은 명쾌하긴 하지만 다양한 관점을 획일화한다. 과..
2021.11.08 -
빙수와 여성해방
인조빙과 천연빙 20세기 초 일제가 조선을 병탄 할 목적으로 통감부(1906~1910)를 설치한다. 이때 부산수산조합이 최초의 제빙공장을 시설한다. 1923년에는 군산갈석제빙회사가 시설되었고 1927년부터 조선총독부가 사업 발전을 목적으로 보조금을 교부한 이후부터 제빙 회사 설립에 가속도가 붙었다. 1932년에는 전국 조선에 25개소의 제빙 냉동고가 설치되었지만 제빙업은 전부 일본인의 소유인 회사 조직이었다. 조선 사람이 경영하는 제빙 회사는 없었다. 이런 인조 얼음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겨울 하천에서 채취한 천연 얼음을 보관해 여름에 사용하곤 했다. 전주에도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굴을 파놓았던 빙고(얼음창고)장이 있었다. 위치는 구 예수병원 아래로(다가공원의 아래쪽), 현재 서완산동 부근이며 과거에는 이..
2021.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