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愛(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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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가 사랑한 사람은 누구인가?
남편의 연애편지 『레베카』는 영화로는 히치콕 감독의 1940년 작과 벤 휘틀리 감독의 2020년 작이 있다. 뮤지컬로도 국내에서 제작되었다. 『레베카』의 원작자는 대프니 듀 모리에(1907~1989, 영국 소설가)다. 『레베카』는 질투에 대한 이야기다. 여성에 대한 집착과 질투에 대해 혹자는 괴기스러울 정도로 표현되어 있다고 하는데, 소설이 583쪽에 달하니 그 분량면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벤 휘틀리 감독의 영화를 먼저 보아서 그런지 소설은 분량 때문에 지루한 면도 있어, 몇 차례 쉬엄쉬엄 읽었지만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은 있는 소설이다. 이 질투에 대한 심리 묘사는 대프니의 경험과 동성애에서 나왔다. 대프니는 남편이 전 약혼녀에게서 결혼 전 받은 편지를 발견한다. 대프니에게 남편의 전 약혼녀는 레베카..
2022.02.13 -
인어공주 이야기
첫눈 내리는 소설(小雪) 내가 사는 골목에서 만난 출렁이는 플라스크 든 너 빛의 속도로 110년을 날아가면 공기는 200℃ 수소 물속에서만 살 수 있는 하이션 행성 물 맛이 코냑 같은데 그걸 마셔야 지구에서 살 수 있어 그렇지 않으면 걸을 때마다 칼날이 가슴을 찌르는 것 같거든 200년 전 지구에 도착해 만난 안데르센(1805~1875) 그의 입술에선 코냑 내음이 나서 그가 곁에 있어야 겨우 숨을 쉬었어 떠나는 나를 보며 하이션 행성에 가고 싶었던 안데르센은「인어공주」를 읽어 주었어 목소리를 잃어도 물거품이 되어도 물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인어가 되고 싶어던 사람 너와 닮았어 빈 플라스크를 건네며 했던 마지막 말 새근거리는 숨을 참아가며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다며 난 코냑을 채운 플라스크를 묻고 포도..
2022.02.04 -
거짓의 진실함, "베스트 오퍼"
거짓의 진실함 거짓은 진실을 품고 있으며, 진실은 거짓을 품고 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수단은 진실이며, 진실한 사람의 수단은 거짓이다. 거짓은 왜 진실을 품고 있는가?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진실함이 없다면 상대는 속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바람둥이가 상대의 마음을 사는 것은 진실함이 있기 때문이다. 진실함이 없다면 상대는 속지 않을 것이다. 다만, 바람둥이의 진실함은 수단일 뿐이다. 바람둥이가 진실한 것은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진실을 수단으로 다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돈일 수도, 권력일 수도, 색욕일 수도 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수단이 진실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이들에게도 죄책감이란 것은 있다. "사랑해 그 순간만은 진실이었어" - 최성수,..
2022.01.08 -
“옷소매 붉은 끝동”에 나온 시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제5화의 장면입니다. 이산은 금족령이 내려 방 밖으로 나올 수 없고, 성덕임은 방 밖에서 『시경』의 시 한 편을 읽고 있습니다. 이산은 미닫이문에 다가가 성덕임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산은 성덕임이 읽고 있는 시에 대해 “정말로 뜻은 알고 있는 것이냐?”라며 묻습니다. 北風 北風其涼 雨雪其雱 惠而好我 攜手同行 其虛其邪 旣亟只且 北風其喈 雨雪其霏 惠而好我 攜手同歸 其虛其邪 旣亟只且 莫赤匪狐 莫黑匪烏 惠而好我 攜手同車 其虛其邪 旣亟只且 어떤 내용의 시일까요? 북풍이 차갑게 불고 눈이 푹푹 내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잡고 함께 떠나자, 망설이지 말고 빨리 떠나자고 합니다. 왜 하필 한 겨울 찬바람이 불고 눈 오는 날 손잡고 가자고 했을까요? 그것도 망설이지 말고 빨..
2022.01.01 -
『너를 닮은 사람』과 신데렐라
JTBC 16부작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유보라 극본, 임현욱 연출)은 같은 제목의 정소현의 단편 소설이 원작이다.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다면, 원작 소설도 읽어 보면 좋다. 드라마가 주는 영상미와 여러 에피소드도 대단하지만, 원작이 전해주는 강렬함도 대단하다. 드라마를 중심으로 등장인물, 용서와 죄책감, 문화자본과 신데렐라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작품을 읽어 보았다. 이야기의 모티브 부잣집 며느리로 변신에 성공한 정희주가 가난한 화가 지망생 구해원에게 미술 레슨을 받다가, 구해원과 결혼을 약속한 화가 지망생 서우재와 바람이 난다. 몇 년 후 서우재와의 과거를 모두 단절하고 싶은 정희주에게 구해원이 찾아온다. 등장인물 정희주 주인공 정희주는 빚에 쫓기면 가난하게 산다. 직업은 간병인이고, 환자를 대상으로..
2021.12.05 -
이별의 푸가
이별 뒤의 침묵은 둘이다. 나의 침묵과 그 사람의 침묵. 나의 침묵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포화 상태다. 나는 그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전화를 걸고 싶고, 문자를 보내고 싶고, 메일을 전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 말들에게 스스로 금기를 내린다. 안 돼, 그러면 안 돼, 그건 너의 약속을 배반하는 거야. 그건 그 사람을 더 아프게 할 뿐이야... 하지만 또 하나의 침묵이 있다. 그건 그 사람의 침묵이다. 그 사람이 닫아버린 침묵의 문 앞에서 나는 나의 침묵을 부둥켜안고 나날이 서성인다. 혹시 전화가 오지 않을까. 문자가 날아들지 않을까... 하지만 나의 침묵이 열리지 않는 것처럼 그 사람의 침묵도 열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단 하나 허락된 말하기를 배운다. 그건 모놀로그다. 잘 지내나요. 아무 일..
2021.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