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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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과 진화
어떤 날은 새로 불사를 한, 인근 절에서 가져온 사찰 건물의 서까래를 태우고 있는 것을 보고 질문을 던졌다. 서까래가 향나무냐고 물었고 향나무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이 질문 결과, 수백 년 향을 사르며 기도를 올렸을 불자의 마음이 밴 나무의 향내가, 향나무의 향내보다도 진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330쪽) 낫으로 수천수만 포기 풀들의 허리를 베어 날렸는데... 어찌 풀들의 상처의 냄새가 향기롭게 내 후각에 와 닫는가? 내 후각은 풀들의 통증에 동참하여 고통을 느낄 수는 없는가? (중략) 내 감각들은 내게 이로운 쪽으로 폭력성을 가지고 진화 해 왔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332쪽) 함민복, 「일상을 어떻게 글로 쓸 것인가?」, 『모악 에세이』,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2012
2021.06.10 -
하멜 표류기
자세히는 모르지만 한 번쯤 하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 같아요. 1980년 10월 12일 제주도에 하멜 기념비가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의미가 있는 사람이란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겠죠. 문: 그렇군요, 하멜은 어떤 사람인가? 답: 백과사전을 보면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박 선원으로 1653년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 일행 36명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했다. 1666년 억류생활 끝에 탈출하여 1668년 귀국했다. 그 해에 『하멜표류기』로 알려진 기행문을 발표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지리·풍속·정치·군사·교육·교역 등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이다. 문: 하멜이 동인도회사 선원인데, 일본에 무역을 하던 회사인가? 답: 맞아요. 16세기에 네덜란드는 해외무역이 발달하면서 중국, 일본, 오..
2021.06.04 -
공중전화로 본 근현대
편리한 휴대전화 덕분에 사라져 가는 공중전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문: 공중전화기는 언제 처음 우리나라에 설치되는가? 답: 1962년 무인 공중전화기가 처음 우리나라에 설치된 해였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전화부스 형태의 공중전화기가 국내에 등장을 합니다. 이 전화기를 보면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문: 무인 공중전화기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인가? 답: 지금이야 공중전화기를 지키며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1962년 이전에는 공중전화에 관리원이 상주해 요금을 받고 전화기를 관리했는데요. 이곳을 시대마다 명칭이 좀 다르지만 20세기 초에는 사무소, 파출소라고 하듯이 전화소라고 했습니다. 문: 시대마다 전화기의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한데, 언제 전화기가 국내에 들어오나? 답:..
2021.06.03 -
백설공주로 본 근현대
문: 백설공주 이야기를 준비하셨다고요. 독일 그림 형제의 동화로 알고 있는데, 국내에는 언제 소개가 되나요? 답: 백설공주는 1923년 잡지 『어린이』에 『백설공주』가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이후 1925년에 오천석 번역으로 눈공주로 소개됩니다.(권영경, 2009). 디즈니사의 만화영화 『백설공주』는 1937년 미국에서 개봉하는데, 국내에는 신문지상에 백설희로 소개됩니다. 이렇게 지금과는 다른 이색적인 동화명들이 보입니다. 성냥장사처녀(성냥팔이 소녀), 인어색시(인어공주), 미운 게우 새끼(미운 오리 새끼), 게우는 거위를 일컫는 경상남도 거제 지방의 사투리입니다. 문: 1930년대 미국에서 만화영화 개봉 당시 『백설공주』의 인기는 어땠나요? 답: 1938년 12월 28일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
2021.06.02 -
인류학은 일반화를 극복할 수 있는가?
인류학의 숙명 인류학은 일반화를 극복할 수 있을까? 레비스트로스의 말처럼 “비교에 의해 일반화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화가 비교를 가능”하게 한다. 인류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의 시작은 일반화에서 시작한다. 모든 학문에는 토대가 되는 일반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학은 왜 일반화를 극복하려 했는가? 인류학은 서구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진화주의적 관점에서 시작한다. 이런 숙명의 극복이 일반화의 극복으로 중첩되어 있다. 숙명을 극복하기 위해 인류학자들은 용어의 문제, 비동시성과 동시성의 문제, 분류의 문제 등을 제기하며, 보다 나은 관점을 계발하였지만, 일반화는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문화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며, “세상은 대학의 학과 구분처럼 나눠 있지 않다”라고 말하..
2021.06.01 -
무지한 스승의 원형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에 대한 서평 자크 랑시에르가 말하는 무지한 스승의 원형은 자코토가 아니라,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다. 삼장법사는 구성원 중 종교적 신념만을 소유했을 뿐 가장 무능한 캐릭터이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종교에 얽매인 무지한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직원을 감화시켜 나가며, 그들 스스로가 가진 인간성을 발현케 한다. “학생들을 그들 혼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고리 안에 가둬두도록 명령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은 마치 손오공이 머리에 이고 있는 관인 금강고를 연상케도 한다. 삼장을 자크 랑시에르의 눈으로 보면 스스로 해방한 사람이며, 해방한 무지한 스승이다. 삼장을 제외하면 다른 구성원은 짐승을 모델로 한 요괴들이다. 인간 역시 능력만 있고 인간성..
2021.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