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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36

시와 도시락 배고픈 지갑 “자네는 배고픔이 뭔 줄 아나?”라고 물으며 일제강점기를 회상하던 전주 토박이 어르신의 물음에 도저히 그 답을 상상할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김제에 가면 아리랑문학관이 있다. 전시실 2층에 소설가 조정래의 지갑이 하나 놓여 있는데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젊었을 때 한 번도 배부르게 해주지 못한 지갑” 그저 그런 주글주글한 지갑인데 내 눈을 꽤 당겼다. 난 배고픔은 모르지만 배고픈 지갑에는 쉽게 공감하는 세대다. 급식의 시작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의미의 급식은 1953년 외국 원조에 의한 구호급식의 형태로 시작한 학교급식을 그 시작으로 보고 있다. 1958년에는 국립 중앙의료원에 최초로 영양과가 설치되면서 환자를 위한 병원급식이 실시되었다. 사업체 근로자들을 위한 급식은 1960년 초에 경.. 2021. 10. 27.
입체영화와 덕진공원 입체경과 입체사진 1955년 6월 27일 전주도립극장에 입체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시설하겠다는 기록이 있다. 1955년이면 벌써 60년도 더 된 일이다. 입체영화는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 입체영화는 1935년 프랑스의 루이 류미엘옹이 입체영화에 성공했다는 해외기사로 국내에 소개된다. 입체영화의 과학적 원리가 함께 소개되어 있다. 이 보다 앞선 최초의 입체영화는 1922년 개봉한 「파워 오브 러브」라는 영화인데 사랑의 힘으로 번역할 수 있다. 19세기에 이미 서구에서는 입체사진이 발명되기도 했다. ※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책을 참고해 주세요. 전주미학 전주미학 www.aladin.co.kr 백설희와 토키 20세기 초에 이미 입체영상으로 상업영화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1938년 2월 8일 .. 2021. 10. 20.
전주 왕골(莞草)의 추억 일제강점기 전북은 완초(莞草, 왕골) 공예로 유명했다. 왕골은 높이 60∼200㎝까지 자라는 공예 작물이다. 현재는 “왕골 하면 강화도의 화문석”이다. 1935년 각도의 수출을 위한 조선 공산품의 주력 상품을 보면, 전북은 완초 제품, 단선, 조선지, 온돌지, 경기는 마포, 충남은 마직물 등이었다. 이듬해 전북도 산업과는 수출과 농촌 부업 개발을 목적으로 완초 세공품을 장려하기 위해 완주와 옥구 양군에 5개년 계획을 세우고 강습회를 시작한다. 그 결과 1937년 완산금융조합과 임피금융조합은 관내에서 생산한 왕골 슬리퍼 1,600족을 미국으로 첫 수출한다. 1938년 3월 대판(오사카)조선물산협회가 전북도 산업장려관에 십만 족의 슬리퍼를 주문한다. 같은 해 4월 전국의 공산품 전시회에서 전주의 완초화(구두.. 2021. 9. 29.
뒷구멍 20세기 후반 전주에는 꽤 유명한 우족탕 집이 있었다. 이 집은 사장과 주방장이 앙숙이었다. 주방장은 사장이 망하라고 고기를 몰래 손님들에게 더 주곤 했다. 방법은 이렇다. 500원짜리 지폐를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아서 뒷구멍으로 주방장에게 건네주면 되었다. 그런데 이 가게는 망하기는커녕 대박이 났다. 현재 이 가게는 없어졌다. 사장이 눈치를 채고 뒷구멍을 막아서라고 어떤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20세기 중반 국가에서 운영하는 동사무소에도 뒷구멍이 있었다. 등본 따위의 서류를 급하게 발급받기 위해서는 급행료라는 것을 관료에게 뒷구멍으로 지불하면 남보다 빨리 서류를 받아 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국가의 재정이 넉넉하지 못해, 관료들은 담배 또는 현물을 월급 대신 받았고, 이들의 아내는 시장에 그것을 내다 팔.. 2021. 9. 19.
귀신사 양귀자의 소설 "숨은꽃"의 배경인 귀신사입니다. 2021. 7. 20.
위봉폭포 위봉폭포 멀리 위봉폭포가 보인다. 폭포의 시원한 물소리를 담아보았습니다. 위봉폭포 위봉사 2021.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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